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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근현대사(아편전쟁 이후)
· ISBN : 9788946070622
· 쪽수 : 904쪽
책 소개
목차
서론
1장 중화혁명당 창당과 「혁명방략」
2장 손문과 오사사건
3장 「혁명방략」과 제국주의
4장 「혁명방략」과 민중운동
5장 「혁명방략」의 전개: 토원전쟁
6장 「혁명방략」의 굴절: 호법
7장 손단동맹
8장 반직삼각동맹
9장 소련의 초기 손문 인식
10장 서북
11장 국공합작으로 가는 길: 손문, 오패부, 요페
12장 손문-요페 연합선언
13장 소련의 원조
14장 손문과 마링의 충돌
15장「11월 개조」
16장 「11월 개조」와 「1월 개조」
17장 장개석의 소련 방문과 코민테른의 「결의」
18장 「1월 개조」로의 이행: 보로딘
19장 「1월 개조」로의 이행: 손문
20장 재정통일과 객군
21장 정식정부
22장 북벌
23장 마지막 시도: 국민회의, 일본 방문
결론
저자소개
책속에서
첫 번째로 지적된 ‘동맹회의 통일성 결여’에 대해 살펴보자. 손문도 혁명의 실패 원인을 통일성을 갖추지 못한 혁명 정당에서 찾았다. 손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화혁명당의 영수인 자신에 대한 절대복종을 통해 조직과 사상의 통일을 이루고자 했다. 먼저 복종의 증거로 입당 시 ‘절대복종 선서’와 서약서, ‘지장 날인’을 요구했다. 그러자 이에 대한 반발이 불거졌다. 황흥은 “손(孫) 선생에 복종하며 다시 혁명을 일으킨다”라고 서약에 쓰는 것은 한 개인에게 복종하는 것이고 한 개인을 도와 혁명을 하는 것과 같으며, 서약에 지장을 찍는 것은 범죄인의 공소장과 같으니, 전자는 불평등하고 후자는 지나치게 모욕적이라고 지적했다.
개혁 조치를 통해 민중에게 선전하고, 민중을 조직해 그들과 함께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도움으로 공화를 이루려는 생각이 손문에게 없었던 듯하다. 당시 중국의 상황에서 국가의 통일과 공화를 완성하려면, ‘적극 무력’ 이외에는 불가하다는 인식이 손문을 붙들고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혁명파가 제국주의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한 것도, 신해혁명 실패의 중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와 관련해, 손문이 제국주의의 간섭을 1, 2차 혁명의 실패 원인으로 보고 있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적극 무력’으로 혁명의 단계를 거쳐 공화를 완성한다면, 제국주의 문제는 모두 해소될 것이라고 믿었다.
손문의 혁명당은 원세개 사후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1차 혁명(무창기의) 때와 비교해보면, 무창기의 때도 손문의 역할 특히 군사적 역할은 거의 없었다. 다만 무창기의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공화혁명의 원조가 손문이었 때문에, 중화민국 임시대총통으로 선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혁명을 계속 추진하지 못하고 원세개에게 정권을 양도했다. …… 크게 보면 손문은 세 가지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것은 근거지, 재정과 무력, 혁명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