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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6254128
· 쪽수 : 432쪽
· 출판일 : 2020-10-26
책 소개
목차
책머리를 대신하여 비행기가 ‘대체로’ 사라진 하늘 아래
1 아시아의 드문 기억 ─ 사이공
2 신화와 역사 어디쯤의 고도 ─ 교토
3 중국이 세계였을 때 ─ 상하이
4 돌이켜보면 이미 이 도시에 있지 않고 ─ 상하이
5 세 작가의 도쿄, 세 개의 근대 ─ 도쿄
6 일본의 마음, 텅 빈 중심 ─ 도쿄
7 아직 더 기억해야 하는 이름 ─ 타이베이
8 그래도 하노이는 옳았다 ─ 하노이
9 일본 ‘너머’에 있는 ─ 오키나와
10 다시 이광수를 만나는 법 ─ 서울
책 뒤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기괴하면서도 흥겨웠던 첫 번째 일본 여행 이후, 나는 뻔질나게 해외여행을 다녔다. 여권도 몇 번이나 바꾸었다. 그래도 뒤늦은 ‘베를린의 횡재’가 찾아올 때까지는 한 번도 아시아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다. 특별히 작정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쳇바퀴 돌듯 늘 아시아의 대지를 떠돌고 있었다.
한번은 두만강 강변을 따라 옛 소련제 자동차를 세내어 타고 가는데 내 옆구리 쪽 문짝이 덜컹 떨어져나갔다. 기겁한 내가 뭐라 말도 잇지 못하는데, 운전기사는 항다반사처럼 태연히 내려 문짝을 도로 달았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게 외려 고마웠다. 거기 옌지에서는 쑤이펀허에서 중러 국경을 넘어 우리가 한때 ‘원동’이라 불렀던 시베리아 땅으로 뭔가를 팔러 간다는 조선족 사내들과 아침부터 배갈도 나눠 마셨다. 울란바토르행 국제 열차를 타고 가던 어느 새벽 문득 눈을 떴을 때에는 얼어붙은 황막荒漠 위를 이리 떼처럼 사납게 날뛰던 눈 폭풍도 목격했다. 티베트의 고원에서는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뒤바뀌는 날씨에 넋을 잃었다.
나는 다시 아시아의 우기를 걷는다. 매일같이 한 시간씩 폭우가 쏟아지던 도시들. 바나나 잎에 듣던 빗줄기, 그리고 그 상쾌한 빗소리. 나는 루앙프라방의 어느 카페에서 새삼 식민주의자 행세를 하며 단돈 1달러에 맛 좋은 원두커피를 마셨고, 수 세기를 폐허로 버텨온 앙코르의 어느 사원에서는 밀림의 불타는 노을을 배경으로 펼쳐진 반딧불이들의 황홀한 군무에 까무룩 넋을 잃었다.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인도의 북쪽 끝 다람살라에 도착한 건 아직 캄캄한 꼭두새벽이었다. 그 어둠 속에서 수염이 무성한 사내들이 내 팔이 마치 자기들 것인 양 서로 잡아끌었다. 나는 화도 내지 못하고 그중 억센 한 사내가 끄는 대로 끌려갔다. 알고 봤더니 그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더 없이 착한 무슬림이었다.
1993년의 첫 번째 일본 여행에서 ‘재일조선인작가를 읽는 회’라는 모임을 만났다. 대부분은 나고야 일대에 사는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모임이 처음 발족한 것은 1977년 12월이었다. 월 1회 정도로 독서회를 열었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1980년부터는 연 1회 『가교』라는 동인지를 펴내기 시작했다. 그 후 “문학을 통해 재일동포의 생활과 사상을 접하고, 스스로의 차별 의식과 제도의 차별을 극복하는 관점에서 민중 연대의 기저를 찾겠습니다”고 한 기치를 43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모임은 2020년 4월로 무려 466회째를 기록했다. 그동안 이들은 김석범·김시종·이회성·양석일·유미리 등 저명 작가 외에도 여러 신진 작가들까지 눈여겨보며 쉬지 않고 작품을 읽어왔다. 나는 무엇보다 평범한 시민들이 모여 그처럼 열심히 공부를 한다는 사실 자체에 큰 충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