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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협력의 동반자

갈등과 협력의 동반자

(북한과 중국의 전략적 공생)

신봉섭 (지은이)
  |  
21세기북스
2021-06-18
  |  
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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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협력의 동반자

책 정보

· 제목 : 갈등과 협력의 동반자 (북한과 중국의 전략적 공생)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외교정책/외교학
· ISBN : 9788950995836
· 쪽수 : 536쪽

책 소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부터 현재까지 중국과 북한 사이에서 전개되어온 정책 결정과 대응이 국제체제적으로 어떤 배경에서 비롯되고, 양자관계는 상호 어떤 긴장과 갈등 과정을 반복해왔는지를 전략적 선택과 공생관계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통시적인 북중관계의 역사를 담고 있다.

목차

들어가면서
서론 북중관계 신관전법

1. 북중관계에 관한 기존의 논의들
2. 전략적 선택 접근법의 이론적 검토와 개념 정의
3. ‘전략적 공생’에 대한 연구설계와 분석틀

1부 중국의 대북한 전략적 선택

1장 마오쩌둥 시기
1. 국제체제 차원: 세력 균형
2. 국내 정치 차원: 전통적 우의
3. 최고지도자 차원: 영향력 유지

2장 덩샤오핑 시기
1. 국제체제 차원: 데탕트와 공존
2. 국내 정치 차원: 실용적 우의
3. 최고지도자 차원: 개혁개방 권유

3장 장쩌민·후진타오 시기
1. 국제체제 차원: 세계질서 편승
2. 국내 정치 차원: 포용적 관리
3. 최고지도자 차원: 탈전통과 정상국가 관계

4장 시진핑 시기
1. 국제체제 차원: 신형 대국 관계
2. 국내 정치 차원: 전략적 관리
3. 최고지도자 차원: 인식의 전환과 재설계

5장 소결

2부 북한의 대중국 전략적 선택과 대응

1장 김일성 시기
1. 국제체제 차원: 균형과 편승
2. 국내 정치 차원: 동맹과 이데올로기
3. 최고권력자 차원: 등거리 자주노선

2장 김정일 시기
1. 국제체제 차원: 다변화와 대미 편승
2. 국내 정치 차원: 안보와 경제의 선택적 교환
3. 최고권력자 차원: 거부와 실용의 병행

3장 김정은 시기
1. 국제체제 차원: 핵-안보 교환
2. 국내 정치 차원: 자주외교와 자력경제의 병진
3. 최고권력자 차원: 위기 조성과 편승

4장 소결

3부 중국과 북한의 상호 전략적 선택 구조

1장 중국의 대북한 전략적 선택의 핵심요인
1. 한반도 지정학과 북한의 전략적 가치
2. 국가 정체성과 현상유지
3. 선택적 관여와 영향력

2장 북한의 대중국 전략적 선택과 대응 요인
1. ‘자주’의 정체성과 체제유지
2. 전략적 편승: 의존 또는 거부
3. 협력과 이탈의 선택적 병행

4부 북중관계 전략적 선택 모형과 공생

1장 중국과 북한의 상호 ‘전략적 선택과 대응’ 모형
1. 중국의 대북한 역할: 개입, 방관자, 조정자, 균형자
2. 북한의 대중국 대응: 자주, 의존, 거부, 편승, 이탈
3. 북·중 간 전략이익의 공통분모: 공생
4. 북·중 ‘전략적 공생’의 함의: 이익 배분의 균형

2장 ‘전략적 공생’과 북핵 위기(1992~2005)
1. 방관자: 제1차 북핵 위기
2. 중재자와 이익상관자: 제2차 북핵 위기
3. 북한의 대응: 대미 편승에서 신등거리외교로
4. 중국의 대북 역할 한계: 균형자 역할 회귀

3장 ‘전략적 공생’과 북한 핵실험(2006~2017)
1. 북핵 실험에 대한 중국의 대응
2. 북한의 대중국 전략적 대응
3. 북핵 전략게임의 결과 분석: 전략적 이익균형

4장 북중관계의 ‘전략적 공생’과 회귀 구심력

결론 전략적 공생

1. 북중관계에 내재된 본질적 성격
2. 북중관계의 총체적 함의와 미래 전망

참고문헌
부록: 북한-중국 무역 통계
감사의 글

저자소개

신봉섭 (지은이)    정보 더보기
중국 전문가로서 평생 중국과 깊은 연을 쌓았다. 중국 대륙과 홍콩, 대만의 재외공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대중국 외교안보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중국 현장을 누비면서 대북한 통일외교에 참여하는 한편, 남북관계 진전과 위기의 반복에 따른 동북아 안보문제를 깊이 관찰했다. 특히, 북중관계의 상호 불신과 갈등, 협력과 거부, 관여와 이탈이라는 특수한 관계를 가까이에서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1960년 강원도 홍천 출생. 서울대학교 중문학과 졸업. 대만정치대학 동아연구소 석사.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박사. 주홍콩 한국총영사관 영사 및 주중국 한국대사관 2서, 1서, 공사참사관, 주중국 한국대사관 공사(정무), 주선양 한국총영사관 총영사 역임. 현재 (사)한반도개발협력연구원 운영위원, 숭실대학교 한반도통일전략연구소 국제전문위원, 한림대학교 글로벌협력대학원 객원교수. 2003년 보국훈장 삼일장, 2014년 근정포장 수훈. 박사논문 「중국과 북한의 전략적 선택과 대응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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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마오쩌둥이 김일성과 직접 대면한 것은 1950년 5월 13일 김일성이 무력 남침계획에 대한 마오쩌둥의 동의를 얻기 위해 중국을 비밀 방문했을 때가 처음이다. 첫 공식회담에서 마오쩌둥이 김일성으로부터 받은 인상은 두 가지 점에서 심기가 불편했다. 첫째는 김일성이 스탈린을 추종하면서 마오쩌둥의 독자적인 권위를 별로 존중하지 않는 언행을 보인 점이다. 김일성은 이미 4월 10일 스탈린과의 모스크바 회담에서 허락을 받은 무력 남침계획을 전달하면서 마오쩌둥에게 동의를 얻고자 했다. 이를 사전에 알지 못하고 있던 마오쩌둥은 김일성이 전달한 스탈린의 의견을 반신반의했다. 저우언라이 총리 겸 외교부장을 한밤중에 소련 대사관에 직접 보내서 스탈린에게 친전 전문으로 문의 확인한 이후에야 비로소 김일성의 전언을 받아들였다. 마오쩌둥은 자신을 빼고 스탈린과 김일성이 군사행동을 결정한 데 대해 불만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모스크바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김일성이 이에 아랑곳 않고 회담이 끝나자 모든 의제에 관해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소련 대사에게 선언을 하면서 득의양양得意揚揚해하는 태도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당시 곤혹스런 입장의 마오쩌둥으로서는 김일성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을 리 없다. 마오쩌둥과 김일성의 첫 공식회동은 이렇게 마음속에 응어리를 남기고 어색한 분위기에서 끝났다. 마오쩌둥과 불편하게 헤어진 김일성은 귀국 이후 마오쩌둥에게 전쟁 준비나 개전과 관련한 어떠한 정보도 더 이상 알리지 않았다. 소련의 무기 운반도 중국의 ‘창춘長春철도’를 이용하지 않고 해상으로 선박을 이용하여 북한에 들여왔다. 그리고 김일성은 전쟁 발발 후 사흘째 되는 날 비로소 무관 한 명을 보내 전황을 중국 측에 통보하였다. 이에 대해 마오쩌둥은 자신의 통역인 스저師哲에게 “그들은 우리의 이웃인데도 전쟁 발발 문제를 우리와 논의도 없이 겨우 이제야 통보를 해왔다”고 노기를 보였다. 훗날 두 사람의 관계는 물론 북중관계가 내막적으로 원만하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에서부터 이미 잉태되고 있었다.


2002년 북한의 신의주특구 설치 좌절에 대한 일화는 북중관계의 허虛와 실實, 그리고 양국 간 민감한 이익 충돌과 불신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주룽지朱鎔基 총리는 2001년 1월 상하이上海를 방문한 김정일로부터 신의주특별행정구 구상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러한 구상이라면 신의주보다 개성이 더 나을 것”이라고 조언을 했다. 인접한 단둥, 다롄과 경쟁관계가 되는 신의주보다는 한국에 가까운 황해도 지역에 개방특구를 설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의 충고였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러한 조언을 듣지 않고 2002년 9월 신의주특별행정구 지정을 발표하고, 네덜란드 국적을 취득한 양빈楊斌 어우야歐亞그룹 총재를 초대 행정장관에 임명했다가 결국 중도 하차함으로써 타격을 받았다. 신의주특구 행정장관에 임명된 양빈은 신의주로 출발 직전인 10월 4일 새벽 중국 공안당국에 연행됐다. 중국 외교부는 4일이 지나서야 기자 브리핑에서 “불법 활동에 관여한 혐의로 양빈을 조사 중”이라고 확인해주면서도 “양빈사건과 신의주특구는 관계가 없다”고 관련성을 부인했다.


1975년 4월 18일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은 중난하이中南海 관저에서 마오쩌둥과 마주 앉았다. 당시는 미국의 베트남전 철수가 임박한 가운데 캄보디아에서는 전날 크메르루주 반군 지도자 폴 포트가 친미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정권을 수립한 데 이어, 2주 후 베트남전에서는 사이공이 함락되던 시점이었다. 션즈화沈志華 교수에 따르면, 김일성은 마오쩌둥과의 비밀회동에서 “캄보디아와 베트남이 위대한 승리를 얻어 우리는 매우 기쁘다”며 한반도에서도 무력통일을 시도하고 싶다는 뜻을 마오에게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마오는 (백내장으로) 눈이 좋지 않다며 화제를 돌리고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대화를 끊었다. 이렇게 마오쩌둥은 무력통일의 꿈을 버리지 못한 김일성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고 구체 발언 기회를 차단했으며, 제2차 한국전쟁 발동 의지를 가지고 방중했던 김일성은 마오쩌둥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이러한 마오쩌둥의 냉담한 태도를 보면서 김일성은 제2의 남침을 하더라도 미국과 관계 개선을 시작한 중국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 것임을 충분히 직감하고 귀환했을 것이다.
마오쩌둥이 김일성의 제2차 한국전쟁 의도를 외면했던 이유는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방중 이후 미국과의 관계 개선 분위기에 장애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중소 대립으로 안보위협에 직면한 중국은 미국과의 제휴로 위기를 돌파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중국과 북한 사이에는 공동의 이익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인도차이나 공산화 도미노에 편승하여 제2의 한국전쟁을 시도할 목적으로 방중했던 김일성은 마오쩌둥의 반대에 부딪혀 남침 구상이 좌절됐다. 이 회담을 계기로 김일성은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은밀히 핵개발을 진척시키는 등 독자 노선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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