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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4637336
· 쪽수 : 236쪽
· 출판일 : 2015-09-25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6
나의 현상 8
불현듯 ‘갈잔 치낙’이란 이름에 끌려 14
투바는 소리 없이 아프다 21
울란바토르 32
테렐지 국립공원 44
알타이 가는 길 51
유르테의 생활 73
검은 호수 아일 88
한스, 그쪽은 쾰른으로 가는 길이야 103
마리아 111
투바 축제와 사과주스 121
미인대회 소동 129
관광객들 136
향나무 계곡 140
야크의 정령 152
채식주의 볶음밥 159
유목민 행상 167
카자흐의 초대 177
알타이 병에 걸리다 183
돌의 어머니, 쇠의 아버지 195
냄새의 기억 199
문명의 구멍 204
아직도 너는 거의 알타이에 있다 212
남겨진 사물들의 시간 221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비행기가 알타이 지역으로 접어들자 지상의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도시나 부락 등 인간의 힘으로 일구어진 대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이 그곳은 끝없이 펼쳐진 오직 청회색 빛 스텝 황무지 산악지대였으며, 듬성듬성 흩어진 희고 창백한 구름들 아래로 거인의 주름살처럼 한없이 펼쳐진 험준한 산맥과 기다랗고 시커먼 협곡, 그리고 눈꺼풀을 상실한 커다란 눈동자와 같은 둥근 호수들이 내려다보였다. 모든 사물들은 단순히 아름답다기보다는 어떤 종류의 상투적인 표현으로도 묘사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무한하다는 첫인상을 주었으며, 이윽고 바라보고 있는 자들을 심리적으로 무릎 꿇게 만드는 육중하고 말없는 힘을 간직하고 있었다. 분명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이긴 하나 자연이란 말에서 우리가 연상할 수 있는 모든 전형적인 것과 전혀 닮지 않은 얼굴.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 이외에는 거의 가지지 않은 유목민의 특징은 비교하지 않는 가난이었다. 나는 그것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처음 알타이로 가서 남몰래 큰 충격을 느꼈고, 충격을 느낀 사실이 스스로 한동안 매우 부끄러웠던 한 가지는, 구멍 뚫린 낡은 옷을 아무런 문제없이 입고 다니던 유목민들의 모습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들에게 옷이란 예의나 외모의 치장,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자연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그다지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나 자신이 예의나 외모의 치장, 좋은 인상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러한 강박 이외에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음을 알아차린 것은 놀랍고도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유목민의 삶은 내가 이제까지 잘 알고 있던, 내가 내 이웃보다 돈이 없으므로, 그래서 나는 가난하다는 도시의 공식을 새처럼 훨훨 벗어나는 것이었다. 나는 자연의 혹독함과 기후 변동이 유목민들의 삶을 너무나 피폐하게 만들어서 그들이 모두 어쩔 수 없이 이러한 도시 변두리로 몰려와 구멍난 옷을 의식하며 살게 되는 날이 결코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내 소망이 헛된 것임을 잘 알고는 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상태란 없을 것이며, 또한 그 변화의 속도가 무섭게 빨리지는 시대를 우리는 직접 체험하면서 살고 있다. 알타이에서 갈잔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곤 했다.
“투바 유목민은 오늘 존재할 뿐이다. 다음 세대에 우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평선 아래로 저물어가는 민족이다. 보아라, 저기 태양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