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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8662075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13-05-21
책 소개
목차
머리글
1장. 부처를 버려라 _한 점 바람으로 사라진 방랑승, 경허
너는 그러할 수 있는가
부처가 되려거든 부처를 버려라
자취를 감추는 것이 본래부터 본분인 것을
수월, 스승 경허의 짚신을 삼다
빈 거울은 거울이 아니고, 깨친 소는 소가 아니네
2장. 온 곳이 없으니 간 곳도 없다 _자비의 향기로 남은 선승, 수월
천수경을 외워 수월 법호를 얻다
숨을수록 향은 더욱 짙게 번지니
수월과 효봉
3장. 일체의 법은 본래 그 실체가 없다 _무소유로 일관한 천진불, 혜월
귀신도 속이지 못할 천진한 어린아이
일체의 법을 알려면 마음속에 아무것도 가리려 하지 말라
사람을 죽이는 칼, 사람을 살리는 칼
남쪽의 하현달이 되다
4장. 보려고 하는 자가 누구냐 _불세출의 선승, 만공
도암 소년, 불가에 들다
경허를 스승으로 모시고 화두를 품다
스승 경허로부터 선지식 인가 시험을 받다
마침내 도를 이루다
만공의 신통력을 경허가 꾸짖다
김좌진과 만해 한용운
만공이 남긴 일화와 법훈들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되었구려
부록 _경허ㆍ수월ㆍ혜월ㆍ만공의 흔적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스승 경허는 저 썩어가는 육체를 지닌 여인을 열흘 동안이나 곁에 두고 살을 맞대었다. 너는 그러할 수 있겠는가. 스승 경허는 제정신이 아닌 미친 저 여인을 열흘 동안 밥을 먹여주고 함께 다정히 말을 나누었다. 너는 그러할 수 있겠는가. 스승 경허는 코가 떨어져 나가고 눈썹이 없고 입마저 헐어버린 나병에 걸린 여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그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질하여 단정히 빗겨주곤 했다. 너는 그러할 수 있겠는가. 스승 경허는 동냥질하며 이 동리에서 저 동리로 떠돌아다니는 거렁뱅이 여인이 눈에 덮여 죽어가게 되자 그 여인을 업고 방 안에 들여다가 체온으로 녹여 살려주었다. 너는 그러할 수 있겠는가. 스승 경허는 고름이 흘러내리는 여인의 몸을 혀로 핥았으며 오물로 뒤범벅되어 있는 여인의 몸을 서로 맞대어 살을 나누었다. 너는 또한 그러할 수 있겠는가.
네 눈에는 그 여인의 거렁뱅이로서의 모습과, 환자로서의 모습과, 그 뼈와 살이 썩어가는 모습과,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고름이 흘러내리는 모습과, 미친 여인으로서의 행색과 그 숨소리와, 견딜 수 없는 악취만이 보이고, 들리고, 냄새 맡아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너는 그 여인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나 스승 경허는 그 여인을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본 것이다. 네가 본 것이 다만 하나의 형상과 색色에 불과하다면 스승 경허는 그 여인에게서 법신法身을 본 것이다
_「너는 그러할 수 있는가」, 경허
이 오막살이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고갯마루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수월은 그 오막살이에서 홀로 지내면서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면 예불을 마치고 짚신을 수십 켤레 삼아 집 앞 처마에 매달아놓곤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월은 수십 명이 먹을 밥을 미리 해놓고 그것을 일일이 밥그릇에 담아 부엌에 가지런히 놓아두곤 했다.
토굴 앞에는 맑은 물이 샘솟는 샘터가 하나 있어 고개를 넘는 길손들이 발을 멈추고 물 한잔 떠먹으며 쉬어가곤 했는데 마침내 날이 밝아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수월은 말없이 샘터에 앉아 물을 마시면서 쉬고 있는 길손을 불러다가 그의 발에서 다 떨어진 짚신을 자기 손으로 벗겨내고 처마에 걸린 자기가 삼은 짚신 중에서 길손의 발에 맞을 만한 짚신을 골라 신겨주곤 했다. 그리고는 그를 부엌으로 데려가 밥 한 그릇을 먹고서 고개를 넘어갈 것을 권유하곤 했다. 길손이 부엌으로 들어서면 수월은 간단한 찬거리가 담긴 밥상을 차려주고 자신은 뜨락에서 하루 종일 장작을 패곤 했다.
_「숨을수록 향기는 더욱 짙게 번지니」, 수월
헌병대장은 마침내 천하의 명검을 볼 수 있다는 흥분으로 혜월의 뒤를 따라 섬돌 계단을 걸어 축대 위까지 올라갔는데, 갑자기 앞서 걷던 혜월이 돌아서면서 그의 뺨을 후려쳐 축대 밑으로 떨어뜨렸다.
무방비 상태로 당한 헌병대장은 그대로 섬돌 아래로 비명을 지르면서 굴러 떨어졌다. 졸지에 수모를 당한 헌병대장은 벌떡 일어서서 허리에 찬 칼을 빼들어 혜월을 베려고 했다. 그러나 먼저 혜월이 다가가 넘어진 헌병대장을 부축해 일으켜 세워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내가 갖고 있는 당신이 보고 싶어 하던 천하의 명검이오. 내가 당신을 때려 계단 아래로 떨어뜨린 손은 당신을 죽이는 칼이며, 당신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운 손은 당신을 살리는 칼이오.”
_「사람을 죽이는 칼, 사람을 살리는 칼」, 혜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