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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러시아소설
· ISBN : 9788949715025
· 쪽수 : 695쪽
· 출판일 : 2016-09-09
책 소개
목차
제2부… 137
제3부… 285
제4부… 486
책속에서
슈토크만은 불이 꺼진 담뱃재를 파이프에서 떨어냈다.
사팔뜨기인 루케시카네 셋방에서는 오랫동안 고르고 고른 끝에 열 명쯤 되는 카자흐 중심인물이 조직되었다. 슈토크만은 그 중심이 되어 자기만 알고 있는 목적을 향해 줄기차게 이끌어 갔다. 벌레가 나무를 파먹어 들어가듯 소박한 사고방식이며 습관을 무너뜨리고, 현존하는 제도에 대한 반감과 증오를 불어넣었다. 처음에는 차가운 불신의 철벽에 부딪쳤으나 굽히지 않고 물고늘어졌다. 이리하여 불만의 씨가 뿌려졌다. 이 씨가 4년 뒤 낡고 약한 껍질을 깨뜨리고, 강하고 싱싱한 싹을 틔우게 되리라고 어느 누가 짐작이나 했으랴.
지루하고 맥 빠진 듯한 생활이 흘러갔다. 일에서 떠난 젊은 카자흐들은 처음에는 지겹고 답답해서 그저 여러 가지 쓸데없는 이야기로 마음을 달랬다. 중대는 별채인 커다란 기와집에 자리를 잡았고, 밤이 되면 창틀에 판자를 얹은 급조된 침상에서 잤다. 창문에 문풍지를 붙인 종이 한쪽이 떨어져 밤마다 멀리서 목동이 피리를 부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리는 갖가지 코 고는 소리 속에 몸을 누이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온몸이 허전한 애수에 여위어 감을 느꼈다. 종이가 떨리는 그 가냘픈 소리는 마치 핀셋 같은 것으로 심장의 아랫부분을 꽉 집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면 그는 당장 일어나 마구간으로 가서 밤색 말에 안장을 얹고 올라타서는, 단숨에 집으로 달려가고 싶어서 못 견딜 지경이 되었다.
지겹고 단조로운 일과는 생기를 빼앗아 갔다. 해 질 무렵 나팔수가 ‘훈련의 끝’을 알리는 나팔을 불기까지는 도보 훈련이나 승마 훈련에 쫓기고, 그다음엔 안장을 내려 말을 손질하고, 여물통에 모인 말들에게 사료를 주고, 바보 같은 근무수칙을 외고, 그리고 10시가 되어서야 점호가 끝나고 보초 배정이 끝나면 취침 전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상사가 송아지 같은 동그란 눈으로 대열을 쓱 둘러보고는, 그 굵고 탁한 목소리를 높여서 주기도문을 선창했다.
이튿날 아침이 되면 같은 일이 되풀이되었다. 이렇게 해서 날짜는 바뀌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쌍둥이처럼 꼭 같은 나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