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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양철학 > 서양철학 일반
· ISBN : 9788947540766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16-03-02
책 소개
목차
여는 글
프롤로그 세 가지 ‘산맥’으로 알아보는 서양사상
제1산맥 아리스토텔레스 제국의 건설
1.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이데아’
스승 소크라테스와 제자 플라톤, 진짜 위대한 사람은? 21
현실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24
피타고라스학파와 이데아의 관계 29
서양사상의 서양다움이란? 34
보이는 것을 믿지 않았던 플라톤 37
이데아를 추구하는 인간은 위대하다 42
‘선’이 전부다 45
2. 아리스토텔레스,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는 욕망
서양문명의 ‘멈추지 않는 힘’의 근원은? 48
세계의 모든 것을 설명해버린 아리스토텔레스 52
너무 과했어요, 아리스토텔레스 씨 56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 59
이데아는 유전자였다? 62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66
서양의 민중은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 69
3. 기독교, 만들어진 ‘신’이라는 권력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유일한 원리를 찾아서 72
비판과 부정이야말로 그리스 사상의 주춧돌 75
부정 에너지를 봉해버린 기독교 79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용한 천재 아우구스티누스 83
기독교로부터의 탈출: 자연과학의 탄생 87
서양의 유전자에 새겨진 부정 에너지의 부활 90
제2산맥 근대 합리주의와 철학의 완성
4. 데카르트, 원점은 나다
비판에서 시작된 근대 합리주의 97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의 진짜 의미 100
코기토와 좌표축의 뜻밖의 관계 105
원점을 설정해 모든 것의 위치를 정하려는 욕망 107
데카르트에 의한 신의 존재 증명 111
5. 칸트, 경험 이전에 있는 것
선천적 인식, ‘아 프리오리’에 대하여 114
무엇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인가? 120
사람과 개는 다른 세계에 산다 123
단념 끝에 남는 것은? 126
이성으로 지각의 한계를 인식하다 : 초월론적 주관성 129
6. 헤겔, 역사도 이성으로 움직인다
역사를 움직이는 ‘절대정신’ 135
변증법이란 무엇인가 137
인간 이성의 승리 140
근대적 자아의 각성 142
한 번은 근대 합리주의자가 되어보자 145
근대 합리주의의 가치와 한계 148
제3산맥 철학을 때려 부숴라
7. 니체, 마침내 신은 죽었다
니체가 지금도 사랑받는 이유 155
정신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라 157
푸코가 비판한 복종의 메커니즘 161
자신을 극복하는 초인이 되라 164
정신 변화의 3단계: 낙타, 사자, 어린아이 167
힘에의 의지를 갖고 자신을 긍정하라 170
스스로 인생을 선택할 각오: 영겁회귀 173
인간이 자유롭기 위해 필요한 것 177
8. 하이데거, 이 세계에 ‘있다’는 것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하고 싶었던 말 181
죽음을 각오하는 삶 184
세계 속에서 우리는 만난다: 세계내존재 188
한 사람 한 사람이 살기 위한 철학 190
건전한 자기긍정감을 갖자 194
편견은 괄호 안에 넣자: 후설의 현상학 197
본질은 직관으로 파악하라 201
주관의 공통부분을 중시하다 : 간주관성 204
이성보다 신체가 중요하다: 메를로퐁티의 현상학 209
신체가 세계를 만든다 211
9. 다윈, 프로이트, 마르트스, 과학인가, 사상인가?
진화론을 통한 신으로부터의 탈출 214
다윈이 진화에 주목한 이유 217
진화론은 과학 이론이자 사상이다 219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의 힘 224
꿈이 입증한 프로이트 이론의 설득력 225
성적 충동이 모든 것을 움직인다 228
‘관계’에 의미가 있다: 마르크스의 관계론 232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인가, 사상인가? 237
돈만이 자본은 아니다 239
10. 구조주의, 말 자체에는 의미가 없다
말 자체에는 의미가 없다: 소쉬르의 언어학 242
서양중심주의로부터의 해방: 레비스트로스의 친족 연구 247
인류는 모두 똑같다?: 촘스키의 생성문법 250
함수로 이해할 수 있는 구조주의 253
세계를 발전시킨 구조주의적 사고방식 255
에필로그
리뷰
책속에서
사실 우리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철학의 공백’ 같은 존재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람이 모든 것에 대해 설명해버린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 인간이 이렇게 광범위한 분야를 다룰 수 있나 경탄할 정도로 많은 연구를 했다. 가령 그는 생물 분야를 비롯해 물체의 운동에 대해서도 말했고, 형이상학과 문학 이론 등 온갖 분야에서 일가견을 피력했다. 모든 것에 대해 설명해버린 인물이기 때문에 어떤 분야를 파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온다. 모든 영역에 걸쳐 전능한 지(知)의 거장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엇을 한 사람이냐고 물으면 한 마디로 혼자서 ‘세계를 설명한 사람’ 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가 이렇게 광범위한 분야에 손을 댄 것도 서양 특유의 ‘도저히 멈출 수 없는 파워’를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것을 설명해버린 아리스토텔레스> 중에서
하나의 원리로 세계를 설명하고 싶다는 것은 매우 오래된 욕망이다. 그 증거로 그리스에서 처음 철학이 생겨났을 때 사상가들이 빠짐없이 매달린 명제가 바로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나’하는 것이었다. 철학의 시조로 불리는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생각했다.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을 아에르(공기)라고 했다. 인간은 어째서 이런 욕망에 사로잡히는 걸까? 그것은 이 욕망의 정체가 ‘신이 되고 싶은 욕망’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신’뿐이다. 그러나 우주를 창조할 수는 없다고 해도 인식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야망을 품는 것이 인간이다. 즉,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 가운데 ‘전능’은 무리더라도 ‘전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야망이 많은 사람도 전능을 바라지는 않았다. 반면에 전지는 수많은 인간이 품었던 야망이다. -<세계를 설명할 유일한 원리를 찾아서> 중에서
일반적으로 ‘좌표축’ 과 ‘코기토’ 가 관계성을 갖고 언급되는 일은 없는데, 나는 이 두 가지가 원리적으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제로 지점은 나다!’ 하는 것이 바로 ‘코기토’의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좌표축을 설정하려면 원점을 정해야 한다. 즉, 좌표축을 설정한다는 것은 ‘내가 제로 지점이다’ 하는 선언이다. 그리고 원점을 기준으로 다른 모든 것들의 위치가 정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은 타인대로 좌표축을 설정해 “제로 지점은 나다” 하고 말하면 된다. 나도, 다른 사람도 각자 자기 중심이면 된다.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엄청난 존재다. 이렇게 생각하면 데카르트가《방법서설》에서 “양식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다”라고 한 말은 조리에 맞는다. 그리고 이성을 이용해 스스로 좌표축을 설정해서 제로 지점이 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신에게 축복받은 존재인가도 알 수 있다. 그런 놀라운 양식을 받은 인간은 그것을 활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도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나을 정도로 이성을 잃어버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왜일까. -<코기토와 좌표축의 뜻밖의 관계> 중에서
니체가 던진 도전장의 내용은 ‘진리라는 이름으로 속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진리라는 미명에 현혹되지 말고 그것들의 허식을 벗겨 정체를 밝혀서 자신의 손으로 주체성을 되찾으라는 외침이었다. 간단히 말해 니체는 “기죽지 마!” 하고 외쳤다. 아마도 그는 위축됐던 경험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기독교의 압력을 받으며 기독교 사상에 의심조차 갖지 못한 유소년기를 보냈을 것이다. 어른이 된 니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우고 연구했다. 그런 과정에서 숨 막히는 답답함을 느끼고 의문이 싹텄을 것이다. ‘내게서 생기를 빼앗는 이것은 뭘까’ 하고 말이다. -<정신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