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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9130696
· 쪽수 : 576쪽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_ 나를 역사 속에 묻으려는 시간의 의지일지도 모르지만
목선
갈매기
어머니
폐촌
앞산도 첩첩하고
낙지 같은 여자
해신의 늪
기찻굴
가을 찬바람
해변의 길손
까치노을
검은댕기두루미
그러나 다 그러는 것만은 아니다
작품 해설_ 반(反)파우스트 - 목선(木船)에서 농현(弄絃)까지 - 김형중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김발에 채취선을 붙이고 뱃전 앞에 쭈그리고 앉아 바쁘게 김을 뜯고 있던 그는 갑자기 채취선이 한쪽으로 기우뚱하기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옆에 앉아서 김을 뜯던 양산댁이 일어서서 이물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덕판 앞까지 간 그녀는 물 묻은 손을 갯두루마기 자락에다 닦으며 돌아섰다. 고물로 갔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양식장 여기저기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김을 뜯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이물로 달려갔다. 덕판 앞에서 우뚝 섰다. 잠시 망설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맛살을 찌푸린 채 엉거주춤 옆으로 돌아앉으며 통 넓은 갯바지를 끌어 내렸다. 그녀의 얼굴이 저녁놀에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떨구고 김을 뜯었다. 갑자기 이쪽도 오줌이 누고 싶어졌다. 참았다가 조금 어두워지면 누리라 했다. 파란 물결을 들여다보며 김을 뜯기는 뜯지만, 머릿속에는 자꾸 저녁놀에 발갛게 물든 그녀의 얼굴이 그려졌다. 뱃전을 찰락찰락 두드리는 물결 소리에 섞여, 뱃바닥에 괸 물로 내리뻗치는 그녀의 오줌 줄기 소리가 쉬이 하고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김을 한 줌 뜯었다. 다시 한 줌 뜯었다. 아직 그 소리는 줄곧 줄기차게 뱃바닥을 울리며 그의 가슴속으로 전류처럼 울리어왔다. 그 울림이 배꼽 아래로 번져갔다.
―「목선」중에서
미륵례는 바위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듯 꼼짝을 않고 있었다. 그것은 음험한 문어라는 놈을 후리는 자세였다. 문어 그놈은 참 괴상한 놈인 것이었다. 그놈은 눈이 비상하게 좋아서, 색깔을 구분하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특히 핏빛으로 빨간 것을 좋아해서, 그게 어른거리면 은신하고 있던 바위틈에서 슬며시 기어 나와, 수없이 많은 빨판이 있는 여덟 개의 발로 그 빨간 것을 덥석 덮치는 것이었다. 빨간색을 좋아하는 그놈은 음험하게 탐욕이 많은 놈인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해변 지방의 여자들은 예로부터 그놈이 빨간 색깔을 탐하는 것을 이용하여, 그놈을 잡곤 하여왔다. 요즘 들어서는 그런 방법으로 문어잡이 하는 아낙들이 드물지만, 예전 미륵례가 처녀일 적만 하여도, 이 하룻머릿골 아낙들은 이런 방법으로 많은 문어를 잡곤 했었다. 미륵례가 바위에 붙어 움직이지 않자, 개는 앞발로 바위 끝을 두어 번 긁어대더니, 다시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거의 우는 듯한 소리로 “어후 어후” 하고 괴상스럽게 짖어대더니, 이어 낑낑거리면서 미륵례가 붙어 선 바위 끝에서 맴을 돌았다.
―「폐촌」
노루목 다리 끝으로 내려갔던 두 사람이 귀신한테 쫓기기라도 한 듯 모래밭으로 달려 나왔다. 모래밭을 건넌 그들이 메 끝으로 달려 들어갔을 때, 풍물 소리가 일시에 뚝 그쳤다. 벌겋게 타던 모닥불이 빛을 잃어갔다. 사람들이 덤벼들어서 모래를 끼얹어대는 것이었다. 모닥불 타던 자리에서 부우연 연기만 피어올랐다. 사람들이 풍물 소리를 내지 않고 메 끝을 돌아서 선창 쪽으로 사라졌다. 차려놓은 음식을 물 아래 김 서방이 먹도록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었다. 이때였다. 시꺼멓게 어둠이 들어찬 바위굴 안에서 번쩍하고 불이 밝아졌다. 아내가 성냥불을 켠 것이었다. 잠시 불빛이 가물거리더니 굴 안이 더욱 밝아졌다. 불을 촛불에다가 붙인 것이었다. 굴천장에 엉긴 물방울과 이끼가 불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거렸다.
―「해신의 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