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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6254524
· 쪽수 : 380쪽
책 소개
목차
1 도쿄의 세 천재
2 동경 유학생이 간다
3 메이지의 도쿄와 후쿠자와 유키치
4 도쿄와 동아시아의 근대
5 문명국 일본이 가르쳐준 것들 1
6 문명국 일본이 가르쳐준 것들 2
7 조선 학생들은 연설을 한다, 과격하게!
8 조선이 만난 세계, 조선이 만난 희망
9 도쿄, 신여성의 희망과 절망
10 『창조』의 창조
11 관동 대지진과 불령선인들
12 도쿄는 공상의 낙원
13 제국의 뒷골목
14 붉은 도쿄
15 참 치사스러운 도쿄
16 모멸의 시대
17 ‘재일’의 탄생
18 도쿄의 절정
19 도쿄의 황혼, 조선어와 일본어
20 마침내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태준은 1930년대 중반에 쓴 장편 『성모』에서 지금으로선 꽤 낯선 교실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철진이가 엄마에게 자기네 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아예 지리부도까지 펴놓고 침을 튀기는 것이었다.
“엄마? 우리 반에 글쎄 여기 이 제주도서 온 아이두 있구 또 나허구 같이 앉었는 아인 함경북도 온성서 온 아이야. 뭐 경상남도 진주, 마산, 부산서도 오구 평안북도 신의주, 그리구 저 강계서 온 아이두 있는데 걘 글쎄 자동차루, 이틀이나 나와서 차를 탄대…. 퍽 멀지, 엄마?”
지도를 거침없이 짚어가는 그 손가락이 퍽 부러울 뿐이다.
당대의 많은 작가들에게 ‘장소’는 분명 문학적 상상력의 한 토대였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즐거운 회상만 뒤에 남기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노상 〈평양성도〉 따위 병풍 그림으로나 보던 것을 1909년에야 겨우 기차를 타고 가 처음 눈에 담을 때 최남선의 가슴을 설레게 하던 ‘그 잘난 우리 님’으로서 평양이, 1931년 화교 배척 폭동 당시 김동인이 직접 목격한 참으로 황망하고 또 처참하기 짝이 없던 그의 고향 평양하고는 도무지 같은 도시일 리 없었다. 이광수는 자하문 밖 산자락에 집을 짓고 또 파는 과정에서 세상사 큰 이치를 깨달았다고 썼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어려서 죽은 아들에 대한 추억까지 끌어내 조선인의 징병을 권장한 그가 보여준 쓸쓸한 뒷모습도 기억해야 한다.
─ 「근대 문학의 ‘장소들’이 보여주는 지난날 우리가 꾸었던 꿈(펴내며)」에서
춘원 이광수가 도쿄 메이지 학원 시절에 쓴 일기가 전한다. 거기서 그는 자아도취에 빠진 한 소년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아직 이보경이라는 아명을 쓰던 열여덟 살 소년은 스스로 “나는 천재인가?” 하고 질문을 던지는가 하면,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황홀해하기도 한다. 어느 날 꿈에서 그는 조선인을 선동하였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는데, 오후에 있을 집행을 기다리며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오직 가슴속에 품었던 어떤 힘을 다 써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게 슬플 따름이라고 탄식한다. 그런 그에게 행운이 찾아온다. 처형 직전 기쁜 소식이 날아온 것이다. “사형은 중지다!” 하고. 물론 소년의 이런 꿈까지 들춰내 그가 1849년의 도스토옙스키를 흉내 냈다고 탓하는 건 옹졸한 일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