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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37456251
· 쪽수 : 284쪽
책 소개
목차
모든 것을 본 남자 11
책속에서
잠시 뒤에 제니퍼가 나에게 삶에서 가장 절실히 바라는 게 뭐냐고 물었다. “어머니를 다시 보고 싶어.” 섹시한 대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 말하면 제니퍼가 관심을 가질 것 같았다. “그럼 보러 가지 그래.” “돌아가셨잖아.”
“파시스트와 싸우려면 파시스트가 들어오지 못하게 장벽을 세울 수밖에 없어.” 내가 아버지에게 장벽은 사람들이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세운 것이지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내가 우리 집의 마리 앙투아네트이고 진주목걸이부터가 그렇다고 말했다. “그것 좀 빼, 아들.” 아버지는 언론과 이동의 자유가 불평등을 없애고 공동선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만큼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 때나 배를 타고 프랑스에 갈 수 있고 그러더라도 누가 도버의 감시탑에서 아버지를 총으로 쏘지는 않지 않나. 아버지는 1968년 소비에트 탱크가 프라하를 침공한 것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 버렸다. 우리가 스탈린과 혈연관계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약속을 잘 지켜 왔다. 제니퍼가 얼마나 놀랍게 아름다운지 제니퍼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말로 묘사하지 않겠다는 약속. 제니퍼의 머리카락 색이나 피부나 눈도, 가슴이나 입술이나 젖꼭지의 모양도, 제니퍼의 허벅지 길이나 음모의 질감도, 팔이 햇볕에 그을렸는지 허리 사이즈가 어떤지 겨드랑이 털을 면도했는지 발톱에 매니큐어를 칠했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나에제니퍼를 묘사할 새로운 언어가 없는 것은 사실인 것 같지만, 그래도 내가 제니퍼가 ‘놀랍게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면 그 말은 아무 의미 없는 말이니까 해도 괜찮다고 제니퍼가 허락했다. 제니퍼는 항상 나의 숭고한 아름다움 운운하는데, 그 말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제니퍼에게 무슨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