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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56243771
· 쪽수 : 568쪽
책 소개
책속에서
테오는 코논이 그랬던 것처럼 손가락을 들어 다시 그 별자리를 가리켰다. 처녀자리와 사자자리와 큰곰자리와 아르크투루스 사이에 있는 하늘의 작은 조각을. 그러고는 시인 칼리마코스가 「베레니케의 머리털」이라는 시에서 묘사한 대로 손가락을 움직이며 시를 낭송했다.
“왕비의 눈물에 젖은 나, 그 눈물이 마를 새도 없이 신전에 다다랐네. 이시스 여신은 곧바로 나를 새로운 별로 만들어 오래된 별자리들 사이에 놓았지. 처녀와 사나운 사자가 빛나는 곳 어름, 리카온의 딸 칼리스토가 변한 곰에게서 멀지 않은 곳, 거기에서 나는 게으른 목동을 서쪽으로 이끌고, 목동은 깊은 오케아노스로 천천히 빠져들어 간다네.”
테오가 베레니케 왕비의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은 바로 이 시를 통해서였다. 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밤의 정적 속에서 베레니케 왕비는 자신의 머리털이 하늘에 걸린 채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았어요. 영광스럽게도 후대 사람들이 영원히 우러러볼 별이 되어 있는 머리털을 말이에요. 왕비는 사랑의 여신 이시스에게 감사를 드렸죠. 그날 밤 이후로 저 별자리는 ‘베레니케의 머리털’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경이 만들어준 이 지도 덕분에 짐은 인간 세상의 경계를 분명히 보고 있소. 하지만 짐은 이 인간 세상을 그저 세계의 한 부분으로 여길 수밖에 없소. 이게 세계의 작은 부분이오, 아니면 대부분이오?”
어조는 부드러웠지만 고뇌에 가까운 감정이 묻어나는 물음이었다.
“전하의 하문에 정확하게 답하자면 세계가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오. 세계 전체의 크기, 그게 바로 짐이 알고 싶은 바요.”
“전하, 소신더러 세계의 크기를 재라는 말씀이옵니까?”
왕은 은근히 에라토스테네스를 자극하듯이 쾌활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경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겠소?”
“지구의 중심이라니! 어차피 거기에 다다를 수 없다면 이런 것을 그려놓고 주절주절 설명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경은 이 그림으로 짐을 기망했소! 실제로 행할 수 없는 것을 그저 쓱쓱 그려본 것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오. 이 파피루스 위에서 펼쳐 보인 경의 여행은 허깨비일 뿐이오. 짐은 어떤 일을 계획하면 그것을 실제로 이루는 사람이란 말이오.”
왕은 도로 자리에 앉았다. 실망과 분노의 기색이 역력했다. 에라토스테네스의 말대로라면 지구의 크기를 잰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닌가.
“경의 수학은 속임수요. 짐이 이런 말까지 해야겠소?”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
에라토스테네스는 자기도 모르게 목청을 높였다.
“수학에는 힘이 있습니다. 수학은 우리가 해보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게 해줍니다. 비록 아직은 이루어낼 수 없을지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