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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의 원시적 형태들

분류의 원시적 형태들

(집단표상 연구에의 기여)

에밀 뒤르켐, 마르셀 모스 (지은이), 김현자 (옮긴이)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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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의 원시적 형태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분류의 원시적 형태들 (집단표상 연구에의 기여)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사회과학계열 > 사회학
· ISBN : 9788952114433
· 쪽수 : 160쪽
· 출판일 : 2013-05-30

책 소개

기존의 인식들에 문제를 제기하고 분류체계라는 집단표상이 형성되고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 작용하는 정신작용의 메커니즘을 추적해 봄으로써, 분류의 기원과 원시적 분류 형태들의 중요성을 논리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고찰해 본다.

목차

들어가는 말
역자 해제

문제들
오스트레일리아의 몇몇 부족들
다른 오스트레일리아 부족
주니족과 수우족
고대 중국
결론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소개

에밀 뒤르켐 (지은이)    정보 더보기
마르크스, 베버와 함께 근대 사회학의 기초를 놓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오귀스트 콩트에서 싹튼 사회학을 독자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으로 정립하는 일에 누구보다 헌신한 인물이다. 1858년 알자스 로렌 지방의 작은 도시 에피날에서 태어났다. 부친, 조부, 증조부 모두 랍비였으나 그는 집안 전통을 따르지 않고 학자의 길을 걸었다. 종교에 대한 평생의 관심도 신학적이라기보다 학문적이었다. 1879년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 앙리 베르그송, 장 조레스와 함께 공부하고 철학자 에밀 부트루, 역사학자 퓌스텔 드 쿨랑주 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졸업 후 철학 교사로 지내다가 독일로 건너가 사회학을 공부하며 많은 논문을 발표한다. 1887년 보르도 대학에 임용되어 1896년 정교수가 되었다. 당시 그의 지적인 영향을 받은 조카 마르 셀 모스도 이곳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02년 소르본 대학으로 옮겨 1917년 사망할 때까지 사회학과 교육학 교수로 있었고, 1913년 프랑스 사회학회 초대 회장직을 역임하면서 사회학이라는 학제를 강화하고 그 학문적 토대를 다졌다. 1890년대 주요 저서들을 왕성하게 집필했다.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아노미의 극복과 사회통합 문제를 다룬 『사회분업론』(1893),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을 선언하고 그 방법론을 제시한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1895), 사회현상으로서의 자살을 통계와 자료를 통해 선구적으로 분석한 『자살론』(1897)을 차례로 펴냈다. 1898년 『사회학 연보』(L’Anne’e Sociologique)를 창간, 당대 지성들이 참여하면서 이른바 뒤르켐 학파를 형성했다. 1912년 ‘사회적 사실’로서의 종교를 분석한 『종교적 생활의 원초적 형태』를 펴냈다. 1916년 전쟁에 나간 아들이 사망하자 충격을 받고, 이듬해 뇌졸중으로 삶을 마감했다. 사회 문제는 ‘구조적’이라고 말할 때 뒤르켐은 여전히 호명된다. 근대국가가 수립되던 프랑스 제3공화국의 혼란기를 살며 연대와 통합, 개인과 공동체 문제에 천착하며 자신의 사상을 펼쳤던 뒤르켐은 오늘 우리 사회에도 깊은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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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모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72년 5월 10일 프랑스 보주 지방의 에피날에서 유대인 가정의 첫째 아이로 태어났다. 1890년 삼촌 에밀 뒤르켐이 가르치고 있던 보르도 대학에 입학하여 사회학, 심리학, 철학을 공부했으며, 1895년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파리 대학의 고등실습연구원에서 역사학과 문헌학, 종교학을 연구하게 된다. 이후 이곳에서 ‘비문명화된 민족들의 종교’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로 임용되어 1914년까지 기도, 주술, 계약과 교환의 원시 형태 등을 가르쳤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회학 연보』의 책임자로서 프랑스 사회학의 재건에 힘썼으며, 1925년 레비브륄 등과 함께 파리 대학에 민족학연구소를 설립해 젊은 민족학자를 양성하는 일에 매진했다. 1931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학 교수로 선출되어 종교사와 민족학을 비롯해 사회생활의 표상체계와 상징체계에 관한 구체적 자료의 연구에 몰두하면서 활발한 학문적 활동을 펼쳤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교수직을 그만두고 장기간 칩거에 들어갔으며, 1950년 2월 10일 77세의 일기로 파리에서 타계했다. 사회학자이자 참여 지식인으로서 모스는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는 협동조합운동과 사회주의의 열렬한 옹호자였으며, 장 조레스와 교류하면서 『뤼마니떼』의 창간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다수의 정치 평론을 기고하기도 했다. 모스는 뒤르켐 사회학의 전통 내에서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과 ‘총체적 인간’이라는 풍요로운 분석 대상을 제안했으며, 삼촌 뒤르켐과는 달리 여러 인접 학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사회학의 지평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희생제의의 본질과 기능에 관한 시론」, 「주술의 일반이론 개요」, 「증여론」, 「몸 테크닉」을 비롯해 애도 의식, 사람과 자아 개념, 문명과 국민 등에 관한 깊은 통찰력을 지닌 글을 발표했으며, 레비스트로스부터 부르디외에 이르는 20세기 프랑스 사회학과 인류학을 이끈 사고의 출발점이자 안내자로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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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자 (옮긴이)    정보 더보기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중등 교육 기관에서 수학 교사로 몇 년간 아이들을 가르쳤다.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지적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인문학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학교를 떠났다. 대학 시절 정진홍 선생님의 기독교 문학 강의를 통해 종교학에 매료되었던 경험이 떠올라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은사 정진홍 선생님을 통해 엘리아데를 만나고, 엘리아데를 통해 신화와 만났다. 석사 논문 「미르체아 엘리아데 연구, 그의 창조적 해석학을 중심으로」를 쓴 후 본격적으로 신화를 탐구하기 위해 프랑스 소르본에 위치한 고등실천연구원 종교학 분과에 입학했다. 도교 전문가 크리스토퍼 쉬퍼 교수의 지도 아래 대우(大禹) 신화에 관한 의미론적 연구로 박사 과정 학위를 받았다. 마르셀 모스와 앙리 위베르의 그리스 신화와 중국·일본 종교에 관한 강좌들에 참여하면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했다. 마르셀 그라네의 저작들을 읽으면서 고대 텍스트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배웠으며 위대한 학자는 사후에도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서로 『신화, 신들의 역사 인간의 이미지』, 『세계의 창조 신화』(공저), 『세계의 영웅 신화』(공저), 『천자의 우주와 신화』가 있고 역서로 에밀 뒤르켐과 마르셀 모스의 『분류의 원시 형태들: 집단 표상 연구에의 기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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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정신의 작용들은 사실 아주 복합적인데, 현대 심리학의 발견들이 부각시킨 환상으로 우리는 그것을 단순하고 기초적인 것으로 종종 착각한다. 우리는 정신작용의 메커니즘에 의해 감각세계에 대한 우리의 표상들을 구축하고, 밖으로 투사하여 공간 속에 위치시키는데, 이제 우리는 이 메커니즘이 얼마나 많은 요소로 형성되었는지를 안다. 그러나 이 요소들을 분리하는 작업은 아직 문자 그대로 논리적인 작용들에 매우 드물게 적용될 뿐이다. 정의하고, 귀납하고, 연역하는 능력들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이해력이 형성되면서 곧바로 주어지는 것처럼 여겨졌다. 역사가 흐르면서 인간들이 이 다양한 기능을 점점 더 잘 활용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분명 오래전부터 알았다. 그러나 그 기능들을 사용하는 방법에서만 중요한 변화가 있었어야만 했고, 그 본질적 특징들은 인류가 출현하면서부터 구축되어 있었어야만 했다.


어떤 경우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인이 사물들의 위계질서를 정확히 반대로 표상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그와 가장 거리가 먼 것들이다. 앞에서 우리는 태양(ngaui)을 토템으로, 별(bungil)을 하위토템으로 갖는 한 원주민에 대해 말한 바 있는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응고이(ngaui)지만 분질이 아니다.” 이와 함께 언급했던 다른 원주민은 와르트우트(熱風)를 토템으로, 무와욱(융단뱀)을 하위토템으로 갖는데, 그의 동료 중 하나가 조언했듯이, 그는 와르트우트이지만 “또한 부분적으로 무와욱이기도 하다.” 그의 일부만이 융단뱀이다. 바로 이것이 호위트씨가 우리에게 알려준 다른 표현이 의미하는 바이다. 워초발룩족 사람은 종종 두 개의 이름을 가진다. 하나는 그의 토템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하위토템이다. 전자는 그의 진짜 이름이며, 후자는 “그보다 약간 다음이다.” 후자는 서열상 이차적이다. 이는 결국 개인에게 가장 본질적인 사물들은 반드시 그와 가장 가까운 것들, 그의 개인적인 개성과 가장 밀접한 것들이 아님을 의미한다. 인간의 본질은 인류다. 오스트레일리아인의 본질은 그의 하위토템이 아니라 그의 토템 안에 있으며, 심지어 더 정확히는 그의 포족을 특징짓는 사물들의 집합 안에 있다. 따라서 이 텍스트들에는 앞의 텍스트들을 반박하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분류를 구성하는 관계들이 다른 관점에서 고려되지 않는다면, 여기서 분류는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구상된다.


동일 지역의 또 다른 부족과 함께 우리는 체계화와 조직화의 길에서 한 발짝 더 내딛을 것이다. 쿨고아(Culgoa) 강의 거주자들인 무라와리아족(Moorawaria)에서는 아직도 씨족 분할이 아룬타족보다 훨씬 멀리 진전된다. 우리는 거기서 사실상 152개의 상이한 씨족들에게 토템으로 사용되는 152종류의 대상들을 인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토록 많은 수의 사물들은 입빠이-쿰보(Ippai-Kumbo)와 쿠비-무리(Kubi-Murri)라는 두 포족 속에 질서정연하게 삽입된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씨족들이 갈가리 갈라져 분산되는 위험을 모면한 고전적 유형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 있다. 사회가 분산되어 가지 않고 집중되며, 분리된 씨족들이 그들의 자연적 친화력에 따라 보다 규모가 큰 집단들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재결합되고, 따라서 주 토템들(다른 것들은 이전과 비교하면 종속적인 지위를 가지면서 지금도 토템으로 사용된다)의 수는 감소한다.
우리는 이와 똑같은 경우를 갬비어 산의 체계들에서 보게 될 것이다. 요약하면, 이런 식의 사물 분류가 토테미즘 속에 반드시 내포되어 있다고 말할 만한 충분한 근거는 없지만, 토템적 바탕에 따라 조직된 사회들에서 이 방식을 아주 흔히 보게 된다는 것은 하여간 확실하다. 따라서 이런 사회체계와 이런 논리체계 사이에는 우발적인 관계가 아니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제 우리는 복잡성의 정도가 더 심한 다른 분류들이 이와 같은 원시적 분류 형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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