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 ISBN : 9788946068483
· 쪽수 : 240쪽
책 소개
목차
1장 | 한국 진출을 위한 재일상공인의 조직적 활동:오사카한국인상공회의 사례(1953~1980년)를 중심으로 _ 정진성
1. 머리말
2. 재일한국인오사카상공회의 탄생
3. 1950년대의 ‘재일한국인상공회’
4. 한일국교 정상화와 오사카상공회의 활동: 1960년대
5. 본국투자의 본격화와 오사카상공회의 활동: 1970년대
6. 맺음말
1장 보론 | 오사카한국인상공회 사람들:재일 1세 상공업자의 성장 과정 _ 정진성
2장 | 1960년대 재일상공인 모국투자와 공업단지 형성:구로, 마산, 구미의 사례 비교 _ 김백영
1. 1960년대 재일상공인 모국투자의 이상과 현실
2. 교포자본의 공단 개발 참여: 유형별 분류
3. 구로공단: 교포자본에 의해 주도된 최초의 공단 건설 계획
4. 마산공단: 임해기계공단 조성계획의 좌절과 굴곡
5. 구미공단: 특혜받은 지역성과 강력한 지연 네트워크의 결합
6. 교포자본의 공단 개발 참여와 ‘애국/애향’의 실천
7. ‘이윤 추구’와 ‘인정 투쟁’의 이분법을 넘어서
3장 | ‘자이니치’의 만박:1970년 일본만국박람회 당시 재일한국인들의 후원 활동 _ 정호석
1. 재일한인의 고국에 대한 ‘공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2. 1970년 일본만국박람회와 재일한국인 만박후원회
3. 호혜적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만박 후원
4. ‘조국의 미래’와 ‘자이니치의 미래’
5. ‘자이니치’의 만박: 만박 후원과 조국 지향의 새로운 비전
6. 재일한인 모국공헌의 역사사회학을 위하여
책속에서
1950년대에는 오사카 지역에서 재일한인을 중심으로 오사카상은과 오사카흥은이란 두 개의 신용조합이 설립되었다. 오사카상은은 한일합작의 신용조합이었지만 재일 한국인이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었으며, 오사카흥은은 순전히 재일한국인을 조합원으로 하는 신용조합이었다.
이 두 신용조합의 설립에는 오사카상공회 회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으며, 신용조합 임원 중에 오사카상공회 관계자가 많았다. …… 상은과 흥은의 설립은 향후 오사카상공회가 발전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신용조합과 오사카상공회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함께 발전해 가는 구도가 이 시기에 확립된 것이다. 일본 금융기관으로부터 융자받기가 곤란한 재일상공인에게 민족계 신용조합의 존재는 생명줄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거꾸로 상은과 흥은은 오사카의 재일상공인이라는 확실한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상은과 흥은은 1960년대에 급속히 발전하면서 1970년대에는 조총련계 신용조합을 제치고 최대의 민족계 금융기관으로 성장하는데, 이러한 상은·흥은의 발전은 오사카상공회 발전의 배경이 되는 한편, 오사카상공인의 성장은 다시 상은·흥은의 성장을 이끌어내었다. _ “제1장 한국 진출을 위한 재일상공인의 조직적 활동”
국교 수립 이전은 물론 국교 수립 이후에도 한동안 한일 간의 인적 교류가 자유롭지 못하던 시기에 오사카상공회에 축적된 한국의 정계 및 재계에 관한 정보는 당시의 재일상공인에게는 희소한 자원이었다. 오사카상공회는 그러한 희소한 자원을 유효하게 활용하기 위한 오사카상공인들의 ‘조직화된 기업자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오사카상공회가 본국의 정책에 협력한 대표적인 사례는 1970년 오사카에서 개최된 일본만국박람회(오사카만박, EXPO’70) 후원 사업일 것이다. …… 1968년 8월 재일한인은 “EXPO’70 재일한국인후원회”(회장 이희건) 발족 총회를 개최하고 오사카만박 후원을 위한 체제를 정비해 1억 8000만 엔이라는 거액의 후원금을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후원회 활동의 핵심인 한국관 건설모금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오사카 지역 상공인들의 활약이었다. 전국적으로 모금한 1억 8000만 엔 중 71%에 달하는 1억 2810만 엔은 오사카 재주 한국인 59명의 기부금이었으며, 그중 53명이 오사카상공회 회원으로, 이들의 기부금만 1억 1900만 엔에 달했다.
오사카상공인이 이처럼 거액의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조국에 대한 뜨거운 애정(애국심)과 오사카 상공업자의 성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유수현 회장의 리더십하에 조직을 정비·강화한 오사카상공회가 상공인의 애국심을 조직할 수 있었다는 측면도 간과하면 안 된다. _ “제1장 한국 진출을 위한 재일상공인의 조직적 활동”
암시장이 재일한인의 경제적 기회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의 하나는 GHQ에 의해 재일한인이 전승국민은 아니지만 해방민족(liberated people)에 해당되어서 일본 정부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특수한 지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재일한인은 이러한 특수한 지위를 이용해 GHQ를 등에 업고 부족한 물자를 각종 루트를 통해 구입하는 것이 가능했으며, 구입한 물자를 암시장에서 거래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재일한인의 암시장에서의 활약은 당시의 일본 위정자들에게 위협으로 비추어지기도 했다. 오사카의 암시장 폐쇄를 단행했던 스즈키 에이지(鈴木?二) 당시 오사카경찰부장은 암시장을 ‘제3국인(第三?人)의 제국’으로 칭하면서 조선인·중국인이 돌출해서 암시장에서 암약하고 있는 것처럼 기술을 하고 있지만, 오사카부경찰부가 조사한 암시장업자의 국적별 구성을 보면 일본인이 75%인 1만 1350명이었으며, 재일한인은 쓰루하시 시장에서 절반을 차지하지만 오사카부 전체로는 21%인 3172명에 지나지 않았다. …… 암시장을 비즈니스 기회로 삼아 성장한 상공인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암시장에서 확보한 물자 또는 그런 물자를 원료로 제조한 제품을 암시장에 판매해 크게 이득을 본 그룹이다. 또 하나는 당시 무법천지라 할 수 있는 암시장의 규율을 잡고 암시장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지도력을 발휘해 재일상공인의 리더 내지는 조정자로 성장한 그룹이다. _ “제1장 보론 오사카한국인상공회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