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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55827705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24-11-25
책 소개
목차
추천사: 부모와 자식 사이, 그 아픈 이야기 - 4쪽
시즈코 상 - 13쪽
역자의 말: 듣지 않을 수 없는 모든 딸들의 이야기 – 282쪽
리뷰
책속에서
네 살 즈음, 엄마의 손을 잡은 적이 있는데 엄마는 그때 “쯧.” 하고 혀를 차면서 내 손을 뿌리쳤다. 그 순간 두 번 다시 엄마 손을 잡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나와 엄마의 힘든 관계가 시작되었다.
이 손이 그토록 매몰하게 나를 뿌리쳤던 그 손이 맞는 걸까? 내 기억 속 엄마 손은 튼튼하고 굵고 도톰하여 나에게는 검붉게 보였던 손이었다. 엄마 손을 만지작거리며 주름투성이인 엄마 몸에서 팽팽한 곳은 손톱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다.
얇아질 대로 얇아진 엄마의 손은 뼈에 살가죽만 달라붙어 있어서, 문지르면 피부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아니 피부가 움직인다기보다 마치 주름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다른 표현을 찾아보았지만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제법 굵직했던 팔도 이제는 야위어서 막대기에 살갗만 붙은 것 같았다. 이 역시 살갗이라기보다는 주름이라고 하는 편이 옳은 듯했다. 주름 위에는 파란 정맥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가엾은 엄마. 오직 이 손으로 요령 한 번 피우지 않고 굳건히 살아온 거네. 이렇게 될 때까지.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갑자기 예전 일이 떠올라 더욱 복받쳤다.
엄마는 초등학교 6학년인 오빠를 아가라고 불렀다. 오빠는 아가라는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리고 엄청난 비가 쏟아지던 6월의 어느 날 죽었다.
오빠가 죽은 뒤로 물 긷기는 온전히 나 혼자의 일이 되어 버렸다.
나는 왔다 갔다 왕복하는 횟수를 줄이고 싶었다. 혼자서 양동이 두 개를 멜대에 매달았다. 처음에는 양쪽 양동이 반 정도까지 물을 채웠다가 매일 조금씩 물의 양을 늘렸다.
허리를 구부려서 물이 출렁이지 않게 하는 요령을 익힌 날, 물을 양동이 가득 채웠다. 열 살의 깡마른 원숭이가 기술 좋게 물을 나르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대단해.”
요시코의 엄마는 내게 장하다며 칭찬했다. 강물은 요시코네 뜰 앞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주방에 들어가서 수조에 물을 쏟아부을 때마다 엄마는 말없이 눈을 흘겼다. 적어도 열 번은 왕복해야 수조에 물이 가득 찼다. 어느 날 나는 수조를 칠 부 정도만 채우고서 뚜껑을 덮어 버렸다. 엄마를 속일 생각이었는데 엄마가 바로 수조 뚜껑을 열고 확인했다. 엄마는 나를 째려보고는 화를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나를 속이려 들어? 그게 네 맘대로 될 것 같아?” 이렇게 말하고는 양동이와 멜대를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열 살인 나는 울지 않았다. 실패한 열차 강도처럼 그저 들킨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할 뿐이었다.
“망했다. 아, 아….”
학교에서 돌아가면 엄마는 늘 나를 노려보았다. 물을 길어 오는 일보다 나를 보는 엄마의 노려보는 눈빛이 더 싫었다. 그 눈빛은 ‘놀고 싶다고? 그럴 수는 없지. 애당초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를 보면 저절로 발사되는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