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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한국학/한국문화 > 한국민속/한국전통문화
· ISBN : 9788946053175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11-02-14
책 소개
목차
제1부 일본 열도에서 본 한반도의 두 얼굴
제1장 미를 둘러싼 한일 간의 전쟁과 평화
제2장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조선도자, 민예
제3장 일본적 오리엔탈리즘의 화신(化身): 채호회(彩壺會) 파
제2부 야나기와 아사카와(?川) 형제의 미의식과 컬렉션
제4장 야나기, 아사카와, 조선민족미술관
제5장 야나기-아사카와 컬렉션
제3부 미의 나라 조선
제6장 일본 초기 차인(茶人)들과 조선 찻그릇의 미학
제7장 동양예술에 심취한 초기 미국인과 그 후예들
제8장 야나기와 그 동호인들이 발견한 조선미의 세계
제4부 두 외국인 수집가의 경우
제9장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은 누구인가?
제10장 헨더슨 컬렉션과 미의식
제11장 야나기 무네요시의 경우
제5부 일본적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제12장 일본적 오리엔탈리즘의 정체와 야나기의 도전
제13장 복합미의 평화사상
저자소개
책속에서
일제 강점기, 1924년 4월 9일 경복궁 집경당(緝敬堂)에서 ‘조선민족미술관’이 조용히 문을 열었다. 이것은 이 땅에 세워진 최초의 민간 박물관이었다. 그런데 이 박물관은 야나기가 주도하고 아사카와 형제, 그리고 소수의 야나기 동호인이 참여해 세운 ‘타인’의 박물관이었다. … 야나기가 조선민족미술관을 세운 목적은 순수하게 조선의 우수한 민예품의 ‘불행한 산일’을 막기 위한 것뿐이었을까?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한 것 자체만으로도 그는 조선의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힘쓴 인물이라고 예찬받을 만하다. … 당시 일본의 골동품상이나 호사가들이 조선의 문화재를 닥치는 대로 쓸어 가는 상황에서 흩어져 없어지는 민족의 문화재를 조선인도 아닌 일본인이 앞장서서 보존했다면 이는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였을까? 지은이는 야나기가 내놓은 언설을 분석하여 조선민족미술관 구상은 당시 일본사회에 만연했던 조선에 대한 인종편견, 문화 편견, 조선멸시관을 타파하는 방법이었다고 풀이했다.
지은이가 ‘야나기-아사카와 컬렉션’라고 부르는 소장품은 조선민족미술관을 위해 야나기와 아사카와 형제들이 수집한 도자기를 비롯한 조선 공예품 컬렉션이다. 이 컬렉션은 1945년 해방 후 행정 공백기를 견디며 살아남았고, 그 뒤 한국전쟁을 기화로 부분적으로 흩어져 없어졌으나 상당 부분은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집합된 컬렉션으로 전시되지 않고 중앙박물관 본관이나 지방분관 수장고에 잠들어 있다. 이 귀중한 민예품 컬렉션이 일본인이라는 ‘타자’들이 수집한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수장고에 남아 있어야 한다면, 이는 문화적 쇼비니즘이라는 족쇄에 갇혀 전통미의 정수마저 놓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고려차완을 예찬하는 글은 많지만 그중 야나기가 감탄한 글은 두고두고 산울림처럼 번지고 있다. 그는 1931년 3월 8일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기자에몬이도(喜左衛門井戶)를 손에 들고 볼 수 있었다. 그가 평생의 민예 동지인 가와이와 함께 고호안(孤蓬菴)에 간 자리에서였다. 그는 이 천하제일의 찻그릇을 보는 것이 숙원이라고 했는데, 기자에몬이도는 그가 말하듯 조선의 잡기로 만든 그릇이었다. 이 그릇이 일본에 건너가 대명물 찻그릇이 된 것이다. 야나기는 교토의 다이도쿠지(大德寺)의 분원인 고호안에 소장된 이 그릇을 보고 “훌륭한 차완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이다지도 평범한가!”라고 감탄하면서 그것은 조선의 밥공기이며, 그것도 가난한 사람들이 사용했던 보통 공기이며, 전형적인 잡기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