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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1043755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4-12-19
책 소개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탑 12
오후 14
구멍 16
낙하 18
너머로 뭉근하게 20
우리 22
붉다는 말 24
자리 25
숲 26
소국이 선 채로 28
월평로 30
가령 32
시작 34
고수 36
제2부
들리냐? 38
길 위의 시간 40
벽 뒤로 42
낯선 파랑 44
낡은 첼로의 봄 46
별 48
흥덕왕릉 가는 길 50
올가을 비가 짧아, 차암 짧아 51
너는, 52
立夏 54
방 56
항구 58
틈 59
분홍 60
제3부
숲 62
배추의 얼굴 64
즐거운 명절 66
저녁의 게임 67
슬도가 그를 찾는다 68
편지 70
편지 72
승부 73
그녀가 내게 74
PRESTO, 75
독 76
고비의 시간으로 꽃물 번지네 78
시인 80
과거형 말은 슬프다 81
제4부
소금 목걸이 84
끓다 85
건양다경 86
풍경이 철들었다 88
들,이 모여 90
꽃꽂이 상담실 92
고래, 크로키 94
급한 볼일 95
별사別辭 96
바다낚시 98
열일곱 100
섬진강 102
병목 104
잔과 바다 106
▨ 김감우의 시세계 | 배옥주 107
저자소개
책속에서
구멍
하늘에 구멍이 났나, 비는 그칠 줄 모르고 퍼부었다 바닥이 어딘지 알 수 없던 오후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다 스물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 구름의 입장은 단지 좀 가벼워지고 싶다는 것, 어딘가를 뚫어 몸 줄이는 일이었는데
어젯밤 잠시 누군가의 가슴 숭숭 뚫린 소리를 들었다면 그것은 중심을 향하는 열망
구멍이 아니면 지나갈 수 없는 암흑의 시간을 몸을 기대고 지나가는 중인 것
어딘가를 위태롭게 가는 외나무다리 같은
시계에 숫자를 잘 보면 작은 구멍들 줄지어 가고 있지
석남사 엄나무 구유가 소임을 다하고 저리 오래 항해하는 것도 바닥에 물을 빼던 구멍이 있었기 때문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별도 우주의 작은 구멍이고
찌개가 끓어오를 때 보글거리는 소리도
구멍이 생겨나는 중인 것 제 온도를 견뎌내는 방식
그러니까 당신이 한밤중 단톡방에 올린 뜬금없는 한마디도 구멍의 일, 괜찮아 그 소리에 우리 잠 좀 깼어도
시인
노래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잔 물줄기 같다
자주 드러눕는 몸을 닮았다
데미샘에서 나서는
고향의 강 상류처럼
굽이마다 휘돌아 나오며 우는 법이
그의 시다
그 시의 통점에서 나는
쉬어 갈 수밖에 없다
강은 흐르면서 노래가 되고
역사가 된다
내 울음소리를
어디쯤 배치할까를 고민하는 사이
시인의 노래는 이미 바다 물목에 들었다
가장 느린 노래가 가장 멀리까지 닿는다
그래서 시인의 노래는 귀를 바짝 대야 들린다
잔과 바다
잔 속에 물이 차오를 때
잔은
제 몸을 낮추고 또 낮추며
물을 받든다
그래서 잔 하고 그 이름을 부르면
말의 바닥이 길고 묵직해지는
종소리 같은 신뢰가 있다
반쯤 차면
반은 비워둔 채 가득해지는
수평선의 저녁처럼
바다도
여울의 낙차를
오롯이 받고 싶어 바닥을 낮추고
굽은 겨울 강 아프게 안아
반을 채웠다
나머지 반은
허공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