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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한국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59758098
· 쪽수 : 344쪽
책 소개
목차
1
~
31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바람이 분다. 바닷바람이다. 바람이 건네는 선물인 양 소금기도 들척거렸다. 팔을 한 번 쓸었다. 손바닥에 소금이 묻어나는 듯했다. 접었던 셔츠의 소매를 내려 단추를 채웠다. 눈을 들었다. 자연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더니. 물의 정점, 바다다. 구름을 내비치는 맑고 투명한 바다. 유려한 곡선을 이룬 해안. 압도당한다. 평온해진다. 네 시간을 달리며 머릿속을 달구던 살인에 대한 흥분이 바다에 잠긴다. 나는 살인 담당인가. 아니면 해결 담당인가.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자 이내 기억 하나가 사라진다.
“하긴, 이런 추리소설연구회에서 철수야, 영희야 이러면 더 어색하겠다. 난 아가사로 할게.”
도일을 가뿐히 무시하며 아가사는 낡은 파이프 의자에 앉았다. 연희대학 추리소설연구회의 ‘전설적인’ 아가사 탄생일화였다. 그녀로 인해 선례가 잘못 만들어진 탓인지 이후 동아리 회원들에 대한 인적사항은 탐정이나 작가의 이름을 사용하고 전화번호만 기록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그렇다고 해도 동아리 회원은 쉽게 모이지 않았다. 호기심이나 장난삼아 방문하지만 이내 도일의 진지한 포부에 압도되어 웃으며 사라지기 일쑤였다.
맞았다. 아가사의 말은 핵심을 찔렀다. 자크 푸트렐이나 로드리게스 오트렝귀 등 1900년대 초반의 몇몇 작가들은 문학성을 배제한 채 ‘추리’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마르고 건조한 글을 써냈다. 핵심은 퍼즐의 해결이었다. 즉, 작가가 창조한 트릭이나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가장 간단하고 빠른 표현으로 의사만 전달하면 되었다. 현대라면 게임으로 대체가 가능한, 지적 유희의 형태였다. 퍼즐 형태의 추리소설은 ‘본격 미스터리’라는 말로도 바꿀 수 있었다. 다만 엄격하게 분화했을 때 둘은 미묘하게 달랐다. 본격 미스터리가 간단하게 홈즈를 지칭한다면 퍼즐 미스터리는 오히려 콩트나 추리퀴즈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