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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랑케의 서양 고대사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서양사 > 서양고대사
· ISBN : 9791197147470
· 쪽수 : 535쪽
· 출판일 : 2026-01-10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서양사 > 서양고대사
· ISBN : 9791197147470
· 쪽수 : 535쪽
· 출판일 : 2026-01-10
책 소개
이번에 한국어로 완역된 레오폴트 폰 랑케의 《고대사(Geschichte des Altertums)》는, 그가 말년에 집필한 미완의 대작 《세계사(Weltgeschichte)》 가운데 로마사를 제외한 고대 세계 부분을 발췌하여 엮은 책이다.
《랑케의 서양 고대사》 서평
한국어로 완역된 레오폴트 폰 랑케의 《고대사(Geschichte des Altertums)》는, 그가 말년에 집필한 미완의 대작 《세계사(Weltgeschichte)》 가운데 고대 세계 부분을 발췌하여 엮은 책이다. 원고의 분책 과정이 복잡하여 엄밀히 말하면 세계사 구상 가운데 ‘로마 이전’ 고대 세계(고대 오리엔트와 그리스)를 중심으로 엮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서양 고대사 교과서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페르시아와 그리스 같은 제국들뿐 아니라, 그 주변의 더 작은 국가와 민족들이 서로 충돌하고 교차하는 광대한 무대를 만난다. 랑케의 시선은 무엇보다 국가와 정치에 집중되어 있지만, 그 속에서 움직이는 지도자와 민중의 동기, 욕망, 이해관계를 포착하려 시도한다. 나아가 각 시대의 사회·경제·문화·문명적 배경과 더불어, 인구 구조나 지정학적 조건까지 고려하여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19세기적 저작물이란 한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충분히 가치를 부여한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말 그대로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체험을 하게 된다. 랑케라는 역사학의 거인이 구축한 방대한 원전 독해와 사료 비판의 성과 위에서, 고대인들의 권력·신앙·욕망이 교차하는 궤적을 한눈에 조망하는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 거인의 어깨에서 보이는 풍경은 지극히 19세기 독일적이며 유럽 중심적인 시야라는 점은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같은 차원에서 또 하나 포착해야 할 시점은 기독교 세계관에 투철한 기독교인으로서 랑케의 신학적 시야다.
□ 책의 내용과 서술 방식 - 장점과 한계
《랑케의 고대사》는 고대 근동과 지중해 세계를 중심으로, 인류 문명이 본격적으로 역사 무대에 등장하는 장면을 장대한 서사로 엮어낸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왕조들, 히타이트와 페르시아, 고대 이스라엘, 그리고 고대 그리스 폴리스들의 부상과 몰락 등, 교과서적으로 잘 알려진 사건과 인물들이 랑케 특유의 정치사 중심의 서술 속에 재배열된다. 랑케는 지나치게 이론적 추상으로 치닫지 않으면서, 서로 동떨어져 보이는 사건들을 하나의 큰 흐름 속에 배치하는 데 탁월했다. 그 결과 이 책의 각 장은 대중을 위한 고대사 교양서로서 충분한 효용 가치가 있다. 특히 오늘날처럼 분과 학문과 전문화된 세부 연구들이 쪼개놓은 고대 세계의 파편들에 질린 독자들이라면, 특정 시공간(고대 근동, 지중해)을 대상으로 하지만 일관된 시선으로 읽혀지는 랑케의 통사적 서술이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동시에 랑케 사학의 구조적 한계이기도 하다. 그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국가들의 정치사”이며, 서사의 주연도 대부분 군주·정치가·외교관 같은 지배계급이다. 민중은 이 거대 서사에서 독자적인 행위자로 등장하기보다는, 왕과 국가의 정책이 미치는 영향을 수동적으로 겪는 존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이 제공하는 것은 “오늘날의 고고학과 고대사 연구가 밝힌 최신 고대사”가 아니라, 19세기 독일 역사주의의 시각에서 본 고대사의 한 버전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랑케가 보여주는 엄밀한 사료 독해와, 사료의 범위를 가능한 한 넓히려는 역사가로서의 노력은 오늘날의 연구자와 독자들에게도 새겨둘 의미가 심장하다.
□ 랑케 사학에서의 실증주의’라는 용어의 의미
사학사에서 랑케는 흔히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가 원사료에 입각한 사료비판(Quellenkritik)을 근대 역사학의 기본 방법론으로 확립했기 때문이다. 그는 회고록이나 연대기뿐 아니라, 외교 문서, 공·사적 서한, 관료 기록 등 당대에 거의 주목받지 못하던 문서들을 체계적으로 수집·비판하여 역사 서술에 활용했다. 랑케의 유명한 문구,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가(wie es eigentlich gewesen)’를 보여주는 것이다”라는 표현은 역사학을 “객관적 사실을 연구하는 과학”으로 이해하는 경향에 촉매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생겨난 치명적인 오해가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흔히 말하는 “실증사학”,“실증주의 역사학”이라는 표현이 랑케의 객관주의 사관과 연결되면서, 이 표현이 콩트가 말한 의미의 자연과학적 ‘실증주의(positivism)’를 그대로 역사에 적용한 것처럼 이해된 것이다. 실제 랑케 자신은 자연과학식 법칙 탐구보다는, 역사적 개체성(historische Individualitat)과 각 시대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독일식 역사주의(Historismus)에 충실한 역사가다. 그는 헤겔식의 보편적 역사법칙이나 계몽주의의 직선적 진보사관에 비판적이었으며, 각 시대와 민족, 국가는 각각 고유한 가치와 역사적 의의를 지닌 개성적 실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랑케의 사료비판은 “자연과학처럼 법칙을 세우고 예측하기 위한 방법”이라기보다는 각 시대의 고유한 모습을 최대한 왜곡 없이 재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가 강조한 것은 “과거를 우리 시대의 관념으로 재단하지 말고, 가능한 한 그 시대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는 태도에 가까웠다. 랑케 사학에 있어 “실증주의”라는 용어 자체는 랑케 후학들의 통념을 반영하지만, 랑케 사학 전체를 ‘실증주의’로 환원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다. 그의 사학은 자연과학적이라기보다 역사주의적·신학적 색채를 강하게 지닌다.
□ 랑케 객관주의에 대한 대표적 비판 - 콜링우드의 주관주의
E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자신의 저술에서 랑케 객관주의의 직접적인 학문적 비판자로서 콜링우드를 내세우고 있다.
랑케가 “역사가는 자신의 주관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료 속에 담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면, 콜링우드는 “역사적 사실은 언제나 어떤 관점과 질문을 전제로 선택된 것이며, 역사가의 상상력과 해석 없이는 의미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양자는 서로를 비판하지만, 어떻게 역사적 진실에 다가갈 것이냐는 문제의식은 같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절대적이고 완전한 객관성”이라는 이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 한계를 어떻게 인식할 것이냐는 관점에서 차이를 보일 뿐이다.
따라서 두 입장을 정리해 보자면, 랑케가 “역사가라면 현실적으로 도달 가능 여부를 떠나, 최대한 객관적 사실의 정확한 재구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콜링우드는 “인간의 인지 능력과 언어, 사료 자체의 한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순진한 객관주의는 존재할 수 없으며, 역사란 본질적으로 해석과 재구성의 학문이다.”라는 입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양자는 방법론상으로 대립하고 있지만, 그 어느 쪽도 “역사적 진실 추구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할 때, 19세기적 객관주의와 20세기 역사 철학의 비판 간의 학문적 긴장과 생산성이 보다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 19세기 시대적 한계와 그 의미 - 신앙과 학문의 혼종
이 책은 전형적인 19세기 후반 독일 역사학의 산물이다. 그 이후 20·21세기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방대한 고고학 발굴, 동방학·비문학 연구, 인류학과 사회경제사 연구의 성과는 당연히 반영되어 있지 않다. 오늘날에는 상식에 가까운 많은 사실들이 랑케 당시에는 미지의 영역이었거나, 제한된 자료 속에서 추정에 머물러야 했던 사안들이었다.
랑케는 평생 열렬한 루터파 개신교 신자였고, 그의 역사관에는 신의 섭리와 계시, 각 시대에 부여된 신적 소명에 대한 신념이 깊이 스며 있다. 그는 “모든 시대는 신에게 직접 이어지며, 각 시대는 그것 자체로서 신 앞에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행위와 국가의 흥망성쇠를 통해 신의 의지가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읽어내려 했다. 이 점에서 랑케는 신학적·철학적 전제 위에 서 있는 역사학자였다. 그의 역사연구 작업은 중세의 신학적 사유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시대적 배경 하에서, 합리적 이성과 문헌학적 방법을 통해 신과 역사적 진실에 다가가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신학과 역사학이 아직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던 시기에, 랑케는 사료비판과 문헌학적 방법을 통해 맹목적인 신학적 해석을 견제하고자 했다. 동시에 그는 역사학을 완전히 세속화·탈종교화하지 않고, 역사를 신적 섭리와 연결짓는 신학적 시야를 끝까지 유지했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역사주의(Historismus)”라는 19세기 독일적 사유의 독특한 형식이며, 이는 이후 서구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쳤다. 랑케식 역사주의는 신학적 전제와 문헌학적 방법이 긴장 속에서 공존하는 혼종적 형식이었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한다면, 《랑케의 고대사》는 단지 “구식 고대사 교양서”가 아니라, 근대 역사학이 형성되던 현장의 지적 공기와 긴장을 보여주는 사료로도 읽힐 수 있다.
□ 《랑케의 고대사》가 21세기 한국 독자에게 갖는 의의 - 유사 역사학과의 대비
유사 역사서로 유명한 《환단고기》는 오늘날 다수의 전문 역사학자들에 의해 위작이거나, 최소한 신뢰할 수 없는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그 이유는 텍스트 내부의 언어·문체·어휘·사상적 내용이 실제 전통 사료와 맞지 않는 점, 다른 사료와의 교차 검증이 되지 않는 점, 근대적 민족주의 담론이 투영된 흔적 등 복합적이다. 반면 랑케의 저작은, 비록 19세기 유럽 중심주의와 신학적 전제를 품고 있지만, 사료에 대한 엄격한 외적·내적 비판을 거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학문적 품격이 다르다. 이 차이는 단지 “내용의 옳고 그름”을 넘어, 역사에 접근하는 태도와 방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유사 역사학은 이미 믿고 싶은 결론을 전제한 뒤, 그에 맞는 “사료 비슷한 것”을 끌어다 맞추는 경향이 강하다. 랑케 사학의 전통은, 먼저 사료 자체를 의심하고, 그 신뢰성과 맥락을 검증한 뒤, 그 결과에 맞추어 서술을 구성하려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중세식 문자주의 신앙과 민족주의적 신화가 결합한 역사 인식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랑케의 《고대사》는 단지 고대 세계에 대한 지식을 제공한다는 차원을 넘어, “역사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교본이 될 수 있다. 특히 성서를 포함한 종교적 텍스트와 민족 신화를 둘러싼 논쟁에서, 사료비판과 역사적 맥락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지 역사학 관련자나 역사 교양에 관심 많은 일반 독자들보다 역사와 신앙의 관계를 고민하는 종교인과 신앙인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하다. 19세기 루터파 역사가가 고대 세계와 신의 섭리를 어떻게 함께 보려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신앙과 학문의 경계를 고민하는 종교인과 신앙인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통찰을 줄 것이다.
□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상의 설명 내용들을 감안할 때, 《랑케의 고대사》의 현재적 가치는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근대 역사학의 기원을 보여주는 고전이라는 점이다. 사료비판과 역사주의가 어떻게 구체적인 서술 속에서 구현되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둘째, 19세기 독일·유럽 중심적 시각이 고대 세계를 어떻게 재구성했는지 보여주는 사상사적 자료라는 점이다. 이 책은 고대사 내용 자체만큼이나, 역사에 관한 19세기 유럽인의 자기 이해를 비춰 주는 거울이다.
세째, 유사 역사학과 신앙적 문자주의가 득세하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사료와 텍스트를 대하는 성실한 태도가 무엇인지 지문하게 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가스라이팅 비즈니스라는 조롱을 받는 개신교 신자라면 자신이 믿는 종교의 본령과 신도로서의 올바른 판단력과 분별력, 그리고 신앙적 자세를 점검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최신의 고대사 연구 성과를 대체할 수 없으며, 그 내용과 해석은 오늘의 눈으로 보았을 때 여러 면에서 수정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바로 그 한계와 장점이 뒤엉킨 지점에서, 독자로서 “역사란 무엇이며, 어떻게 써야 하는가”라는 근본 질문을 던지게 하는 고전으로서의 저력이 드러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읽을 때에, 한편으로는 랑케의 웅장한 서사와 치밀한 사료 독해를 즐기되, 다른 한편으로는 19세기라는 시공간, 루터파라는 신앙적 배경, 독일 역사주의라는 지적 맥락을 항상 의식하면서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읽어 나갈 때, 《랑케의 고대사》는 단순히 오래된 19세기 텍스트라는 차원을 넘어, 오늘날의 역사 인식과 학문, 그리고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살아 있는 텍스트로 다가올 것이다.
한국어로 완역된 레오폴트 폰 랑케의 《고대사(Geschichte des Altertums)》는, 그가 말년에 집필한 미완의 대작 《세계사(Weltgeschichte)》 가운데 고대 세계 부분을 발췌하여 엮은 책이다. 원고의 분책 과정이 복잡하여 엄밀히 말하면 세계사 구상 가운데 ‘로마 이전’ 고대 세계(고대 오리엔트와 그리스)를 중심으로 엮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서양 고대사 교과서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페르시아와 그리스 같은 제국들뿐 아니라, 그 주변의 더 작은 국가와 민족들이 서로 충돌하고 교차하는 광대한 무대를 만난다. 랑케의 시선은 무엇보다 국가와 정치에 집중되어 있지만, 그 속에서 움직이는 지도자와 민중의 동기, 욕망, 이해관계를 포착하려 시도한다. 나아가 각 시대의 사회·경제·문화·문명적 배경과 더불어, 인구 구조나 지정학적 조건까지 고려하여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19세기적 저작물이란 한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충분히 가치를 부여한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말 그대로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체험을 하게 된다. 랑케라는 역사학의 거인이 구축한 방대한 원전 독해와 사료 비판의 성과 위에서, 고대인들의 권력·신앙·욕망이 교차하는 궤적을 한눈에 조망하는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 거인의 어깨에서 보이는 풍경은 지극히 19세기 독일적이며 유럽 중심적인 시야라는 점은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같은 차원에서 또 하나 포착해야 할 시점은 기독교 세계관에 투철한 기독교인으로서 랑케의 신학적 시야다.
□ 책의 내용과 서술 방식 - 장점과 한계
《랑케의 고대사》는 고대 근동과 지중해 세계를 중심으로, 인류 문명이 본격적으로 역사 무대에 등장하는 장면을 장대한 서사로 엮어낸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왕조들, 히타이트와 페르시아, 고대 이스라엘, 그리고 고대 그리스 폴리스들의 부상과 몰락 등, 교과서적으로 잘 알려진 사건과 인물들이 랑케 특유의 정치사 중심의 서술 속에 재배열된다. 랑케는 지나치게 이론적 추상으로 치닫지 않으면서, 서로 동떨어져 보이는 사건들을 하나의 큰 흐름 속에 배치하는 데 탁월했다. 그 결과 이 책의 각 장은 대중을 위한 고대사 교양서로서 충분한 효용 가치가 있다. 특히 오늘날처럼 분과 학문과 전문화된 세부 연구들이 쪼개놓은 고대 세계의 파편들에 질린 독자들이라면, 특정 시공간(고대 근동, 지중해)을 대상으로 하지만 일관된 시선으로 읽혀지는 랑케의 통사적 서술이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동시에 랑케 사학의 구조적 한계이기도 하다. 그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국가들의 정치사”이며, 서사의 주연도 대부분 군주·정치가·외교관 같은 지배계급이다. 민중은 이 거대 서사에서 독자적인 행위자로 등장하기보다는, 왕과 국가의 정책이 미치는 영향을 수동적으로 겪는 존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이 제공하는 것은 “오늘날의 고고학과 고대사 연구가 밝힌 최신 고대사”가 아니라, 19세기 독일 역사주의의 시각에서 본 고대사의 한 버전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랑케가 보여주는 엄밀한 사료 독해와, 사료의 범위를 가능한 한 넓히려는 역사가로서의 노력은 오늘날의 연구자와 독자들에게도 새겨둘 의미가 심장하다.
□ 랑케 사학에서의 실증주의’라는 용어의 의미
사학사에서 랑케는 흔히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가 원사료에 입각한 사료비판(Quellenkritik)을 근대 역사학의 기본 방법론으로 확립했기 때문이다. 그는 회고록이나 연대기뿐 아니라, 외교 문서, 공·사적 서한, 관료 기록 등 당대에 거의 주목받지 못하던 문서들을 체계적으로 수집·비판하여 역사 서술에 활용했다. 랑케의 유명한 문구,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가(wie es eigentlich gewesen)’를 보여주는 것이다”라는 표현은 역사학을 “객관적 사실을 연구하는 과학”으로 이해하는 경향에 촉매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생겨난 치명적인 오해가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흔히 말하는 “실증사학”,“실증주의 역사학”이라는 표현이 랑케의 객관주의 사관과 연결되면서, 이 표현이 콩트가 말한 의미의 자연과학적 ‘실증주의(positivism)’를 그대로 역사에 적용한 것처럼 이해된 것이다. 실제 랑케 자신은 자연과학식 법칙 탐구보다는, 역사적 개체성(historische Individualitat)과 각 시대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독일식 역사주의(Historismus)에 충실한 역사가다. 그는 헤겔식의 보편적 역사법칙이나 계몽주의의 직선적 진보사관에 비판적이었으며, 각 시대와 민족, 국가는 각각 고유한 가치와 역사적 의의를 지닌 개성적 실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랑케의 사료비판은 “자연과학처럼 법칙을 세우고 예측하기 위한 방법”이라기보다는 각 시대의 고유한 모습을 최대한 왜곡 없이 재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가 강조한 것은 “과거를 우리 시대의 관념으로 재단하지 말고, 가능한 한 그 시대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는 태도에 가까웠다. 랑케 사학에 있어 “실증주의”라는 용어 자체는 랑케 후학들의 통념을 반영하지만, 랑케 사학 전체를 ‘실증주의’로 환원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다. 그의 사학은 자연과학적이라기보다 역사주의적·신학적 색채를 강하게 지닌다.
□ 랑케 객관주의에 대한 대표적 비판 - 콜링우드의 주관주의
E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자신의 저술에서 랑케 객관주의의 직접적인 학문적 비판자로서 콜링우드를 내세우고 있다.
랑케가 “역사가는 자신의 주관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료 속에 담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면, 콜링우드는 “역사적 사실은 언제나 어떤 관점과 질문을 전제로 선택된 것이며, 역사가의 상상력과 해석 없이는 의미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양자는 서로를 비판하지만, 어떻게 역사적 진실에 다가갈 것이냐는 문제의식은 같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절대적이고 완전한 객관성”이라는 이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 한계를 어떻게 인식할 것이냐는 관점에서 차이를 보일 뿐이다.
따라서 두 입장을 정리해 보자면, 랑케가 “역사가라면 현실적으로 도달 가능 여부를 떠나, 최대한 객관적 사실의 정확한 재구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콜링우드는 “인간의 인지 능력과 언어, 사료 자체의 한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순진한 객관주의는 존재할 수 없으며, 역사란 본질적으로 해석과 재구성의 학문이다.”라는 입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양자는 방법론상으로 대립하고 있지만, 그 어느 쪽도 “역사적 진실 추구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할 때, 19세기적 객관주의와 20세기 역사 철학의 비판 간의 학문적 긴장과 생산성이 보다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 19세기 시대적 한계와 그 의미 - 신앙과 학문의 혼종
이 책은 전형적인 19세기 후반 독일 역사학의 산물이다. 그 이후 20·21세기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방대한 고고학 발굴, 동방학·비문학 연구, 인류학과 사회경제사 연구의 성과는 당연히 반영되어 있지 않다. 오늘날에는 상식에 가까운 많은 사실들이 랑케 당시에는 미지의 영역이었거나, 제한된 자료 속에서 추정에 머물러야 했던 사안들이었다.
랑케는 평생 열렬한 루터파 개신교 신자였고, 그의 역사관에는 신의 섭리와 계시, 각 시대에 부여된 신적 소명에 대한 신념이 깊이 스며 있다. 그는 “모든 시대는 신에게 직접 이어지며, 각 시대는 그것 자체로서 신 앞에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행위와 국가의 흥망성쇠를 통해 신의 의지가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읽어내려 했다. 이 점에서 랑케는 신학적·철학적 전제 위에 서 있는 역사학자였다. 그의 역사연구 작업은 중세의 신학적 사유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시대적 배경 하에서, 합리적 이성과 문헌학적 방법을 통해 신과 역사적 진실에 다가가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신학과 역사학이 아직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던 시기에, 랑케는 사료비판과 문헌학적 방법을 통해 맹목적인 신학적 해석을 견제하고자 했다. 동시에 그는 역사학을 완전히 세속화·탈종교화하지 않고, 역사를 신적 섭리와 연결짓는 신학적 시야를 끝까지 유지했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역사주의(Historismus)”라는 19세기 독일적 사유의 독특한 형식이며, 이는 이후 서구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쳤다. 랑케식 역사주의는 신학적 전제와 문헌학적 방법이 긴장 속에서 공존하는 혼종적 형식이었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한다면, 《랑케의 고대사》는 단지 “구식 고대사 교양서”가 아니라, 근대 역사학이 형성되던 현장의 지적 공기와 긴장을 보여주는 사료로도 읽힐 수 있다.
□ 《랑케의 고대사》가 21세기 한국 독자에게 갖는 의의 - 유사 역사학과의 대비
유사 역사서로 유명한 《환단고기》는 오늘날 다수의 전문 역사학자들에 의해 위작이거나, 최소한 신뢰할 수 없는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그 이유는 텍스트 내부의 언어·문체·어휘·사상적 내용이 실제 전통 사료와 맞지 않는 점, 다른 사료와의 교차 검증이 되지 않는 점, 근대적 민족주의 담론이 투영된 흔적 등 복합적이다. 반면 랑케의 저작은, 비록 19세기 유럽 중심주의와 신학적 전제를 품고 있지만, 사료에 대한 엄격한 외적·내적 비판을 거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학문적 품격이 다르다. 이 차이는 단지 “내용의 옳고 그름”을 넘어, 역사에 접근하는 태도와 방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유사 역사학은 이미 믿고 싶은 결론을 전제한 뒤, 그에 맞는 “사료 비슷한 것”을 끌어다 맞추는 경향이 강하다. 랑케 사학의 전통은, 먼저 사료 자체를 의심하고, 그 신뢰성과 맥락을 검증한 뒤, 그 결과에 맞추어 서술을 구성하려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중세식 문자주의 신앙과 민족주의적 신화가 결합한 역사 인식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랑케의 《고대사》는 단지 고대 세계에 대한 지식을 제공한다는 차원을 넘어, “역사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교본이 될 수 있다. 특히 성서를 포함한 종교적 텍스트와 민족 신화를 둘러싼 논쟁에서, 사료비판과 역사적 맥락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지 역사학 관련자나 역사 교양에 관심 많은 일반 독자들보다 역사와 신앙의 관계를 고민하는 종교인과 신앙인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하다. 19세기 루터파 역사가가 고대 세계와 신의 섭리를 어떻게 함께 보려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신앙과 학문의 경계를 고민하는 종교인과 신앙인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통찰을 줄 것이다.
□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상의 설명 내용들을 감안할 때, 《랑케의 고대사》의 현재적 가치는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근대 역사학의 기원을 보여주는 고전이라는 점이다. 사료비판과 역사주의가 어떻게 구체적인 서술 속에서 구현되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둘째, 19세기 독일·유럽 중심적 시각이 고대 세계를 어떻게 재구성했는지 보여주는 사상사적 자료라는 점이다. 이 책은 고대사 내용 자체만큼이나, 역사에 관한 19세기 유럽인의 자기 이해를 비춰 주는 거울이다.
세째, 유사 역사학과 신앙적 문자주의가 득세하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사료와 텍스트를 대하는 성실한 태도가 무엇인지 지문하게 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가스라이팅 비즈니스라는 조롱을 받는 개신교 신자라면 자신이 믿는 종교의 본령과 신도로서의 올바른 판단력과 분별력, 그리고 신앙적 자세를 점검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최신의 고대사 연구 성과를 대체할 수 없으며, 그 내용과 해석은 오늘의 눈으로 보았을 때 여러 면에서 수정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바로 그 한계와 장점이 뒤엉킨 지점에서, 독자로서 “역사란 무엇이며, 어떻게 써야 하는가”라는 근본 질문을 던지게 하는 고전으로서의 저력이 드러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읽을 때에, 한편으로는 랑케의 웅장한 서사와 치밀한 사료 독해를 즐기되, 다른 한편으로는 19세기라는 시공간, 루터파라는 신앙적 배경, 독일 역사주의라는 지적 맥락을 항상 의식하면서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읽어 나갈 때, 《랑케의 고대사》는 단순히 오래된 19세기 텍스트라는 차원을 넘어, 오늘날의 역사 인식과 학문, 그리고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살아 있는 텍스트로 다가올 것이다.
목차
랑케의 서문
제1장 고대 이집트
제2장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제3장 티로스와 아시리아
제4장 메디아-페르시아 제국
제5장 고대 헬라스(그리스)
제6장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전쟁
제7장 아테네의 지도자들과 민주정치
ㆍ아리스티데스와 페리클레스가 키몬과 대항하다
ㆍ페리클레스의 국가 운영
ㆍ클레온과 그의 시대
ㆍ알키비아데스
ㆍ아테네의 상황: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마지막 해와 그 이후의 첫해
제8장 그리스 문학 속의 신성한 것들 297
ㆍ초기 철학자들: 주로 동부와 서부 식민지에서
ㆍ핀다로스
ㆍ아이스킬로스
ㆍ소포클레스
ㆍ에우리피데스
ㆍ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
ㆍ아테네의 지적 생활
ㆍ소크라테스
ㆍ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제9장 기원전 4세기 전반의 페르시아-그리스 관계 357
제10장 마케도니아의 세계 제국 383
ㆍ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와 데모스테네스 385
ㆍ알렉산드로스 대왕 408
제11장 마케도니아-헬레니즘 왕국의 기원 453
제12장 카르타고와 시라쿠사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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