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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 이야기

신라인 이야기

(고대영웅들의 화려한 귀환)

서영교 (지은이)
  |  
살림
2009-03-15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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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 이야기

책 정보

· 제목 : 신라인 이야기 (고대영웅들의 화려한 귀환)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신라/통일신라
· ISBN : 9788952210739
· 쪽수 : 312쪽

책 소개

고대 전쟁사를 연구한 저자는 신라의 천 년 역사를 이룩한 왕과 왕족,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음모와 분쟁을 철저한 고증을 거친 사료와 작가적 상상력을 통해 스펙터클한 드라마 형식으로 풀어냈다. 단순히 영웅의 무용담을 뛰어넘어 음모와 시련을 이겨 내는 과정에서 영웅들의 내면의 목소리를 묘사한 부분에서는 그들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엿볼 수도 있다.

목차

머리말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했던 영웅의 시대, 신라사에서 인간사를 보다

제1부 신라 초기
귀족에게 버림받은 왕의 아들, 우로
내물왕, 고구려와 손을 잡다
운명을 만들어 낸 눌지왕 그리고 신라의 성장
순교자의 붉은 피 그리고 불교의 공인
노련한 정치가 법흥왕비가 진흥왕을 살리다
깊은 불심의 진흥왕, 신라의 영토를 세 배로 넓히다
신라의 북진을 성공시킨 이사부와 거칠부

제2부 신라 중기
하늘이 내린 가장 고귀한 핏줄, 마지막 성골 왕
설계두, 골품제가 없는 세상을 꿈꾸다
태종무열왕, 당과 손을 잡다
대당 전담 외교관 김인문
연개소문의 죽음 그리고 고구려의 멸망
나당전쟁과 실크로드
문무왕, 일본을 회유하다
전쟁 재발의 두려움과 군비 증강

제3부 통일 신라
신문왕의 화려한 혼례
가짜 신라 왕자의 일본 천황 사기 사건
이상한 해를 사라지게 한 월명사의 도솔가
당으로 떠난 국비 장학생 김암
날씨로 뒤바뀐 운명, 김경신과 김주원
형제를 죽인 남편, 남편을 죽인 형제들
왕실과의 혼인에 집착한 장보고의 비극
기울어 가는 나라, 비운의 지식인 경문왕
외로운 여왕의 남자, 실력자 김위홍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신라의 붕괴
무정부 상태에 떠 있는 질서의 섬 해인사

부록 신라 왕실 가계도

저자소개

서영교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7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동국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사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현재 중원대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화유적과 고문헌, 사서를 비롯한 다양한 자료에 근거해서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벌어진 전쟁이 초래한 동아시아사, 더 나아가 유라시아사의 실상을 추적해왔다. 박사과정 중 「신라장창당의 신고찰」이란 논문을 발표하면서 전쟁사 연구에 몰입했다. 박사논문을 수정하고 보강한 저서 『나당전쟁사 연구-약자가 선택한 전쟁』(2007)은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한국 고대사학자 중에서는 보기 드문 전쟁 전문가로, 고구려 700년사를 유목민과의 ‘동업과 경쟁’으로 살핀 『고구려, 전쟁의 나라』(2007), 전쟁사로 시장과 이익의 메커니즘을 살펴본 『전쟁기획자들』(2008), 고문서의 혜성 기록을 통해 신라사와 궁중 암투를 새롭게 고증한 『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2010)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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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이제 법흥왕비가 딸 지소부인과 외손자 삼맥종을 데리고 서석곡에 행차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당시 신라 왕실은 침울한 분위기였다. 3년 전 법흥왕비의 시동생이자 사위인 입종갈문왕이 죽고, 상노인이 된 법흥왕 또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삼국사기』[권4, 법흥왕 27년(540) 조]를 보면 “가을 7월에 (법흥)왕이 죽었다.”라고 나와 있다. 법흥왕비가 그의 가족과 함께 서석곡에 행차한 지 대략 일 년이 지난 때다. 다시 말해 얼마 살지도 못할 늙은 국왕을 남겨 두고 법흥왕비는 딸 지소부인과 외손 삼맥종을 데리고 왕경을 떠났던 것이다. 서석곡에 놀러 온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 남모르는 이유가 있었다.
법흥왕비는 남편의 재위시 막후에서 막강한 실력을 발휘했던 매우 대가 센 여자였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왕위를 이를 아들을 낳지 못했던 것이다. - p.51~52 '제1부 신라초기-노련한 정치가 법흥왕비가 진흥왕을 살리다' 중에서


632년 선덕여왕이 즉위했다. 602년부터 본격화된 고구려와 백제의 지속적인 공격을 잘 막아 낸 진평왕의 카리스마는 그의 딸 선덕여왕에게로 이어졌다. 적들의 공격을 받는 위기의 시기에 무능한 군주는 신성함을 보존하기 어려우며 그 신성함이 자식에게 이전되지도 않는다. 『삼국사기』(권5, 선덕왕 즉위년 조)를 보면 “(진평)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국인(진골 귀족)들이 덕만을 왕을 ㅗ세우고 성조황고라는 칭호를 올렸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전쟁이 치열하던 시기에 선덕여왕이 성골이라는 특수한 왕족 의식에 힘입어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진평왕의 국토 수호 전쟁이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수많은 사람이 죽고 대야성이 백제의 수중에 떨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신라 전체가 불안에 휩싸였고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신라 사람들은 더 큰 재앙이 닥쳐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백제와는 낙동강을 경계로 마주보게 되었다. 백제가 강만 넘으면 신라의 왕경이 지척인 대구 벌판이었다. 신라는 수도에서 가까운 경산에 병력을 집중시켜야 했다. 가야계 김유신에게 백제에게서 수도를 방위하라는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다. 정예사단도 배치했다. 위기 상황에서는 김유신과 같은 실력 있는 자가 등용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이 신라 정치사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 p.107~108 '제2부 신라중기-태종무열왕, 당과 손을 잡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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