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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8207092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21-02-25
책 소개
목차
시작하며
프롤로그
1부. 시(詩)
2부. 처음 맡아보는 냄새
3부. 신이 있는 그곳으로
4부. 또 다른 세상
5부.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사람
에필로그
저자의 말
후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기억은 감정을 바탕으로 합니다. 어떤 순간의 감정은 어느 시절을 지나 경험이나 추억으로 뭉쳐지고 그것이 또 시간이 흘러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늘, 땅, 인간, 자연, 동물, 보이지 않는 어떤 알갱이들과 뭉텅거림들 그리고 관계가 숨어 있습니다. 그 요소들이 그 순간과 시절의 기억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관계와 감정이 앙상한 사람은 기억이 빈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그 빈약한 감정과 추억은 기어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냄새까지도 훼손한다는 사실입니다. 기억은 결정적이고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태지거나 착각일지라도 말이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빛[光]과 불[火]의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뜨겁고 환하고 신속하고 쾌락적인 세상으로 말이죠. 사람들은 그런 세상을 마다할리 없습니다. 몸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속도와 연결을 무기로 하는 디지털과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주는 인공지능에서는 고유한 냄새를 맡기 힘듭니다. 기계는 숫자와 전진만이 있을 뿐 후회와 벅참, 눈물과 기쁨, 위로와 다독임 같은 감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들과의 만남에서 감정과 교감을 형성하기는 어렵습니다. 거기에는 차가운 소유와 명령의 관계만이 있을 뿐입니다.
티베트에서 만난 해부사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불을 꺼야 합니다. 빛과 불을 멈추어야 해요. 산불이 일어나고 빙하가 녹고 있어요. 불을 끄지 않으면 하늘도 무너지고 바다도 넘칠 거예요. 그렇게 되면 소리와 냄새는 사라지는 거죠.
도대체 머리카락은 얼마나 방치한 거야,
발톱은 길고 휘어져 있어 동물의 부리 같고,
앙상한 갈비뼈에 피부가 덮여 있고,
옷은 입었는데 입지 않은 것 같고,
코에는 안경이 걸려 있는데 알은 깨져 반창고를 붙여야 할 거
같고,
얼굴은 세상의 모든 먼지와 때를 혼자 받아들인 거 같고,
그의 몰골을 보며 나는 다가가며 물었다.
저안이?
너?
맞지?
저안이의 냄새. 그와의 시간, 추억, 경험, 감정, 기억이 몰려온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