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37833816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12-08-29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뒤돌아보니 비행기 꼬리는 하얀 소용돌이 장막 뒤로 사라져 버리고 없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비행기의 객실이었을 곳으로 눈을 돌려 봐도 덤벼드는 얼음가루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난 길을 잃었다. 그리고 죽을 것이다. 신에게 버림받은 이 산에서 난 죽는다. 참, 내가 원했던 일 아닌가? 내 입술이나 마음은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내가 원했던 게 이거야? 그래?
(중략)
처음엔 약하게 날리던 눈발은 눈송이가 되었고, 바람도 거세졌다. 다행히도 바람은 여전히 내 등 뒤에서 불어오고 있다. 나는 불변의 사실 하나에 오롯이 집중한다. 오늘 구름 뒤의 태양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밝았다. 구름은 오고 가는 것, 폭풍도 비도 바람도 마찬가지지만, 태양은 매일 아침 어김없이 떠오른다. 나는 내 뒤에서 태양이 구름 사이를 뚫고 나와 내 몸을 녹여 주고 옷을 말려 주고 있다고 상상한다. 햇볕이 내리쬐어 강이 반짝거리고, 햇빛이 스며든 계곡과 산이 붉게 빛나고 있다고 상상한다. 폴이 산에 서서 햇볕을 쬐고 있다고 상상한다. 이런 생각에 나는 빙긋 미소 지으며, 따뜻한 그의 몸에 기대어 함께 햇빛 속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가 내 이름을 몇 번이고 속삭인다. “제인, 제인, 제인.” 눈앞이 부예지더니 따스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지고, 이어서 또 한 방울이 떨어진다. 왜 눈물이 나는지 확실히는 몰라도, 내 안의 어딘가가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은 알 것 같다. 산으로 추락한 후 오랜 길을 걸어 지금 여기까지 왔다. 올드 닥터는 내가 세상의 끝 같은 이 얼음 땅에서 보낸 엿새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이 여정 속에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일주일 전에, 일대일 상담이든 그룹 상담이든 올드 닥터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면, 난 아마도 그게 무슨 헛소리냐며 혼자 킬킬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이제껏
걸어온 기나긴 길이 보이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