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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1042628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20-01-07
책 소개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허스키
흉터 10
石耳 11
비 12
허스키 13
못걸이 14
103호 남자 16
나방 17
저수지 18
당집 가는 길 19
정류장 20
바람이 일면, 그냥 피 붉겠다 21
오후의 산책 22
용문객잔 24
흘려버린 날들 26
머리를 빗으며 27
제2부 하루
하루 30
딱, 31
서해로 간 겨울 32
의자 34
점촌 36
검은 성자 38
생은 발화發火된다 39
꽃의 기억 40
타인의 방 42
너는 일몰을 껴안고 있으니 45
길거리에서 46
마른 잠의 신경 줄에 걸린 48
철근 50
강물이 숨을 쉰다 51
한밤의 우편취급소 52
제3부 나타샤를 생각하다
섬 56
물소가죽 소파 57
대화 60
나타샤를 생각하다 62
거미집 64
수박색 66
당신의 노을 67
서호西湖에서 일몰 68
한 번의 마주침 70
물들어가는 것 72
너 때문에 74
꽃 피어 그대를 향하네 75
시월 76
겨울 삼나무 숲 78
사후, 80
제4부 여름의 깊이
논어論語 82
박지원 83
여름의 깊이 84
중천에 86
후생後生 88
복사꽃 지고 90
그릇 92
던져진 화분 94
입동 96
달빛을 밟다 97
감추어 놓은 전생 같은 날 98
눈 먼 99
중심을 잡다 100
옻나무 102
제5부 상응
상응相應 104
실뱀장어 낚기 106
비 그친 뒤 108
소리 109
직소폭포 가는 길 110
거미줄 112
몸 114
슬픔 116
그리움 118
울음 120
오디 빛 122
물길 123
숲 124
산딸나무 꽃 125
염창권의 시세계 | 이숭원 126
저자소개
책속에서
한밤의 우편취급소
소리 나는 쪽으로 한쪽 귀가 쏠렸어,
가랑비 속으로 누군가 오고 있는데 뿔이 달렸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어, 마른 낙엽 긁어모으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은데 너는 올 수가 없으니 반짝이는 빈 우산을 펼쳐둔 곳에 네 자리를 정해 놓고 기다릴게
경적도 없이 바퀴가 지나가는 우편취급소엔 잉크가 말라붙은 종이가 잠들어 있지, 희붐한 창문 아래 색깔도 감촉도 중력도 없이 잠들어 있는 넌, 내 허무와 비참의 수신처일 터인데
잠이 덜 깬 공복감, 비릿한 키스, 아니면 입술 맛 같은 건 포장할 수 없지, 단지 네게 보내려는 건 타다만 검은 심지, 빈 접시에 남겨진 얼룩, 뭉개진 칫솔, 끈 풀린 속옷가지
벌써부터 영원에 홀려버린 엽서들은, 맥박이 마구 뛰면서 날아가려고 파닥여서 물에 불은 커다란 우표로 눌러두었지, 그때에 톡, 톡, 이교도의 손가락이 아프게 내 가슴골을 노크했어,
두 번의 충격으로 심박기가 출렁이고 눈에 비친 유리창 너머로 검은…… 얼굴이, 문자로 전송할 수 없는 사물과 신체들이 쌓여 있는 복도를 스쳐갔지,
그게 너야?
하루
뒷집 마당에
검은 구덩이 새로 패였다
줄을 서서 배웅하던 나무들
말을 잃고 묵묵히 젖은 산그늘을 끌어 덮었다
담벼락에 나란히 기댄 의자들도
햇볕에 졸던 한쪽 귀를 벌써 어둠에 묻었다
굴뚝에서 거먼 길이
흘러나올 때
다리를 저는 그림자가 잠깐 다녀간 듯
우물가에 체인이 벗겨진 자전거,
녹슬어서
여기까지 온 것만도 애쓴 거라고
눈두덩이 부은 저녁이
길가에 한참 서 있다가 들어갔다.
하루
뒷집 마당에
검은 구덩이 새로 패였다
줄을 서서 배웅하던 나무들
말을 잃고 묵묵히 젖은 산그늘을 끌어 덮었다
담벼락에 나란히 기댄 의자들도
햇볕에 졸던 한쪽 귀를 벌써 어둠에 묻었다
굴뚝에서 거먼 길이
흘러나올 때
다리를 저는 그림자가 잠깐 다녀간 듯
우물가에 체인이 벗겨진 자전거,
녹슬어서
여기까지 온 것만도 애쓴 거라고
눈두덩이 부은 저녁이
길가에 한참 서 있다가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