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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한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88961223577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13-04-25
책 소개
목차
Ch2. 이석훈의 선택 … 043
Ch3. 수료 … 065
Ch4. 이사 … 101
Ch5. 부임 … 129
Ch6. 회식 … 155
Ch7. 화월루 … 185
Ch8. 근무 시작 그리고 노인 … 219
Ch9. 부족함 … 249
Ch10. 적의 적 … 277
Ch11. 견학 … 303
Ch12. 의뢰 … 321
Ch13. 김재학 … 349
저자소개
책속에서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해 보게.”
송재광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제게 그런 호의를 베풀어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호의는 자네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네.”
송재광은 아무런 고민 없이 민철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럼……?”
송재광의 시선은 민철을 벗어나 휴정에게로 향했다.
“스님 때문도 아닙니다.”
휴정의 표정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내가 이 일에 나서는 것은 단지 내가 알았기 때문이야.”
“그게 무슨 뜻입니까?”
“국가를 시계에 비유한다면 공무원은 나랏일을 돌아가게 하는 톱니바퀴들이지.”
민철은 잠자코 송재광의 말을 들었다.
“오래된 나라일수록 그 톱니바퀴들은 여러 가지 문제를 갖게 되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나?”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죠.”
민철의 대답은 원론적인 답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 하지만 말이야. 그 톱니바퀴들은 서로 엇물려 돌아가고 있다네. 그중 하나만을 고친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아.”
“그래도 더 늦기 전에 고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민철의 말에 송재광은 피식 웃었다.
“시계는 말이야. 고장이 나고서야 고칠 생각을 하는 물건일세. 만약 우연한 기회에 고장 난 부위를 알게 되거나 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닙니까?”
“이보게, 젊은 친구. 시계는 어찌 되었든 돌아가고 있다네.”
“…….”
“시계의 그 정교한 부품들은 쉽사리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니고 말이야.”
민철은 송재광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저에게 해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자네 입으로 공무원 지망생이라고 하지 않았나?”
“…….”
“자네가 들어오려고 하는 시계의 모습을 이야기해 주는 거라네, 젊은 태엽 친구.”
송재광은 자신의 말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민철은 마주 웃어 보일 수 없었다.
“나 역시 그런 톱니바퀴 중 하나일세. 그나마 고장이 났다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뿐이랄까?”
“…….”
“모르면 모르고 넘어갔겠지. 하지만 알게 된 이상 신고를 하고 고쳐 내야 되지 않겠나? 그게 이유라네.”
송재광은 그러한 말만 남기고 절을 떠나갔다.
- 1권
김재학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문득 하나의 명언을 떠올렸다.
‘민주주의가 위대한 것은 모든 유권자에게 어리석은 선택을 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아트 스펜더의 말이었다.
‘다시 한 번 어리석은 선택을 종용하는구나.’
고민을 하던 김재학은 결심을 굳혔다.
어차피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손과 입김이 닿는 인물이 낫다고.
“정훈아.”
“네, 어르신.”
“기억해야 할 한 가지 말과 해 줘야 할 한 가지 일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심정훈의 대답이었다.
해 줘야 할 일이라는 것에 부담을 가질 법도 했지만 심정훈은 개의치 않았다.
김재학의 성정을 알기에 그 일이 개인의 사사로운 영리와 관계된 일이 아닐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항상 기억하게. 프랭클린 P. 아담스는 이렇게 말을 했네.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입후보자에게 반대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말일세.”
심정훈이 당선이 되더라도 결코 자신이 잘나서가 아님을 알라는 뼈 있는 일침이었다.
“항상…… 새기겠습니다.”
김재학의 영향력을 알면서도 쉽사리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불편하기 때문에.
듣기엔 옳은 말이지만, 그렇기에 들으면 불편하게 와 닿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김재학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선 불편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심정훈 후보자.”
김재학의 호칭이 변했다.
그 뜻을 알아들은 심정훈의 낯빛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네! 어르신!”
앉은 자리에서 꾸벅 숙이며 감읍하는 심정훈이었다.
“김 모가 자네를 믿어 보겠네.”
단순한 한마디였지만 심정훈은 마치 청와대로 이사를 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대답을 하던 심정훈은 김재학의 말에서 빠진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르신, 제가 해야 될 일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선되시거든 잊지 말고 조용히 한번 들르시게나.”
“네, 그리하겠습니다.”
심정훈에게 있어선 기분 좋은, 하지만 김재학에겐 태극기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게 만드는 대화가 끝이 났다.
심정훈이 돌아가고 홀로 남은 김재학은 자신의 책상에 앉아 먹을 갈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김재학은 화선지에 붓을 가져갔다.
평소 즐겨 치던 난이나 한자들이 아니었다.
Politics.
서예로 쓰기엔 어색해 보이는 정치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였다.
김재학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쓴 글자를 계속해서 들여다보았다.
순간 김재학은 얼굴을 찡그리며 화선지의 중앙을 양손으로 잡았다.
찌익.
결대로 길게 찢어지기 시작한 화선지.
덩달아 글자도 나뉘었다.
‘Poli’와 ‘tics’.
그리스어로 피 빨아먹는 벼룩이란 뜻이 된다.
심정훈의 뒤에 서기로 한 이상 자신도 다시금 그런 부류가 되었음을 되새기는 것이었다.
‘벼룩. 또 무언가를 빨겠지. 하지만 이번엔 피가 아니라 고름이 될 것이야.’
김재학에겐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그에 필요한 생각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흠…….’
우연일까?
김재학의 머릿속엔 자신을 정민철이라 소개한 청년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 3권
김재학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내 하나만 말해도 되겠는가?”
“네.”
“자네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을지 짐작이 가네.”
“저에게 고민이 있다구요?”
민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재학은 고민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지하고 있는 고민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고민.
민철의 경우엔 후자에 해당되었다.
“앞으로 하게 될 고민일 수도 있겠지. 들어 보겠나?”
김재학은 푸근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민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재학의 성품이 진중하니 허튼소리를 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을 해 주고 싶네.”
“위기…….”
민철은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가 보기엔 자신에게 위기의 상황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소연이 보이는 걱정 어린 시선도 그렇고 말이다.
“해결책은 자네 말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뿐이지. 하지만 공무원 사회에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 대부분 해도 티가 안 나는 것들이야.”
민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하는 것 인정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
“그렇습니다.”
“자네라면 홀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걸세. 이런 일을 한다는 것 자체도 자신의 역량을 내보이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말이야.”
김재학은 민철이 아무 말 없이 이번 일을 받아 든 이유를 눈치 채고 있었다.
“하지만 조직이란 공룡은 혼자 끌어선 한 발자국도 움직이게 할 수 없다네.”
“…….”
“모두가 하나로 뭉쳐서 힘을 주어야만 움직이지.”
김재학은 변화를 말하고 있었다.
- 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