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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4698214
· 쪽수 : 444쪽
· 출판일 : 2024-03-01
책 소개
목차
제18장 부병자자 새기는 뜻은
제19장 감격의 양달과 응달
제20장 밟아도 아리랑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모임에 참여한 어떤 일본인 통해 산업도시이자 군사도시인 히로시마에서 인류 역사 이래 미증유의 대폭발이 일어났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날 아침 미군 폭격기가 어마어마한 초대형급 폭탄을 히로시마에 투하했고, 정체불명의 그 폭탄에 의해 한꺼번에 수십만 명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시가지를 비롯한 그 주변 일대가 일순간에 초토화하는 전대미문의 대참사가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워낙 상상을 초월하는 파천황의 대사건인지라 여느 전황과 달리 히로시마 피폭 소식은 산서 같은 두메산골에도 발밭게 전해졌다. 일본인들 입에서 시나브로 흘러나오기 시작한 히로시마 참상은 사정리 주민들 거쳐 입소문 타고 삽시간에 전체 면민들 사이로 왁자하게 퍼져나갔다.
단 한 발로 대도시 하나를 쑥대밭 만든 폭탄의 정체가 밝혀진 건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미국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원자폭탄이라는 것이었다. 히로시마를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어버린 그 가공할 신무기에 관한 소문이 산서 전역을 온통 들쑤시고 다녔다. 면내 식자층뿐만 아니라 무지렁이 산골내기들도 그 이름조차 생소한 원자폭탄이란 말을 뻔질나게 입길에 올릴 정도였다. 더군다나 원자폭탄에 희생된 수십만 명 사상자 안에는 현지 산업시설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던 수만 명 조선인까지 포함되어 있으리라는 끔찍한 예측이 으레 따라붙곤 했다. 대다수 면민은 이런 비상시국에 과연 어떤 자세 취하고 어떤 반응 보여야 좋을지 실로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분명한 것은, 아직은 대한 독립 만세 섣불리 외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막바지 국면에 몰린 나머지 눈에 핏발 선 일본 관헌들한테 책잡혀 무슨 험한 꼴 당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판국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제 패망의 날이 이제는 상상 아닌 현실 속 가시거리 안에 들어와 있음을 실감하면서 내남없이 일본인들 앞에서 자기 속내 드러내지 않으려 되도록 몸을 사리는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