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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59139194
· 쪽수 : 244쪽
책 소개
목차
보관증 1 어서 오세요, 보관가게입니다
보관증 2 선물 받은 물빛 자전거를 접수합니다
보관증 3 상자에 담긴 소중한 기억을 접수합니다
보관증 4 서류에 적힌 슬픔을 접수합니다
보관증 5 책 속에 담긴 죄책감을 접수합니다
에필로그 사장님 고양이와 비누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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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어서 오세요, 고양이 사장님이 기다리는 우리 모두의 보관가게에
리뷰
책속에서
이 가게는 아시타 마치町 곤페이토 상점가의 서쪽 끄트머리에 있습니다. 오가는 사람은 있지만 이곳에 시선을 주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간판이 없거든요. 소박한 쪽빛 포렴(일본의 술집이나 음식점 등에서 출입구에 늘어뜨리는 천. 간판 역할을 한다)에 ‘사토さとう’(설탕)라는 둥글둥글한 히라가나 문자를 하얗게 물들였을 뿐이라서, 밖에서 보면 가게인지 가정집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요.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가면 가게인 걸 알 수 있어요. 주인이 있거든요. 파는 물건이 없더라도 주인이 있으면 가게지요.
텅 빈 유리 진열장 옆에 한 단 높은 마루가 있습니다. 주인은 약간 어둑한 다다미 여섯 장 크기의 마루 구석에 앉아 책을 읽고 있어요. 자그마한 책상 위에 큼직한 책을 올려놓고, 어두워도 전등은 켜지 않죠. 손바닥이 페이지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으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부지런히 이동합니다.
마루 중앙에는 푹신푹신한 방석이 하나 있습니다. 손님용이에요. 주인의 방석은 오랫동안 사용해서 엉덩이에 닿는 부분이 얄팍해졌습니다.
손님은 하루에 한 사람이 올까 말까. 주인은 기다림을 일이라 여겨 그 자리에서 책을 읽으며 오전 일곱 시부터 열한 시까지 손님을 기다리다가 점심시간에 잠깐 가게를 닫고요, 다시 오후 세 시부터 일곱 시까지 자리를 지킵니다.
쥐 할아버지는 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이걸 맡아줬으면 하오만.”
주인은 봉투를 받고 물었다.
“알겠습니다. 기간은 어느 정도로 하시겠습니까?”
회색 할아버지는 기간을 생각해놓지 않았는지 한참 고민하다가 “2주간” 하고 대답했다.
“보관료는 하루에 100엔이므로 1,400엔입니다.”
주인이 금액을 말하자 쥐색 할아버지는 난색을 보였다.
“그건 좀 그렇군. 이건 중요한 서류요. 하루에 1,000엔으로 쳐서 1만 4,000엔에 맡아주시오.”
특이한 손님이다. 보관료를 올려달라고 요구하다니. 특별 대우를 바라는 걸까?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봉투 안에 든 것이 그렇게나 가치가 있나?
하지만 주인은 단호히 말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희 가게는 100엔이라서 소홀히 보관하고 1,000엔이라서 소중히 보관하지 않거든요. 어떤 물건이든 똑같은 조건으로 정성을 다해 보관합니다.”
그 말을 듣고 쥐 할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초조할 만큼 긴 침묵이어서 내게 팔이 있다면 막 흔들어서 재촉하고 싶었다. 물론 내겐 팔이 없어 그러지 못한다. 반면, 주인은 불만이 없는지 평상심을 유지하며 상대의 말을 얌전히 기다렸다.
주인은 태엽을 감고 뚜껑을 열었다. 작은 새가 발로 피아노를 치는 것 같은 소리가 가게 안에서 사뿐히 춤췄다.
“유서를 쓴 다음 날, 사장님은 마음을 푹 놓으신 것처럼 눈을 감으셨습니다.”
기노모토가 눈을 새빨갛게 붉히며 말한 순간, 안에서 “야옹” 하고 우는 소리가 나더니 솜먼지가 굴러 나왔다. 아니, 먼지가 아니다. 자그마한 하얀 고양이다.
“어라, 고양이를 키우셨군요?”
기노시타는 눈물을 숨기며 말했다.
주인은 오르골을 두고 새끼고양이를 양손으로 조심히 들어올리더니 “맡은 거지만요”라고 대답했다.
맡은 거라고?
시체인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구나!
일주일 내내 안방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필사적으로 살려낸 거다.
나는 생각했다. 쥐 할아버지도 주인의 손을 통해 소생할 수 없을까? 금방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쩝, 그냥 유리 진열장의 헛소리다. 하지만 곧 이어서 진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 고양이는 쥐 할아버지의 환생이 아닐까. 오오. 이게 현실적이다. 모순도 없고.
“고양이 이름은?”
기노모토가 물었다.
“이름은 붙이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대답하더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사장님이라고 하죠” 하고 말했다.
“저는 속이 너무 편해서 사장 그릇이 못 된다고, 손님이 모시는 사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보관가게의 사장은 이 아이에게 맡기도록 하죠.”
기노모토는 “그거 좋군요” 하며 하하하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