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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러시아소설
· ISBN : 9788949715032
· 쪽수 : 690쪽
· 출판일 : 2016-09-09
책 소개
목차
제5부 … 685
제6부 … 909
책속에서
눈이 내렸지만 떨어지는 도중에 녹아들었다. 정오가 되자 벼랑 쪽에서 둔한 소리를 내며 눈 덩어리가 미끄러져 내렸다. 돈 건너편에서는 숲이 쏴쏴 소리를 질렀다. 떡갈나무 기둥의 얼음이 녹아 검은 살갗을 드러냈다. 가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눈을 뚫고 낙엽이 수북이 쌓인 대지까지 스며들었다. 과수원에서는 벚나무 숲이 향기를 풍겼다. 취할 듯한 봄. 해빙기의 향기가 사람의 마음을 충돌질했다. 돈강의 얼음에 구멍이 뚫렸다. 강가 언저리에서는 얼음이 떠올라 흘러가고, 얼음 구멍은 풀빛의 밝고 맑은 물에 잠겨버렸다.
모든 것은 그가 짐승처럼 키작크 구덩이 속에 몸을 숨기고 외부의 사소한 소리와 인기척에 마음 졸였던 며칠 동안에 결정났고 또한 검토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진실의 탐구와 동요와 변천과 고통스러운 내면의 투쟁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그 흔적 또한 남아 있지 않았다.
몇 날이 비구름의 그늘에 덮인 것처럼 지나가 버렸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이제까지의 모색이 무의미하고 공허한 것으로 여겨졌다. 무엇을 그리도 생각할 것이 있었단 말인가. 어째서 몰이꾼들에게 쫓기는 이리같이 출구를 찾아 헤매고 모순의 해결을 찾아 우왕좌왕했던 것일까? 어차피 인생이란 그 날개 밑에서 편안히 쉴 수만은 없다는 진리는 애초부터 알지 않았던가. 지금은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누구나 혼자만의 진리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만의 길이 있다고 여겨졌다. 한 조각의 빵을 위해, 몇 뼘도 안 되는 땅을 위해, 살아갈 권리를 위해서 인간은 싸워 왔다. 그리고 태양이 인간을 비추고, 혈관 속에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는 동안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리는 프로호르와 함께 다섯 명의 카자흐를 데리고 앞으로 오고 있었다. 마치 그의 눈 속에 있던 들보를 떼어낸 것 같았다. 그는 공격전과 마찬가지로 다시금 이 세상을 비치고 있는 태양과 짚더미 옆에 녹고 있는 눈을 보고, 봄철의 지저귐을 듣고 발밑으로 스며드는 봄날의 은은한 향기를 느꼈다. 인생은 방금 전에 흘렀던 피로 퇴색하지도, 젊음을 잃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인색하고 기만적인 기쁨으로 더욱더 충동질하면서 그의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눈이 녹아버린 검은 대지를 배경으로 한 줌의 구름이 한층 더 돋보이고 한결 더 매혹적으로 그 흰 빛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