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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여행에세이 > 해외여행에세이
· ISBN : 9788962604115
· 쪽수 : 392쪽
· 출판일 : 2012-07-10
책 소개
목차
서문
지도에도 없는 이 낯선 곳
리장의 푸른 밤
장강 협곡에서 만난 눈빛, 별빛
샹그릴라를 우회하다
리탕, 탕탕탕!
세상 끝에 걸친 길, 천장공로
차갑게 아름다운 빛들
라사 가는 길
세라 사원의 야단법석
남초 호수의 별빛
카일라시 행성에서 보낸 며칠
마나스로바 호수의 죽음
길 밖의 길
스리나가르, 달 호수의 유월
스리나가르에서 레까지 1박 2일
샨티 스투파의 밤
당신은 천사와 짜이를 마셔본 적이 있나요?
끊이지 않는 산책의 도시, 쉼라
잠시 반짝이는 네 곁에서 일생을 사는 일
그대 속에 품고 있는 소중한 기원
캔디에서 만난 기원의 꽃불
나는 목적도 없이 저 기차에 올라탈 것이다
세상 끝 차밭마을, 하칼라 버스 정류장
허공 위의 학교
트링코말리, 그 폐허에 솟은 푸른빛
착한 아이야 돌아오라
판차세, 히말라야 여신들의 마을
걷다 사라지는 꿈, 묵티나트와 좀솜
마르파의 가을, 그리고 그대들의 봄
타토파니와 푼힐
구름 정원의 겨울, 나가르코트
나는 왜 떠나는 자가 되었을까
라호르에서의 첫날 밤
허공에 기대는 기술
동서양이 이어지는 길, 페샤와르
천로역정,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달리다
살구꽃을 기다리며, 훈자에서
훈자 마을에는 살구꽃이 피고
카라코람의 동쪽 끝, 스카르두
K2 가는 길, 마출루 빌리지
눈길 속에서 찾을 수 없었던 페어리 메도우
살구꽃 지고 이글 네스트에 오르다
파수, 얼룩 없이 사라지는 시간의 무늬
천공(天空)의 길, 쿤제라브 패스를 넘다
파미르 고원의 카라쿨 호수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여행이란, 마치 다음 생에서가 아니라 이 생에서, 다른 생을 살아보는 일.
***
여행은 자주 인생의 여정에 비유되지만, 여행의 끝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고 다만 여행의 끝이다. 말하자면 여행은 액자소설처럼, 생 속의 생이다. 여행하다 보면 자주, 한 생에서 여러 생을 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더욱이 생이 꿈이라면, 여행은 꿈속의 꿈인 셈이다.
***
그대, 아직 살아 있는가?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렇게 물었다. 그러고는 넋을 잃고 바라보던 구름의 무늬에서 눈을 떼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어쩌면 그토록 사랑했을까. 무거운 배낭에 허리가 꺾이는 길 위에서도 나는 쓰러지고 싶지 않았다. 내 걸음이 그대를 잊었는가. 그 사이 나는 걸음을 걸을 때면 되도록 마음을 줄이고 발걸음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제 아주 명백한 느낌이 든다. 내 눈을 반쯤 감고서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 눈물이 갑자기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죽어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게 되고서야 죽겠다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다만, 아주 오랜만에 그대를 묻는다.
그대 아직 살아 있는가?
***
그대는 살아가고 싶어서 눈이 눈물처럼 빛나던 사람이다. 긴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대 부디 안녕하라. 미칠 것 같으나 사랑은 결코 치명적이지 않으니, 다만 어느 순간에도 부디 그대가 그대이기를 포기하지 마라.
***
생활에 찌든 자들은 산정으로 올라야 하고 죽음에 찌든 자들은 마을로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분명 그 길은 넓게 열려 있어야 한다. 그 길을 막아두고 자동펌프처럼 생활의 의욕만을 자꾸 밀어붙이는 사회는 참으로 무서운 사회일 것이다. 그대가 생활에 붙박여 있다면 마음속에나마 저만의 산정 하나쯤 마련해두길 바란다. 그곳에서 언제라도 세상 끝으로 다가가 다시금 길을 잃을 수 있도록.
***
삶의 대부분은 밋밋하고 지겨운 일상이다. 우리를 온통 적시는 소나기는 평생에 몇 번 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잠시 반짝이고 사라지는 것을 좇아 일생을 사는 일은 그리하여 삶의 대부분을 배반하는 위험한 짓은 아닐는지. 기나긴 기다림의
순간에는 의심스런 의지만으로 견디고 그리워하며 외로웠지만 그보다 늘 맘이 아린 건, 내 삶의 허방한 터전을 깨우치는 충일의 순간이다. 내 부끄럼의 일번지가 되는 곳에서 나는 그만 사고가 멈추고 만다.
***
밤바다는 우직하게 짙푸렀다. 어둠을 집어삼킨, 저 짙은 푸른빛. 저 바다는 어떻게 저 광폭한 정신의 소나기들을 아무 말도 없이, 아무 감격도 없이, 회한도 없이 다 맞아낸단 말인가. 바다는 가장 저급하거나 혹은 가장 완벽한 여행자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같이 해질녘이면 포구에 나가, 또 다른 소나기를 기다리곤 했다. 내 삶이 점점 더 거짓스러워지는 두려움을 견디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곳에 머무는 동안 그때와 같은 소나기는 다시 내리지 않았다. 다만 오후의 찬연한 햇살 속에서 하얗게 빛을 발하는 어느 늙은 어부의 주름진 경륜과 나는 자꾸만 눈이 마주쳐야 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잠시 반짝이고 사라지는 것들은 어쩌면 정말이지 잠시 반짝이고 사라져야 하는 것들이 아닌지….
***
여행은 모순이다. 자유 속에서 생활을 꿈꾸는 아둔한 우여곡절이다. 여행의 길은 그저 멀어서 먼 길이 아니고 길을 알면서도 스스로 나아가서 길을 잃고, 멀리 돌아가야 하는 먼 길이다. 그 길은 절대의 빛으로 이루어진 눈부신 천국으로 가는 길이 아니고 동서남북이 없는 눈부신 환한 빛 속에서 어둠을 조적해서 쌓아가는 제 속의 길이다.
***
나는 왜 떠나는 자가 되었을까.
그리고 이제 와서 내 입으로 할 수 있는 몇 마디 말은,
상처란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나의 자리를 상처에서 비켜 다시 마련하는 일.
이 말을 의심하지 마라. 그 속에 혹은 그 밖에서 치열함을 묻지도.
***
세상에는 차를 한 대도 팔지 못하는 자동차 외판원이 있고,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이 있으며, 여행하지 않는 여행자가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여행하지 않는 여행자는 있다.
사랑을 잃은 자는 사랑의 흔적으로 살고, 여행이 막힌 자는 여행의 그늘 아래 살아가니 여직 길 위에 있는 사람들아,
너무 외롭거나 아프지 마라. 세상 끝에 걸친 그대의 여행은 언젠가 끝이 날 것이다.
사라지지 말고 이 말을 가슴에 새겨다오.
오래오래 당신은 여행생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