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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한국고대사 일반
· ISBN : 9788958770343
· 쪽수 : 327쪽
· 출판일 : 2009-07-15
책 소개
목차
발간사
신라 연표
가야 연표
시대조망
개관 : 낙동강 물길과 함께한 신라·가야의 흥망사
신라의 건국 신화 :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 세운 나라
가야의 건국 신화 : 황금알에서 태어난 가야의 주인들
신라·가야의 기원 : 다호리·사라리에 새겨진 권력의 흔적들
신라의 형성 : 사로에서 신라로 고대 국가의 등장
전기 가야 : 대외 교역 국가 금관가야의 탄생
후기 가야 : 대가야, 영광된 가야의 부활을 선언하다
고구려의 남하와 신라 : 종속 벗고 삼국의 강자로 서다
안라국과 가야의 위기 : 가야 회생의 마지막 희망, 임나부흥회의
신라의 팽창과 가야 멸망 : 진흥왕,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다
대야성 공방전 : 위기의 신라 복수의 칼날을 겨누다
귀족파와 왕당파의 대립 : 김춘추와 김유신의 감격시대
돌궐의 흥망과 한반도 : 삼국의 운명을 가른 당과 돌궐의 한판 승부
나당연합군의 백제 침공 : 신라의 외교력 백제를 멸망시키다
백강 전투 : 백제 회복운동의 마지막 횃불
고구려의 멸망과 삼국통일 : 당, 이 땅에서 나가라
집중탐구
삼국시대와 가야 : 가야 왕국의 잃어버린 천 년을 찾아서
삼국 역사의 신빙성 : 『삼국사기』초기 기록 믿을 수 있는가
김부식과 삼국사기 : 고구려 중심의 역사 인식에 도전한 보수 귀족
삼국유사의 진정한 가치 : 가야를 복원한 고대 문화의 보물창고
포상팔국 전쟁 : 가야의 새 맹주 노린 소국들의 도전
임나일본부설 : 일본의 한반도 통치 기구는 정말 존재했나
신라 대형 고분의 기원 : 북망 민족의 유산인가 왕권 강화의 상징인가
신라 금관의 비밀 : 왕관인가 데드마스크인가
신라의 벽화 고분 : 신라 땅에 새긴 고구려 문화의 흔적
신라의 불교 수용 :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사상으로
신라의 지방 행정 : 왕권 강화와 함께한 행정구역의 변천
첨성대의 기능 : 천문대인가, 하늘로 통하는 우주 우물인가
삼국통일의 의의 : 신라 삼국통일은 과연 반쪽자리였나
황금의 나라 신라
생활문화
고대인들과 새 : 새, 영혼의 메신저
가야 풍습 : 편두, 문신, 발치를 즐긴 가야인들
순장 : 함께 가자, 저세상까지
신라의 서역 유물 : 지중해와 중앙아시아로 이어진 황금 교역망
용봉문 환두대도 : 위풍당당 최고의 권위를 드러낸 상징품
신라와 가야 문화권 :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다시 하나로
가야토기 : 잃어버린 왕국을 증언하는 화려한 토기들
신라토기 : 신라토기에서 세력팽창을 읽는다
토우의 세계 : 흙으로 빚어낸 진솔한 삶과 정서
천전리 각석 : 바위에 새긴 신라 왕실 가족의 행차
진흥왕 순수비 : 눈부신 영토 확장 시대의 산 증거
화랑과 교육 : 청소년은 신라의 미래다
반가사유상 : 중생을 굽어 살피는 고마운 미륵보살님
황룡사 9층목탑 : 경주의 아득한 하늘 동아시아의 전설이 되어
전탑 : 석탑의 나라에 중국식 벽돌 탑이 선 까닭
의술의 발전 : 전쟁의 참화 속에서 꽃핀 대중 의학
인물탐구
수로왕과 허황후 : 바다 건너온 신부와 결혼한 가야의 시조
석탈해 : 신라 왕이 된 슬기로운 대장장이
석우로 : 살신성인 몸을 던져 왜적을 막아내다
김무 : 일본 천황을 치료한 신라 최초의 명의
박제상 : 왜의 신하가 되느니 계림의 개 돼지가 되겠다
도설지 : 꼭두각시 대가야 왕의 슬픈 운명
김무력 : 나라는 잃었어도 핏줄은 영원하리라
이사부와 거칠부 : 신라의 전성시대를 연 환상의 콤비
우륵 : 조국을 등진 한(恨) 예술로 승화하다
선덕여왕 : 편견과 맞서 싸운 한국 최초의 여왕
원광 : 성인으로 추앙받은 다재다능 만능법사
자장 : 불법과 외교술로 위기의 신라를 구하다
화랑과 낭도들 : 나라의 명예 드높인 청년 영웅들
설계두 : 당 태종을 감동시킨 신라의 6두품 귀족
벽화·안길처·도화랑 : 권력 앞에 바쳐진 신라의 여인들
설씨녀 : 전시 상황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김춘추 : 신라의 생존을 위해 무열왕가의 미래를 위해
김유신 : 삼국통일 위업 이룬 전쟁과 외교의 영웅
인물소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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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사진출처
책속에서
가야는 소국 연맹체에 머무른 채 고대 국가를 완성하지 못했으므로 하나의 국가로 취급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3세기 이후로 가야 연맹은 고구려, 백제, 신라와 관계를 맺을 때 엄연히 대외적으로 하나의 정치체 역할을 했으며, 일시적으로 고대국가의 면모를 보여 중국 남제로부터 책봉을 받기도 했다. 가야의 존재를 제외하고는 적어도 3세기부터 6세기까지 300여 년간의 역사를 제대로 구성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우리나라 영토를 셋으로 나눠 지배하던 시기는 562년부터 660년까지 불과 98년 동안이다. 따라서 ‘삼국시대’란 용어를 고집하면 그 이전 1,000년 이상의 기간은 우리 역사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는 ‘통일신라시대’라고 표현하는 순간 발해가 영유하고 있던 대동강 이북에서 만주에 이르는 영토의 기억을 상실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101쪽)
가야는 낙동강 유역과 남해안 일대에 있었던 변한의 여러 작은 나라를 가리키는 총칭이다. 낙동강의 본류와 수많은 지류는 이 작은 나라들을 연결시켜 주었고, 이는 가야 문명의 젖줄인‘교역 네트워크’를 탄생시켰다. 3세기 김해의 금관가야는 철이 많이 생산되고, 낙랑·대방군과 일본 열도를 잇는 해상 교역로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가야 연맹을 대표하는 나라로 클 수 있었다.
이러한 교역망을 부러워하며 훔쳐보고 있던 신라는 4세기 이후 낙동강 상류에서부터 가야 세계를 서서히 점령해 나갔고, 마침내 6세기 중반 경북 고령 지역의 대가야를 정복하고 낙동강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이처럼 신라와 가야의 역사는 낙동강과 함께하였다. (16쪽)
우리가 흔히 쓰는 ‘삼국시대’라는 용어 속에는 가야가 빠져 있다. 가야 역사는 한국사에서 거의 잊힌 역사였다. 우선『삼국사기』등 과거 역사서에는 가야에 대한 기록이 부족하다. 또한 가야의 전·후기 맹주국이 자리 잡았던 김해나 고령에 가봐도 백제와 신라의 수도였던 부여, 경주에 비해 이렇다 할 문화 유적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지금 경주에 남아 있는 신라 유적 대부분은 삼국통일 이후의 것이고, 삼국시대라 불리는 668년 이전 것은 극히 드물다. 삼국시대의 것이라 해도 7세기 무렵에 형성된 것이 대부분이다. 백제 무왕 대의 익산 미륵사지, 말기의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 신라 선덕여왕 대의 경주 첨성대와 분황사 모전석탑 등이 그 시기에 속하는 유적이다.
가야는 한반도 전체에 불교 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하던 6세기 후반 초엽에 멸망해 신라나 백제와 같은 고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가야 지역엔 가야 소국 왕들의 무덤이 광범위하게 남아 있으며, 무덤 안에서 나오는 부장품들도 같은 시대의 백제나 신라에 못지 않게 풍부하고 수준이 높다. 가야 문화의 이런 저력을 무시한 채 한국 고대사에서 가야사를 배제해도 좋은 것일까? (1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