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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50964467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16-09-07
책 소개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튀김
옛 추억을 되살리는 경양식
조카딸과 먹던 초밥
요청식을 만드는 사람들 1-오타니 사치코(관리영양사)
지금이 제철, 꽁치 소금구이
고향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초밥
정성 가득 포타주 수프
요청식을 만드는 사람들 2 - 와다 에이코(간호사)
부부가 항상 먹던 오코노미야키
기름기가 좌르르 흐르는 스테이크
달콤 짭조름한 감자조림
요청식을 만드는 사람들 3 - 다카후지 신지(조리사)
어린 시절의 우동, 추억의 파인애플
술안주는 언제나 튀김과 장어
어느새 좋아하게 된 비엔나 피자
가족과 둘러앉아 먹던 스키야키
요청식을 만드는 사람들 4 - 이케나가 마사유키(의사)
에필로그 - O 씨의 팥떡
맺음말 - 나는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리뷰
책속에서
취재는 특정 메뉴를 고른 이유를 묻는 일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러자 요리 이름뿐 아니라 음식에 얽힌 에피소드가 환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이야기는 환자들이 지금까지 지내온 일상의 단편적인 모습이었으며, 이야기 속에는 본인만이 아니라 함께 음식을 먹은 누군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모두가 살아온 시간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이제까지 먹어온 음식에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추억이 깃들어 있다.
아이들과 함께 살던 시절에는 어묵이나 카레, 고기 감자조림처럼 한꺼번에 여러 명이 먹을 수 있는 반찬을 많이 만들었어요. 그런 요리는 양이 많을수록 더 맛있어져요. 달걀찜도 모두 좋아했어요. 딸은 “어떻게 하면 식초를 넣지 않고도 이렇게 굳기 직전의 부드럽고 끈적끈적하고 반질반질한 느낌을 낼 수 있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곤 해요. 많은 양을 쪄내면 육수의 좋은 향기가 퍼져요. 그러면 행복한 기분이 든답니다.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했어요. 정말 좋은 직장이었지요. 아, 비프커틀릿이 생각나는군요. 고급 가게여서 비프커틀릿의 가장자리를 잘라낸 뒤 손님상에 나갔어요. 조리 담당 선배가
그 가장자리를 나한테 줬지요. 그게 정말 엄청나게 맛있었어요. 예전에는 카페에서 살짝 데친 파스타를 물에 담근 다음 하룻밤 냉장고에 넣어둔 뒤 요리했어요.
식사의 기억은 환자에게 영상으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죽음을 의식했을 때 사람은 인생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고 하는데, 맛있는 밥은 분명히 행복한 기억을 불러 일으켜줄 거예요. 한순간이라도 그 행복한 풍경에 젖어보는 시간이 환자들에게 찾아오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해요.
아무리 노력해도 생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치료할 수 없는 일을 패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일로 환자분은 버려지는 기분이 들거나 괴로워지지요.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에는 죽어요. 그것은 평등합니다. 나답게 살다가 가겠다고 마음을 다잡으면 평온하게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환자가 본인의 희망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을 항상 생각하지요.
일반 병동에서는 내일로 미루면 될 일도 호스피스에서는 시간의 한계 때문에 후회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거든요. 할 수 있는 일은 반드시 그 순간 합니다. 말기니까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일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실컷 맞선을 보고 난 뒤, 여기서 안 된다면 이제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마지막 맞선 상대를 만났지요. 그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누나와 여동생 사이에서 자란 사람이었어요. 누이동생을 시집보낼 때까지 기다리다가 혼기를 놓쳐 서른여섯이 되었다더군요. 나보다 일곱 살 연상이라서 포용력이 있어 보였지요. 가난하게 자라서 검소한 생활을 할 것 같고, 요리도 할 수 있다고 하기에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나는 체력이 약해서 요리하는 걸 싫어했거든요. 그 사람이 남편이에요. 10월에 선을 보고 이듬해에 결혼했어요. 그때부터 43년 동안 고생했죠. 네, 내 인생은 이게 전부예요.
요청받는 메뉴에는 모두 깊은 생각이 담겨 있어요. 가령 환자분이 크로켓을 원하신다면 그것은 양식점에서 나오는 크림이 듬뿍 들어간 크로켓일 수도 있고, 어머니가 만들어줬던 소박한 크로켓일 수도 있지요. 고등어 초밥도 고급 일식 카운터에서 나오듯이 정성스럽게 만들 수도 있지만, 환자분은 가정에서 먹었던 것을 그리워할지도 몰라요. 초밥 가게처럼 고등어 초밥 밑에 대나무 잎을 깔지 말지조차 고민합니다. 그래서 환자와 이미지를 공유하는 영양사에게 그 환자가 어떤 분인지, 언뜻 식사와 관계없어 보이는 정보까지 전달받고 있어요.
가이세키 요리를 기대하며 부탁한 분이 있었어요. 나는 일본요리 전문이니까 솜씨를 발휘할 기회이기도 했지요. 국물, 생선, 채소 등 사용할 수 있는 식재료와 맛의 조합에 신경 쓰면서 일고여덟 가지 음식을 냈어요. 그런데 그야말로 손 하나 대지 않은 채 음식이 조리장에 돌아왔어요. 요청 식사 전날은 먹을 수 있었지만 다음 날 밤에 이미 안 좋은 상태가 되신 거예요. 환자분의 용태는 급격히 변해요. 호스피스이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나는 이것이 마지막 식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식사가 가능한 분에게 조금이라도 기쁘게 드실 수 있도록 음식을 제공하고 싶어요. 항상 그렇게 생각하면서 주방에 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