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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집요

성학집요

(군자의 길, 성찰의 힘)

이이, 이용주 (지은이)
아카넷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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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집요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성학집요 (군자의 길, 성찰의 힘)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유교철학/주역 > 유교철학 일반
· ISBN : 9788957336175
· 쪽수 : 432쪽
· 출판일 : 2018-12-25

책 소개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16권. 조선의 대표적 성리학자 율곡 사상의 핵심이 담긴 저술로서 성리학의 입문서이자 제왕학의 교과서이며 조선의 경장을 촉구하는 시국론이다.

목차

간행사
『성학집요』 읽기를 시작하며

1부 『성학집요』 서론
1. 『성학집요』를 바치는 글
2. 『성학집요』의 집필 목표
3. 『성학집요』의 구성과 내용
4. 임금에 대한 율곡의 바람
5. 범례

2부 『성학집요』 총론
1. 유교 윤리학과 정치학

3부 수기: 성찰의 힘
1. 수기 입문: 유교 수양론의 윤곽
2. 수기 본론
1) 백성 다스리기의 근본
2) 수기와 지행합일
3. 입지: 뜻을 세우다
1) 입지는 방향 설정이다
2) 입지의 실패
3) 지도자로서 군주의 책무
4. 수렴: 마음을 모으다
1) 경, 유교 수양론의 중심
2) 정좌는 지식 공부의 기초
5. 궁리: 이치를 탐구하다
1) 궁리(窮理)란 무엇인가?
2) 독서의 중요성
3) 성선설
4) 마음은 하나다
5) 사단은 정(情)의 일부, 이기 호발(互發)의 오류
6) 리통기국, 이기관계
7) 궁리와 활연관통
6. 성실: 진실한 마음을 회복하다
7. 교기질: 기질을 교정하다
8. 양기: 기를 기르다
9. 정심: 마음을 바로잡다
1) 마음 바로잡기
2) ‘경’과 ‘미발’에 대하여
3) 미발과 이발에 대해서
4) 미발 시의 함양과 성찰
5) 미발 시의 체인의 중요성
6) 마음 작용의 혼(昏)과 란(亂)
10. 검신: 몸을 점검하다
1) 천형(踐形)의 중요성
2) 수양에서 몸의 중요성
11. 회덕량: 덕을 확장하다
12. 보덕: 군주의 덕을 보완하다
13. 돈독: 성실한 노력을 기울이다
14. 수기공효: 수기의 성과

4부 성현도통: 성리학의 정통론
1. 도통론 개요
2. 도통의 계승과 단절
3. 도의 기원과 전승
4. 현실의 어둠과 군주의 책무

원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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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이용주 (지은이)    정보 더보기
현재 광주과학기술원 AI정책전략대학원(비교종교학, 철학, 메타인지) 교수. 서울대를 졸업하고, 중국, 프랑스, 일본 등지에서 고전 연구와 동아시아 사상의 역사, 비교철학 등을 공부했다. 『주역의 예지』 『노자 도덕경』 『근대국학의 탄생』 『세계관 전쟁』 『성학집요』 『생명과 불사』 등의 저서와 엘리아데의 『세계종교사상사』 등 다수의 번역서를 출간했다. 현재는 고전을 연구하는 한편, AI시대 과학과 기술의 미래 및 인간의 가치에 대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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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 1536년(중종31년) 1세 : 12월 26일 강릉부 북평촌 외가에서 출생함. 부친은 이원수(李元秀), 모친은 신사임당(申師任堂), 본관은 덕수(德水), 字는 숙헌(叔獻), 號는 율곡(栗谷), 시호는 문성(文成) - 1541년(중종36년) 6세 : 강릉에서 한양으로 올라옴. - 1542년(중종37년) 7세 : 「진복창전(陳復昌傳)」 지음. - 1543년(중종38년) 8세 :파주에 있는 화석정에 올라 「화석정(花石亭)」 시 지음. - 1545년(중종40년) 10세 : 「경포대부(鏡浦臺賦)」 지음. - 1548년(명종3년) 13세 : 진사초시에 장원급제함. - 1551년(명종6년) 16세 : 5월 어머니 신사임당 별세, 「선비행장」을 지음. 파주 두문리에 어머니를 장례하고 3년간 시묘함. - 1554년(명종9년) 19세 : 우계 성혼(1535~1598)과 도의의 교분을 맺음. 3월 어머니 시묘 3년을 마치고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함. - 1555년(명종10년) 20세 : 금강산에서 강릉으로 돌아와 「자경문(自警文)」을 짓고 유학에 전념함. - 1556년(명종11년) 21세 : 봄에 한양으로 돌아와 漢城試에 장원급제함. - 1557년(명종12년) 22세 : 9월 성주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 곡산 노씨와 혼인함. - 1558년(명종13년) 23세 : 봄에 경북 예안 도산(陶山)을 방문하여 퇴계 이황을 만남. 겨울에 別試에서 「천도책(天道策)」으로 장원급제함. - 1561년(명종16년) 26세 : 5월 아버지 이원수 별세. - 1564년(명종19년) 29세 : 7월 생원 진사시에 장원급제함. 8월 明經試에 급제하여 호조좌랑으로 첫 벼슬길에 나아감.(모두 9번 장원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림.) - 1565년(명종20년) 30세 : 봄에 예조좌랑에 전임. 8월 요승(妖僧) 보우(普雨)와 권간(權奸) 윤원형(尹元衡)을 단죄하는 상소를 올림. 11월 사간원 정언에 임명되자 사퇴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불허. - 1566년(명종21년) 31세 : 2월 병조좌랑에, 3월 다시 사간원 정언에 임명됨. 겨울에 이조좌랑에 임명됨. - 1568년(선조원년) 33세 : 2월 사헌부 지평에 임명됨. 가을에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갔다 돌아와 홍문관 부교리 겸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에 임명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함. 11월에 다시 이조좌랑에 임명되었다가 강릉 외조모 이씨의 병환으로 사직하고 강릉으로 내려감. - 1569년(선조2년) 34세 : 6월 교리에 임명됨. 9월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올림. - 1570년(선조3년) 35세 : 4월 교리에 임명됨. 10월 병으로 사직하고 해주로 감. - 1571년(선조4년) 36세 : 1월 이조좌랑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여름에 교리로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해주로 감. 6월 청주목사에 임명됨. - 1572년(선조5년) 37세 : 여름에 부응교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파주로 돌아감. 8월에 원접사 종사관, 9월에 사간원 사간, 12월에 홍문관 응교, 홍문관 전한을 제수 받았으나 모두 사퇴함. - 1573년(선조6년) 38세 : 7월 홍문관 직제학에 제수되었으나 3차례 상소를 올린 후 사임하고 8월에 파주로 돌아감. 9월 다시 직제학에 임명되어 사퇴하였으나 허락을 받지 못함. 겨울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 지제교 겸 경연 참찬관, 춘추관 수찬관으로 임명됨. - 1574년(선조7년) 39세 : 1월 우부승지에 임명되어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지어 올림. 3월 사간원 대사간에 임명됨. 10월 황해도 관찰사에 임명됨. - 1575년(선조8년) 40세 : 8월 홍문관 부제학으로 임명됨. 9월 『성학집요』를 지어 올림. - 1576년(선조9년) 41세 : 우부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전라감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병으로 나아가지 않음. 10월 해주 석담에 청계당을 지음. - 1577년(선조10년) 42세 : 1월 해주 석담에서 「동거계사」를 지음. 5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12월 『격몽요결』 지음. - 1578년(선조11년) 43세 : 해주 석담에 은병정사를 지음. 3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6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 1579년(선조12년) 44세 : 5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 1580년(선조13년) 45세 : 5월 「기자실기」 지음. 9월 홍문관 부제학에 임명. 12월 대사간에 임명. 1581년(선조14년) 46세 6월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으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다시 예문관 제학으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8월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됨. 9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10월 호조판서에 제수됨. 11월 『경연일기』 완성 - 1582년(선조15년) 47세 : 1월 이조판서에 제수됨. 7월 선조의 명으로 「인심도심설」, 「김시습전」, 「학교모범」, 「사목(事目)」을 지어 올림. 8월 형조판서에 임명됨. 9월 의정부 우참찬에 임명되고 숭정대부로 특진. 10월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원접사가 되어 「극기복례설」을 지음. 12월 병조판서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 1583년(선조16년) 48세 : 2월 「시무육조」 지어 올림. 3월 경연에서 십만양병을 건의함. 6월 동인의 탄핵을 받고 파주로 돌아갔다가 7월에 석담으로 돌아감. 9월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 1584년(선조17년) 49세 : 1월 「육조방략」을 최후로 지음. 1월 16일 한양 대사동에서 별세함. 3월 20일 파주 자운산에 안장됨. - 1624년(인조2년) : 문성(文成)의 시호를 받음. - 1681년(숙종7년) : 문묘의 종사를 허락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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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위기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강렬한 ‘도통론’ 언설이 쏟아져 나온다. 율곡의 논의는 시기적으로 서양의 영향이 유입되기 직전에 제시된 것이지만, 율곡의 시대에 조선의 유교 사회는 이미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 역사를 돌아보면, 500년 전에도, 천 년 전에도, 2천 년 전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그런 변화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상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 시대의 한계 안에서, 정통과 이단, 바른 생각과 바르지 않은 생각을 구별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연구하고 토론을 벌였다. 『성학집요』는 그런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다. 제왕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던 시대에, 제왕에게 바치는 문서를 빙자하여 율곡은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는 최소한의 처방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현실의 어둠과 군주의 책무」 중에서


“오늘날의 병든 세상, 병든 정신을 치유하기 위한 처방전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사람들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등장할 민주주의의 가르침과 사상을 이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거의 지식과 지혜에서 배울 수 있다. 유교는 낡은 사상이지만, 병든 오늘의 현실을 꾸짖는 비판자로서 다시 돌아볼 가치가 있다. 유교는 병든 오늘의 사회를 치유하는 약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 「성실: 진실한 마음을 회복하다」 중에서


“민주주의는 백가쟁명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백가쟁명을 위해서는 전통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시민적 화해와 화합의 길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율곡이 과거에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선각자가 나타나, 민주적이고 공정한 대한민국의 미래 전망을 제시하고, 토론과 숙고의 기회를 제공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일까?”
― 서론 중 「임금에 대한 율곡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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