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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테마로 보는 역사 > 문명/문화사
· ISBN : 9788959064298
· 쪽수 : 400쪽
· 출판일 : 2017-02-14
책 소개
목차
머리말 : 우리는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살았을까? ․ 5
프롤로그 : 박정희 시대는 결코 단일하지 않다 ․ 12
박정희 시대를 역사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 박정희 시대의 대중문화? 그 질긴 선입견 | 문화로 역사를 읽는다는 것 | 대중문화로 당대의 사회심리를 읽는다 | 어쩌면 이렇게 딱딱 들어맞을까! | 박정희 시대의 사회심리
제1부 혁명과 정변, 그 격변의 시기를 향하여
불안정하고 어설픈 1950년대 ․ 27
“한국의 오늘은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 | 대중예술사에서 1960년대는 확실히 새로운 시대 | 1950년대 한국에 웬 인도와 페르샤? | 미국을 중심으로 ‘상상지도’를 그리다
자유부인만 춤을 춘 건 아니다 ․ 40
조직폭력배와 TV와 쿠데타 | 서울에 땐스홀을 허하라? | 춤추는 것이 죄인가? | ‘자유’, 그 가슴 벅차고도 불편한 말 | 전쟁, 그것은 자유와 해방의 계기 | ‘아프레걸’이라는 신조어 | ‘자유부인’만? 그 남편들도 다르지 않았다 | 여론의 공격은 ‘남자 어른’에게 불편한 곳으로 향한다
날라리들이 시민혁명을 일으켰다 ․ 60
“어머, 전직 대통령들이 살아 있다니!” | 대통령이 양녕대군 16대손임을 들추던 시대 | 서울 장안 처녀 6할이 처녀성 상실? | 잡지에 대한 단속, 풍기 문란과 공안의 물 타기 | 자유주의적이면서 ‘아프레하지’ 않은, 온건한 절충 | 날라리들이 혁명을!
제2부 격변의 시기, 개혁과 희망
영화로 확인되는 4·19와 5·16의 연속성 ․ 79
태평양전쟁과 6·25전쟁, 종종 헷갈린다 | 4·19와 5·16은 종이 한 장 같은 차이? | 4·19와 5·16, 대중예술 작품의 연속성 | 합리적으로 도전적인 아들과 관용적인 부모 | 늙은 아버지가 초래한 가부장제의 위기 | 늙은 아버지의 어리석음까지도 포용하는 능력 있는 장남 | 당시의 민심은 무엇을 바라고 있었을까?
개혁의 청년이여, 근대적 기술로 성실히 일하라 ․ 100
4·19와 5·16 사이, 어떤 작품을 기억하는가? | 날라리에서 노동하는 인간으로 | 근대적 기술자, 하얀 가운과 작업복 | 생산, 노동, 개혁하는 청년 | 민심에 올라탄 5·16 정권
또순이는 돈을 모아 사장이 되었을까? ․ 116
‘또순이’란 말을 아시나요? | 이승만이 아니라 박마리아가 문제? | 당찬 여성이라도 남성의 보조자 | 돈 버는 여자를 유한마담과 동일시한 시대 | 일제 말의 일하는 여성과 달라진 지점 | 강해진 여자들 | 최은희 VS 김지미 | 김지미와 최은희는 모두 1960년대에도 살아남았다
제3부 ‘잘살아보세’의 희망과 역사라는 난제
자신의 역사를 갖고 싶은 욕망과 그 이면 ․ 135
언제 나온 노래일까? | 역사는 ‘구성’하는 것이다 | 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폭증하는 때 | 사극의 중심은 늘 조선시대였다고? 천만에! | 궁궐이 세트장이 된 시대 | 가족물·연애물의 문법으로 읽힌 역사 | 6·25 소재 전쟁 영화의 전성시대 | 미군이 사라진 6·25전쟁 | 멋진 국군, 멋진 전쟁 | 국군인 듯 국군 아닌, 국군 같은
응답하라 1945 ․ 156
일제강점기 눈물의 트로트는 ‘나라 잃은 설움’ 때문이다? | 과도한 민족주의적 해석은 1950년대부터 | 구한말과 3·1운동에 집착하는 영화들 | 치욕스런 역사를 다룬 이유 | 복고 열풍은 왜 부는가? | 다큐드라마와 ‘만주 활극’의 인기 | 마적과 독립운동가가 뒤엉킨 만주 활극 | “내가 왜정 때 만주에서 개장사 할 적에”
〈동백아가씨〉 토사구팽 전말기 ․ 178
일장기는 봐줄 수 있는데 〈기미가요〉에는 파르르 | 늘 분노하기만 하는 ‘반일 감정’ | 트로트 부활을 견인한 〈동백아가씨〉 | 한일 대중문화 교류는 예정된 수순이다? | 트로트의 왜색 시비 재연 | 리요시코의 〈사랑의 붉은 등〉 | 방송 금지곡의 순조로운 일본 진출 | 〈동백아가씨〉는 언제 금지곡이 되었는가? | 한일 대중문화 교류는 물 건너가고 | 팽 당하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 198
염장 지르는 노래 | 횡재 아니면 들어먹기 | ‘빽’ 없는 사람은 모두 평등하게 가난했던 1950년대 | 착실하게 돈 모으니, 쥐구멍에도 볕이 든다 | 가불로 살지만, 나는야 성실한 월급쟁이 | 부잣집 딸과의 사랑을 꿈꾸는 영화들 | 고속성장의 시작, 그리고 50년 후
제4부 몰아붙이니 밀려가면서도 ‘미워도 다시 한 번’
〈팔도강산〉은 독재정권의 노골적인 홍보영화였다 ․ 217
1967~1968년, 민심의 바람이 바뀌다 | 정치사와 맞물리는 대중예술사의 변화 | 조국 근대화 유람하기 | 이런 ‘어메이징’한 여행 코스라니! | 이들은 왜 여행을 했을까? |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만든 장편 극영화 ‘광고’ | 대통령 선거 직전에 전국적 무료 관람 | 이승만 정권 때와 같은 점 혹은 다른 점 | ‘탄신’ 축하 노래를 지어 바치던 때와는 달랐다 | 대통령을 내세운 홍보성 행사의 변화 | 갑자기 많아진 주문 제작 건전가요 | 대중들의 동의를 구하던 마지막 시기
성장과 희망에서 배제된 자들과 〈미워도 다시 한 번〉 ․ 236
한국 영화사의 최고 기록 갱신 | 평론가들이 뭐라 하건 간에 | 손발 오그라드는 걸 꾹 참고 | 남편들의 불륜은 늘 있어왔건만, 왜 하필 이때에? | 희망의 거품이 살짝 꺼진 1963~1964년 | 1967~1968년, 민심의 바람이 또 바뀌다 | 성장의 혜택, 모두가 함께 나눌 수는 없었다 | 신파적 작품에 나타난 시골과 변두리 | ‘잘살아보세’ 바람에서 배제된 ‘시골’
어느 시대나 삐딱한 젊은 것들은 있었다 ․ 254
저음 가수 배호의 매력 | 듬직하고 안정감 있는 남자 가장 | 울고 싶은 세상인데도 저항적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 김기팔이란 작가를 기억하는가? | 불쌍한 아버지? 바로 아버지가 문제야! | ‘피해자 코스프레’ 좀 하지 마! | 무책임한 중년 가장과 풍비박산의 가정 | 작가의 삐딱함에 호응해줄 대중
제5부 종신 집권과 대학생과 청년문화
청년문화는 왜 하필 1970년대였을까? ․ 275
이식론, 자생론, 혼종론의 소모적 대립을 넘어서 | 한국의 ‘엘비스와 비틀스 바람’은 언제부터인가? | 한국 최초의 포크와 록 음반 | 한국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베이비부머 | 청년문화, 포크, 대학생 | 판이 뒤집힌 1971년 | 국가비상사태와 〈아침이슬〉
청년문화와 정치적 진보성은 어떤 관계였는가? ․ 293
데모꾼들은 ‘김민기 노래’를 즐기지 않았다 | 머리도 가방도 자유롭게 너펄너펄 | 새로운 자유주의적 문화에 대한 각 시대의 대응법 | 자유주의적 신세대 문화가 민주주의와 손잡은 1990년대 | 히피, 민주주의, 한국의 청년문화 | 청년문화의 중심, 록이 아닌 포크였던 이유 | 자유주의 문화가 ‘조금은’ 숨 쉴 수 있었던 1970년대
드라마 〈아씨〉와 〈여로〉의 히트가 의미하는 것 ․ 311
트윈폴리오 노래와 이미자 노래, 어느 것이 먼저인가? | 대중가요가 가장 먼저, 그리고 소설과 영화 | 복고 경향을 보인 TV드라마 | 드라마 〈아씨〉에 전 국민이 감동했다고? | 〈아씨〉·〈여로〉에 대한 묘한 여론 | 전근대적이어서 근대적 조국의 주체가 되었다는 역설 | 너희 젊은이들도 순종하고 노력하면
서양적이어서 더욱 한국적일 수 있었던 청년들 ․ 328
나 영어 잘하는데, 이건 아냐! | 〈새타령〉과 〈타복네〉의 간극 |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탈춤·판소리 붐 | 장발에 탈을 쓰고 ‘얼쑤!’ | ‘박정희 나라님 잔 뺏기 공차기 누가 누가 잘하나’ | 민족문화와 박정희와 대학생 | 활주로의 〈탈춤〉은 어떻게 봐야 하나?
청년문화에 여성의 자리는 있는가? ․ 344
‘구원의 여성’과 ‘여사친’ | 이들은 ‘여류’가 아니다 | ‘여사친’ 이미지의 씩씩한 여자 가수 양희은 | 신비화된 여성 이미지 | 소녀, 성녀, 창녀? | 더디지만 분명히, 사람이 되어간 여자들
대마초 사건, 그 화려한 스리쿠션 ․ 359
수상하게 과도한 사건 | 그들은 몇 년 징역형을 받았을까? | 도대체 왜 대중음악인만 탄압했을까? | 권력자들이 비상식적이고 황당한 판단력을 지녔다고? | 대마초 사건은 저항에 대한 탄압이었나? | 저항 혹은 퇴폐? 무엇을 노린 것일까? | 날라리부터 데모꾼까지 싸잡은 이유 | 화려한 ‘스리쿠션’
에필로그 : 1975년 그 이후, 유신 말기의 나비효과 ․ 376
거품은 가라앉았다 | 처참한 대중예술계 | 공백은 메워지고 청년들은 성장한다 | 〈아침이슬〉은 어디로 갔을까? | 창작자도 가수도 아닌, 수용자가 만들어낸 새로운 의미 | 10월 유신 덕분(!)에 | 진보적 예술 문화 운동의 주체들, 1975년에 성장하다 | 사라지는 것은 없다
주 ․ 394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이 시대는 정신없고 어쩔 수 없이 어설펐다. 대중들도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느라 참 버거웠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대중들이 자신의 머릿속에 그렸던 세계의 상상지리는 아시아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해방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세계에 대한 인식은 아주 달라졌고, 아시아를 훌쩍 뛰어넘어 미국과 서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상상적 지형도를 그려야 했으니 아주 바쁘고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어설픈 아시아적 이국성의 노래들은 대중의 시야에서 싹 사라진다. 10년도 안 된 시간 안에 이루어진, 놀랍게도 빠른 변화다. 박정희 시대는 이 새로운 시대의 출발과 맞물려 있다. 「불안정하고 어설픈 1950년대」
『자유부인』은 이러한 대학교수 부부의 세태를 ‘사바사바’, ‘뒷돈’을 먹고사는 공무원, 부자 스폰서와 공생하는 국회의원, 심지어 돈 봉투를 들이밀며 성적을 올려달라는 대학생과 이를 받아 챙기는 교수 부인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의 온갖 부조리를 만들어내는 인간들과 버무려놓는다. 당시 서울대학교 법대 교수 황산덕이 『자유부인』을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조국의 적’이라고 비난한 것은 단지 춤바람을 다룬 까닭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갖은 재롱을 다 부려가며 대학 교수를 모욕’했다는 분노 어린 표현에서도 읽을 수 있듯이, 교수 부인의 타락을 그린 것뿐만 아니라 이 소설이 소설 속에서 가장 도덕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장태연 교수마저 ‘미스 박의 하얀 종아리’에 한눈을 파는 인물로 그린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유부인만 춤을 춘 건 아니다」
5·16을 경유하면서 이 흐름을 5·16 정권의 것으로 귀결시키고자 하고, 여기에 근면·성실의 흐름을 더욱더 강조하고자 하는 노골적인 시도는 분명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대표적인 작품은 영화 〈쌀〉(신상옥 감독, 1963)이다. 귀향한 상의군인 차용(또 신영균이 맡았다)은 마을 사람 모두가 기아에 허덕이는 지독한 가난은 농사지을 물이 없어 땅의 태반이 황무지로 팽개쳐져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그는 바위산에 굴을 뚫어 황무지에 물을 대고자 마을 청년들을 설득해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 일에는 오로지 곡괭이만으로 바위산에 굴을 뚫는 물리적인 어려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을 유지인 지주 송 의원은 소작인들이 황무지를 개간해 자영농이 되는 것을 막으려고 노회한 방해 공작을 편다. 심지어 무당을 사주해 ‘산을 건드려 산신령이 노했다’며 마을 사람을 선동하도록 한다. 「개혁의 청년이여, 근대적 기술로 성실히 일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