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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50973339
· 쪽수 : 364쪽
· 출판일 : 2018-02-23
책 소개
목차
꽃가루 알레르기 블랭킷 캣 7
조수석에 앉은 블랭킷 캣 57
꼬리가 없는 블랭킷 캣 107
대역을 맡은 블랭킷 캣 159
미움받는 사람의 블랭킷 캣 209
여행을 떠난 블랭킷 캣 259
우리 집 꿈의 블랭킷 캣 307
작가의 말 359
리뷰
책속에서
기본적인 계약 기간은 사흘이다. 2박 3일.
“좀 짧은 것 같은데요.”
막 계약을 끝낸 손님에게 점장은 늘 이렇게 말한다. 말투도 표정도 밑그림을 그리듯이 정확하게 반복한다.
“사흘 이상 손님과 같이 지내면 정들어버려요. 그럼 고양이는 이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해서 불안해하죠. 그건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매는 불가능하다. 같은 고양이를 빌리는 것도 안 된다. 원칙적으로는 1개월 이상의 간격을 두지 않으면 접수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대여만 가능합니다.”
규정을 다시 확인시킬 때의 조용하지만 딱딱한 목소리도 똑같다. 비용은 결코 싸지 않다. 사흘간의 대여료와 그 대여료의 몇 배나 되는 보증금. 전부 더하면 점장의 본업인 애완동물 대여점에서 순혈종의 새끼 고양이를 충분히 사고도 남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고양이 대여 신청이 끊이질 않는다. 일곱 마리의 고양이들 모두 빌려간 곳에서 우리 안으로 돌아오고 하룻밤이나 이틀 밤만 지나면, 다시 새로운 집으로 향한다. 사흘 한정이긴 하지만.
빌릴 때는 화장실과 사료가 딸려간다. 애완동물 대여점에서 준비한 사료 외에는 먹이지 말 것. 특히 양파, 전복, 뼈가 붙은 닭고기는 절대 먹여서는 안 된다고 점장은 강조한다.
“양파는 고양이의 혈액에 치명적인 독성을 일으킵니다. 적혈구가 파괴되어 빈혈을 초래할 수 있어요. 전복을 먹으면 귀가 새빨갛게 부어버리고요. 심한 경우 피부염으로 발전해서 그대로 두면 그 부분이 떨어져 나갈 수 있죠. 닭뼈는 씹어서 부수면 세로로 갈라지거든요. 뾰족해진 닭뼈가 목이나 내장을 찌르면 큰일 나니까요.”
메모를 하는 손님, 놀란 얼굴로 맞장구를 치는 손님,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는 손님,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며 흘려듣는 손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즉 손님에 따라 고양이를 키운 경험이 완전히 다르다는 얘기다.
처음 고양이를 키우는 손님에게도 점장은 망설임 없이 고양이를 빌려준다. 대신 조금 강한 어조로 못을 박는다.
“고양이와 함께 자는 건 안 됩니다. 잘 때는 꼭 이 바구니에 넣어야 하고, 바구니 안의 담요도 이 상태 그대로 깔아줘야 합니다. 더럽다고 절대 세탁하시면 안 되고요.”
고양이는 환경의 변화를 싫어한다. 대여가 반복되면 보통 고양이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점장은 정해진 대사를 정해진 표정과 목소리로 입에 담는다. 설명을 시작하고 이 이야기를 꺼내기까지의 시간도 어쩌면 늘 정확하게 똑같을지도 모른다.
“이 담요예요.”
일곱 마리의 고양이는 태어날 때부터 줄곧 저마다 여러 장의 담요를 차례대로 사용하며 잠들었다. 새끼였을 때부터 애용한 담요만 있다면 어디서든 푹 잠들 수 있다.
“그, 왜 옛날 만화에 자주 나오죠. 여행 갈 때 자기 집 베개를 가방에 넣어간다는 얘기. 그거랑 같은 거예요.”
하하, 하고 웃는 모습도 평소와 다름없다. 지금도 그렇다.
“자, 그럼 규칙은 확실하게 전달해드렸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귀여워해주세요.”
-꽃가루 알레르기 블랭킷 캣
정확히 말하면 도둑질은 아니다.
다에코가 저지른 범죄는 횡령이었다. 30년 동안 근무한 문구 도매 회사 운용 자금 3천만 엔 정도.
‘가족적’이라는 말이 정말 딱 들어맞는 작은 회사였다. 무리한 확장은 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발전하려는 자세를 버린 것도 아닌 회사. 이 시대 대부분의 회사들처럼 타성에 젖지 않았다. 결코 경영이 쉽지는 않았지만 견실하게 대기업이 아직 칠하지 않은 부분을 찾아내서 가느다란 붓으로 칠하던 그런 회사였다.
다에코는 사장의 신뢰를 받았다. 지금 사장의 부친인 선대 사장부터 사장의 아들인 전무까지도 ‘다에코 씨, 다에코 씨’라고 이름으로 불렀고, 다에코가 관리하는 장부는 다시 확인하는 법이 없었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야.”
조수석의 구로에게 말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훈훈극장』처럼 좋은 사람만 있었어.”
이렇게 덧붙이며 시속 120킬로미터 가까이 속도를 더 높였다.
사장 일가의 성품에 어울리게 종업원도 모두 느긋했다. 물론 30년이나 일하다 보면 충돌 한두 번쯤은 생기게 마련이다. 성격이 꼬인 사람이나 덜렁대는 사람, 묘하게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도 나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나버린 지금 돌아보면 ‘다들 좋은 사람이었는데’ 하고 어렴풋이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몇 년 뒤면 무사히 정년을 맞이할 예정이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어렸을 때부터 ‘다 아줌마, 다 아줌마’ 하면서 따르던 전무의 아들도 입사하고, 사장에게 ‘정년 후에도 고문으로 일을 계속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말도 들었다.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 지금도 없다.
앞으로도 회사를 떠올릴 때 싫다는 느낌이 드는 일은 아마도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없겠지.
“너무하네.”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다가 추월 차선을 달리던 승용차가 깜빡이는 전조등 불빛을 정면으로 받았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는 금속판을 뒷면 유리에 달고 있는 차는 당황하며 왼쪽 주행 차선 쪽으로 달아났다. 황급히 차선을 바꾸는 모습이 흐앗, 하고 짧은 비명을 지르고 목을 움츠리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의 위엄이랄까, 위광이랄까, 압박이랄까, 위압감을 실감한다.
외제차를 동경했지만, 결국 크라운 정지 사고에 목숨을 잃은 사장이 문득 떠올랐다. 회사용 차를 조금 무리해서 세르시오로 구입했을 때 지금의 사장이 기뻐하던 미소도 떠오른다.
3천만 엔.
이자 놀음으로 불리거나, 토지를 굴려서 모은 돈은 아니었다. 사장부터 평사원까지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신발 깔창이 닳고 닳도록 뛰고, 접대 자리에서는 자존심을 꽤나 버려가며 조금씩 모은 자금이다. 경영이 어려울 때는 잔고가 줄고, 회복되면 는다. 잔고는 회사 사정의 바로미터가 되었다.
그걸 모두 빼앗아버렸다.
“너무하네, 정말…….”
-조수석에 앉은 블랭킷 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