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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54430746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14-04-07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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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에필로그
옮긴이 후기
리뷰
책속에서
내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했다. 내 몸이 한쪽으로 휙 비켜서 내 머리에 내리꽂히던 아버지의 주먹을 가까스로 피했다. 가속도가 붙은 아버지의 몸이 내 옆으로 떨어지자, 나는 얼른 아버지의 등을 밀었다. 아버지의 등을 민 것, 그게 다였다. 등을 밀기만 했다. 나 자신을 지키려 한 본능적인 행동. 그뿐이다. 내 주먹으로 아버지를 내리치거나 하지 않았다. 내가 한 일은 아버지를 민 것뿐이다. 아버지 등에 손을 살짝 대기만 했다. 틀림없이 아버지는 중심을 잃은 것 같다. 너무 취해서 몸을 똑바로 세우지 못한 것이다. 몸을 가누지 못한 것이다. 모르겠다.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아버지가 방을 가로질러 붕 날아가더니 머리를 벽난로에 쾅 부딪히고 나서 바닥에 떨어져 꼼짝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지금도 그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뼈가 돌에 부딪쳐 깨지는 소름끼치는 소리.
나는 아버지가 죽은 걸 알았다. 단박에. 나는 알았다.
알렉스가 조용히 물었다.
“마틴, 괜찮니?”
나는 깊은 구덩이를 들여다보았다. 물이 기다리고 있다. 차고 깊고 시커먼 물.
“기분 최고야.”
잠시 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낭을 구덩이 안으로 던졌다.
정적.
들풀에 스치는 바람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밑에서 ‘첨버덩’ 하고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콸콸거리고 부글거리는 물소리, 침낭이 물에 잠기는 소리. 흠뻑 젖은 침낭이 깊고 차갑고 검은 물속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죽어서 의식이 없이 침낭에 갇혀 있는 아버지, 슬로모션으로 떨어지는 아버지, 차갑고 검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아버지, 마침내 돌멩이와 흙모래, 슈퍼마켓 손수레, 녹슨 자전거 뼈대 사이에 멈추는 아버지. 움직임도 없고 소리도 없이 침낭 속에 들어 있는 아버지, 얼어붙은 진흙 틈에서 눈에 띄지도 않는 아버지.
묻혔다.
떠났다.
잠들어 있는 게 아니라 정말로 죽었다.
브리스 경위가 입을 가리고 기침을 했고, 짙은 가래가 끓는 소리가 났다.
“그때 알렉산드라랑 무슨 짓을 했냐?”
“별거 없었어요. 아까 말한 대로 알렉스를 잘은 모르거든요.”
“너희 전화 통화를 꽤 자주 했던데.”
“우리가요?”
“전화 통화 기록에 따르면, 아주 자주.”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브리스 경위가 말을 이었다.
“특히 크리스마스 무렵에. 하루에 두세 번. 어떤 날은 더 많이.”
“알렉스가 뭔가를 도와주고 있었어요.”
브리스 경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과제물이요. 학교 과제물.”
“과제물이라.”
“숙제였어요.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에 해야 하는 거요. 연극에 대한 거였어요. 알렉스가 연기에 대해 많이 알았거든요. 연극 수업도 들었고요. 그 과제물 때문에 알렉스가 저를 도와주고 있었어요.”
브리스 경위가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친절하군.”
“네…… 그랬어요. 도움이 무척 많이 됐어요.”
“최근에는 본 적 있니?”
“이사 갔을걸요.”
“언제 갔을까?”
“모르겠어요……. 크리스마스 지나고 바로였던 것 같아요.”
“어디로 갔는지 아니?”
“몰라요. 죄송해요.”
브리스 경위가 일이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정원을 내다보면서 가끔 자기 귓불을 잡아당겼다. 날씨가 정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