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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 (지은이)
  |  
자음과모음(이룸)
2010-07-30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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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정보

· 제목 : A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7075173
· 쪽수 : 284쪽

책 소개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작가 하성란이 10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계간 『자음과모음』에 2008년 가을호부터 2010년 봄호까지 연재된 이 작품은, 1987년 일어난 전대미문의 참사인 ‘오대양 사건’을 모티프 삼아 쓰여진 소설이다.

저자소개

하성란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풀」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루빈의 술잔』 『옆집 여자』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 『웨하스』 『여름의 맛』, 장편소설 『식사의 즐거움』 『삿뽀로 여인숙』 『내 영화의 주인공』 『A』, 사진산문집 『소망, 그 아름다운 힘』(최민식 공저)과 산문집 『왈왈』 『아직 설레는 일은 많다』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수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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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몇 시쯤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수없이 자고 깨었기 때문에 며칠이 흘러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락방 안은 묘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인기척이라고는 나지 않았다. 고요함 속에서 누군가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마다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누군가가 무거운 부대 자루 같은 것을 질질 끌고 있었다. 둔탁한 것 위에 또 다른 둔탁한 무언가가 포개지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쉭쉭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허공에 대고 물었다. “누, 누구세요?”


엄마와 이모들은 저항하지 않았다. 경찰은 모든 시신들에서 저항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발표했다. 이모들답지 않았다. 이모들은 공장을 드나드는 거친 사내들을 상대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땐 상대가 누구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올려다보았다. 죽음이 코앞에 있었더라도 이모들이라면 대들고 보았을 것이다. 엄마 성깔이라면 죽을 때 죽더라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중략)… 이모들은 그날, 그곳을 자신들이 죽을 시간, 장소라고 믿었던 것 같다. 엄마는 죽으면서도 내게 안녕,이라는 짧은 인사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 그 아수라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나는 눈뜬장님이었지만 대신 두 귀로 피부로 냄새로 내 앞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광경을 다 보았다. 나는 죽음의 아우라를 보았다. 죽음이 커다란 외투처럼 이모들 몸에 드리우는 것을 보았다. 이모들의 코와 입으로 가느다랗게 생명이 빠져나오는 것도 보았다. 우리의 몸에 깃들어 우리를 움직였던 생명은 누군가 한 모금 깊이 빨고 천천히 뱉어내는 담배 연기처럼 가느다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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