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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윈스턴 처칠, 그 불굴의 초상)

제프리 베스트 (지은이), 김태훈 (옮긴이)
21세기북스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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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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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윈스턴 처칠, 그 불굴의 초상)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정치인
· ISBN : 9788950925567
· 쪽수 : 504쪽
· 출판일 : 2010-07-15

책 소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국민들에게 자긍심과 용기를 불어넣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 윈스턴 처칠의 평전.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제프리 베스트는 이 책에서 처칠이라는 특별한 인물의 길고, 다채롭고, 논쟁적이고, 상반되며, 영웅적인 경력을 조명한다. 그간의 처칠을 보던 극단적 시선에서 조금은 자유롭게 그를 분석하고 발랄하게 조명하면서 결코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빛나는 진정한 ‘위인’의 자리에 그를 안착시킨다.

목차

프롤로그 처칠에 관한 모든 호기심을 아우르며

제1부 반딧불 리더십, 운명을 구축하다

1장 어린 ‘나 혼자’의 삶
2장 기꺼이 전쟁터로 떠나다
3장 나의 사랑 클레먼타인
4장 격동의 시기, 격정적 삶을 펼치다
5장 해군성 장관, 자부심은 더욱 빛나고
6장 다르다넬스 원정, 그 사실과 진실
7장 명예 회복의 길
8장 타도 볼셰비즘, 평화 아일랜드
9장 동방의 문제로 고심하다

제2부 ‘최고의 시간’을 향한 길을 열다

10장 방랑의 끝, 재무성 장관이 되다
11장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대결의 장
12장 왕성한 저술, 히틀러에 맞서다
13장 다시 전쟁, ‘처칠이 돌아오다!’
14장 최고의 시간을 살다
15장 민주적 전쟁 지도자가 되다
16장 반드시 ‘오늘’ 시행하라
17장 루스벨트의 환심을 노리다
18장 특유의 괴이함과 놀라운 명민함
19장 드골, 미국과의 삼각관계
20장 스탈린이라는 악어를 달래다

제3부 뜨거웠던 시대의 이정표가 되다

21장 우울한 승리, 절망은 이르고
22장 처칠의 빛나는 야유 ‘철의 장막’
23장 인내와 용기를 결합한다면
24장 정치는 인생 그 자체
25장 나라의 기둥이 쓰러지다

에필로그 역사의 방향을 바꾼 한 시대의 ‘구세주’
주석
참고 문헌 처칠의 저서 | 처칠에 대한 저서
인명

저자소개

제프리 베스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로, 에딘버러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 하버드 대학과 시카고 대학의 방문연구원을 거쳐 현재 옥스퍼드 대학 세인트 안토니 칼리지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1945년 이후의 전쟁과 법War and Law since 1945』『전쟁 속의 인간성Humanity in Warfare』『빅토리아 왕조 중기의 영국Mid-Victorian Britain』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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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옮긴이)    정보 더보기
전문 번역가. 경제·경영, 인문·교양, 자기계발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번역한다. 옮긴 책으로 《모닥불 타임》 《가난한 찰리의 연감》 《살아 있는 것은 모두 게임을 한다》 《당신이 무언가에 끌리는 이유》 《불안이라는 중독》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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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기꺼이 전쟁터로 떠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전쟁에 흥미를 느꼈고 매혹당하기도 했다. 유년기의 매혹은 청년기의 경험을 거쳐 장년기의 진실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모든 뛰어난 역사가들은 그와 같은 깨달음을 얻지만 1924년에 처칠이 쓴 “인류의 이야기는 곧 전쟁이다.”라는 글만큼 그것을 명확하게 드러낸 경우는 없었다.
그에게 전쟁은 흥분을 자아내고 복잡하며 자연적인 현상이었다. 그는 전쟁을 연구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또한 그는 전쟁에 빠져드는 자신의 성격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다음 두 문장을 살펴보라.

아, 영광스러운 자와 비열한 자, 불쌍한 자와 숭고한 자의 놀라운 메들리와도 같은 끔찍한 전쟁이여. 만약 지도자들이 너의 얼굴을 더 가까이 본다면 보통 사람들은 다시는 너의 얼굴을 볼 일이 없으리…….
전쟁은 거대한 상황들로 나를 끌어당기고 매혹시키지만 해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그것이 얼마나 비열하고 사악한 무지와 야만인지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있소.

(중략) 그가 항상 전쟁에만 골몰한 것은 아니었다. 전쟁의 포연이 가시고 나면 그는 필요할 경우 군축에 나서는 등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에도 전념했다. 하원에 입성한 첫 1주일 동안 그는 전쟁성의 잘못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실제로 그는 고위 장성들에게 지나치게 비판적인 면이 있었다. 그는 명확한 방어적, 외교적 목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군사적 수단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는 1909년에 맨체스터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제가 과시적이고 선동적인 군비 확장 정책을 지지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1920년대 말에 재무성 장관으로 일할 때는 국방 예산을 지속적으로 삭감했다. 그래서 전쟁이 터지자 전쟁 대비 태세를 부실하게 만들었다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반면 대영 제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전쟁이 임박하면 내재된 관심은 곧바로 과도한 흥분으로 끓어올랐다. 그는 군사적 문제를 분석하는 일을 즐겼기 때문에 군사 작전이 진행되는 여건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종종 고위 장성들이 시기가 부적절하거나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 조언과 질의를 서슴지 않았다(물론 군사 역사가들이 때로 속단하는 것처럼 고위 장성들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36~38쪽


격동의 시기, 격정적 삶을 펼치다

그는 언제나 쉼 없이 열정을 쏟았고, 출처에 상관없이 쓸모 있는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차용하는 태도로 새로운 역할에 전념했다. 또한 그는 사회적 관심과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취했던 입장을 공유했다. 그것은 독일의 광범위한 사회 보장 체제를 영국에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애스퀴스에게 보낸 특유의 길고 사념적인 편지에서 “독일은 우리보다 여건이 나쁘고 축적된 부도 적지만 국민이 견딜 수 있는 기본적인 삶의 여건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전쟁뿐만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도 잘 조직되어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정당 정치 말고는 조직된 구석이 어디에도 없습니다.”라고 썼다.
상무성은 식민성보다 그에게 훨씬 더 좋은 곳이었다. 무엇보다 조직의 수장이 되었고, 유능한 사무차관인 허버트 루엘린 스미스와도 호흡이 잘 맞았다. 그는 상무성 장관으로 재직한 20개월 동안 직업소개소 설립, 실업 보험 도입, 임금 위원회 구성을 위한 법안을 성공적으로 통과시켰다. 이러한 개혁은 ‘빈곤과 실업에 맞선 전쟁’에서 독일을 앞지르려는 웅대한 포부에 비추어 보면 미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년 후에 영국을 복지 국가로 만드는 선구적인 조치였다. 그런 점에서 처칠의 자문단에 젊은 윌리엄 베버리지가 있었다는 사실은 더없이 적절한 일이었다. (중략)
지식인들 역시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그의 연설에 매료되었다. 그의 연설문은 나중에 『자유주의와 사회 문제』와 『민권』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데이비드 캐너다인은 1909년 12월 17일에 빅토리아 오페라 하우스에서 했던 연설을 언급하며 “처칠은 하원에서 했던 형식적이고 화려한 연설을 유세 현장에 맞게 역동적인 내용으로 바꾸는 법을 배웠다.”라고 지적했다. 그의 연설문은 지금 읽어도 흥미롭다. 한 예로 상원에 대한 그의 연설 내용을 보자.

저는 랭커셔에서 유세할 때 보수 진영의 연설자들에게 누구든 앞으로 나와서 왜 상원이 우리를 다스리고, 왜 상원 의원의 자녀들이 우리의 자녀들을 다스릴 권리를 가져야 하는지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환호). 저의 도전에 용감하게도(웃음) 커즌 경(야유)이 나섰습니다. 상원은 그보다 유능하고 오만한 변호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 그는 영국에는 대대로 법을 제정하는 일을 하는 상위 계층이 있어야 하며, 입법권은 당분간(웃음) 상원 의원의 인격이나 지성, 혹은 경험과 관계없이 대중의 필요와 의지로부터 독립적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커즌 경의 세 번째 주장은 모든 문명은 귀족 정치의 산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실은 귀족 정치가 모든 대중의 힘겨운 노동으로 유지된 것이라고 해야겠지요(환호). -59~61쪽


다르다넬스 원정, 그 사실과 진실

다르다넬스 원정은 너무나 부실하게 진행되었지만 절대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다만 모든 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을 뿐이었다. 그것은 적어도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되었다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첫째, 상륙 병력이 방어선을 뚫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해야 했다. 전투에서 일부 유리했던 순간은 방어선 돌파가 가능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둘째, 상륙 시기가 빠를수록 독일의 지휘관이 방어선을 강화하고 터키군을 재무장시킬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었다. 이 점은 시간이 갈수록 강한 영향력을 끼쳤으나 방어선이 절대 무적은 아니었다. 셋째, 훌륭한 지휘관들이 있어야 했다. 앤잭군의 경우 일부 지휘관의 능력은 형편없었으나 총사령관인 이언 해밀턴은 당시 영국군의 문화를 무시하고 그들을 가차없이 교체할 인물이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감안할 때 처칠의 역할은 비판받을 여지가 거의 없다. 그가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수륙 양동 작전’은 애초에 전쟁 위원회에서 수립했던 것으로, 가능한 한 신속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실행에 옮길수록 더 나았다. 그러나 그것이 그가 생각했던 유일한 계획은 아니었다. (중략) 다르다넬스 원정에서 처칠이 차지하는 역할은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중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에서 그의 인기와 권위는 빠르게 추락했다. 외곽 요새에 대한 폭격으로 호기롭게 시작한 첫 번째 단계는 1차 목표에 대한 대규모 공격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중략)
상대적으로 파란이 적었던 두 번째 단계는 대대적인 작전이 전개된 4월 25일에 끝났다. 이 날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앤잭의 날로 기억되며 ‘전체 세계 대전에서 가장 극적인 날’로 평가받는다. 이 날 프랑스군과 영국군, 앤잭군으로 구성된 해밀턴 원정군의 선봉대가 갈리폴리 반도의 해안에 상륙했다. 그들은 많은 사상자를 내며 용맹하게 싸웠지만 끝내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했다. 결국 연말에 키치너는 돌파를 포기했다. 그나마 육해군의 협력이 잘 이루어졌던 철수가 작전에서 가장 성공적인 부분이어서 25년 후 케르크의 경우처럼 일종의 승리로 치부되었다. (중략)
갈리폴리에서의 패배를 통해 틀렸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터키군을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했다 해서 처칠을 비판할 수는 없다. 1914년 가을에 발생한 몇 가지 사건은 그러한 믿음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이 오판은 비슷한 경우로 1942년 초에 재난을 초래한 일본군에 대한 오판보다 변명의 여지가 많다. 또한 민간의 트롤 어선들이 나섰던 기뢰 제거 작업이 얼마나 부실한지 파악하지 못한 잘못도 그만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벨기에의 요새를 공격했던 독일군의 대포와 매우 다른 저궤도의 해군 대포로 터키의 요새를 파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다 회의적으로 평가했어야 했다. 또한 그는 해군의 역량을 과신했고 지나치게 지휘관들의 작전 수행에 간섭했다. 그의 끝없는 간섭은 이미 능력이 부족한 카덴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웠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전투를 치르기 전에는 카덴이 얼마나 무능력한지 알 길이 없었다. 처칠은 단지 다른 책임자들과 달리 기꺼이 위험 부담을 감수하려 했을 뿐이었다. -100~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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