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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6439682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25-02-25
책 소개
목차
마법사들
타임캡슐
느리게 가는 마음
자장가
웃는 돌
해피 버스데이
여름엔 참외
보통의 속도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딸이 만들어준 호박죽을 먹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할머니는 죽을 얼마 먹지 못했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그만 애쓸란다, 하고. 성규는 할머니가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나는 그만 먹을란다,라고 말했다고. “내가 분명히 들었어. 너무 이상한 말이라 기억한다니까.” 내가 우기자 성규가 대답 대신 휘파람을 불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노래였다. 한참 후에 성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만 애쓴다니. 그건 너무 슬픈 말이네.”
- 「마법사들」
이모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작년에 고등학교 동창들이랑 여행을 갔는데 거기에 느리게 가는 우체통이 있었다는 것. 이모는 땀구멍에게 엽서를 썼다는 것. 거기에 결혼하자는 내용을 적었다는 것. 느리게 가는 우체통 속 엽서는 일년 후 배달이 되는데 그게 다음 달이라는 것. 사실 땀구멍이 얼마 전에 결혼을 했는데 엽서에 적은 그 주소에 계속 살고 있다는 것. 이모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요약하면, 그러니까 그 엽서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혼자 갈 자신이 없으니 나보고 같이 가달라는 거였다.
- 「느리게 가는 마음
엄마와 나는 즐거울 때는 같이 웃었지만 슬플 때는 서로 모른 척했다. 위로를 해주지 않는 엄마에게 가끔 상처를 받기도 했다. 엄마도 나에게 상처를 받았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엄마의 슬픔을 알아차린 적이 거의 없었다. 엄마는 들키지 않았으니까. 나는 엄마가 실컷 울 수 있도록 가게 밖으로 나왔다. 어렸을 때 나는 눈물샘이 자주 막혔다. 슬픈 일이 생기면 그때의 내 사진을 보았다. 눈이 붓고 눈곱이 낀 아기.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아기. 다시 눈물샘이 막힌 아기가 된 기분이었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흐르지 않는 아기. 나는 계단에 앉아서 눈을 맞았다. 내 몸을 그대로 통과하는 눈을. 눈이 펑펑 내렸다. 쌓인 눈을 보자 내가 죽은 게 어제 일처럼 느껴졌다.
- 「자장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