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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러시아소설
· ISBN : 9788949715049
· 쪽수 : 592쪽
· 출판일 : 2016-09-09
책 소개
목차
제7부…1387
제8부…1722
숄로호프 생애와 문학…1950
숄로호프 연보…1966
책속에서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이렇게 군마가 빙그르르 몸을 돌려 자기 집 입구 옆의 흙을 발굽으로 파내 던지고, 뒤이어 길가와 광야의 길 없는 길을 거쳐서 그를 전선으로―시커먼 죽음이 카자흐들을 노리고 있고, 카자흐들의 노래 구절에 의하면 ‘밝으나 어두우나 24시간 내내 두려움과 슬픔만’이 가로놓인 그 전선으로―태워간 것일까. 그러나 유독 이 화창한 아침만큼, 무거운 마음으로 고향집을 나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막연한 예감과 꽉 죄어드는 듯한 불안과 우수에 견딜 수 없어 하며, 그는 고삐를 안장 테 위에 놓아둔 채 뒤도 돌아다보지 않고 언덕 가까이까지 나아갔다. 먼지투성이 길을 풍차집 쪽으로 꺾인 모퉁이에서 돌아다보았다. 문 옆에는 나탈리야 혼자만이 서 있었다. 상쾌한 새벽 미풍이 그녀의 손에서 검은 상장(喪章)과도 같은 목도리를 떼어내려 하고 있었다.
푸르디푸른 심연(深淵)과도 같은 하늘에 바람에 불려 끓어오른 구름이 끝없이 헤엄쳐 갔다. 파도처럼 구비치는 지평선 위에는 안개가 가로놓여 있었다. 말은 느린 걸음으로 나아갔다. 프로호르는 안장 위에서 몸을 흔들며 꾸벅꾸벅 졸았다. 그리고리는 이를 악물고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는 녹색 버드나무 숲이며, 변덕스럽게 꾸불꾸불 구부러진 은빛의 돈강 줄기며, 돌아가고 있는 풍차 날개를 보았다. 이윽고 길은 남쪽으로 빗나갔다. 밟혀서 망가진 곡물 그늘의 습지도, 돈도, 풍차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그리고리는 휘파람으로 뭔가를 불면서, 조그마한 장식용 구슬 같은 땀에 덮인, 금빛으로 빛나는 붉은 털 말의 목을 열심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는 안장 위에서 몸을 돌리지 않았다. ‘전쟁 같은 건 없어져야 해! 몇 차례의 전투가 치르 연안에서 벌어졌고, 돈 근처를 지나갔다. 나중에는 호표르 근처에서, 메드베디차 근처에서, 부즈르크 근처에서 포성이 울릴 것이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 적의 탄환이 결국 나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건 마찬가지 아닐까?’ 그는 생각했다.
다리야는 지쳐빠진 발에서 단화를 벗겨내어 발을 씻고는 볕에 달아 뜨거워진 물가 자갈 위에 잠시 앉아서 햇빛에 부신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갈매기들의 구슬프게 우짖는 소리와 단조로운 물결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녀에게는 이 고요함과 뼈에 사무치는 듯한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눈물이 나올 만큼 서글펐다. 그리고 뜻밖에도 몸을 덮쳐 온 재난이 새삼 괴롭고 슬프게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