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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사실록

맹자사실록

최술 (지은이), 박준원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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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사실록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맹자사실록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유교철학/주역 > 맹자
· ISBN : 9788964066607
· 쪽수 : 241쪽
· 출판일 : 2010-12-28

책 소개

청대 고증학의 가장 훌륭한 성과의 하나로 알려진 <고신록> 중의 일부로서, 맹자의 생애와 사상을 고증학적으로 검토, 분석한 책이다. 여러 인물들을 주제로 삼은 <고신록>중에서 맹자를 주제로 삼아 변증한 책으로, 최술의 독창적인 견해가 제시되어 있어 맹자의 생애와 사상을 보다 잘 이해하고 고증학의 진수를 맛보게 해 준다.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맹자사실록 자서

맹자사실록 권(상)
추나라에 태어나다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했다는 설에 대한 변증
맹자의 어머니가 베를 자르고 돼지를 샀다는 설에 대한 변증
맹자의 어머니가 며느리 내쫓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변증
맹자는 자사에게서 수업을 받은 일이 없다

양나라에 가다
송나라 사람들이 맹자가 제후를 만났던 것을 의심했던 오류
맹자의 시대를 구원하려는 뜻
이란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맹자가 양나라에 이른 것은 양 혜왕이 뒤에 사용한 연호의 말년이다
≪죽서기년≫의 ‘금왕’은 바로 양왕이다
맹자가 양나라에 있을 때는 아직 벼슬을 하지 않았다

제나라를 돌아다니다(상)
맹자가 제나라에 간 것은 양나라에 간 이후였다
맹자가 주나라 왕실을 높이지 않은 이유
맹자의 왕도 정치
맹자가 세상을 구제하려던 고충
사람을 쓰는 데 대한 맹자의 생각과 제나라 대부
필 땅의 전쟁에서 맹자의 사람을 쓰는 생각을 논증함
제 선왕은 맹자에게 기꺼이 감복했다
객경과 관직에 있는 자의 차이(1)
‘평륙’ 장은 제나라 군신의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객경과 관직에 있는 자의 차이(2)
왕환은 맹자를 존경했다

제나라를 돌아다니다(하)
≪전국책≫에 기록된, 제나라가 연나라를 정벌한 일은 맹자의 진의를 잃어버리고 있다
연나라를 정벌한 것은 제 선왕이 한 일이다
맹자가 제나라를 떠난 이유
맹자의 속마음
맹자는 제나라의 채읍을 받지 않았다
제 선왕이 남보다 나은 세 가지

맹자사실록 권(하)
송나라에서 추나라로 돌아와서, 다시 등나라에 갔다가 노나라로 가다
추나라의 유사는 그래도 어질다
등 문공의 질문은 즉위한 뒤에 있었다
먼저 보살핀 다음에 가르쳐라
백성들에게 취함에 제한이 있다
향수에서 백성에게 취하는 제도
도비에서 백성에게 취하는 제도
향수에서는 철법을 썼고, 도비에서는 조법을 썼다
가르치는 것은 인륜이다
전체 장의 요점
정지가 바로 조법이다
군자와 야인
향수의 정책
도비의 정책
결론
<양 혜왕> 편은 시간의 선후로 순서를 정했다
‘노 평공’ 장은 모든 편의 내용을 총결한다

잡기
맹자가 유세하고 다녔던 순서
맹자는 양주와 묵적의 설을 변론한 것이 많다
맹자의 공로

부록
선을 좋아하는 것과 정치를 하는 것
악정자가 왕환을 따라간 것
요·순·우가 왕위를 주고받은 것
부모를 원망하는 것과 상기를 단축하는 것
≪맹자≫는 문인들이 추술해서 만들어졌다.
맹자 문인들의 공로

맹자 제자들에 대해 부기하다

≪맹자≫ 7편의 원류에 대한 고찰을 부기하다

한유가 칭술한 맹자의 삼칙을 부기하다

맹자가 성선을 논한 뜻을 부기하다
본성을 논한 여섯 가지 설
사람의 본성은 이의와 기질을 겸해서 이루어져 있다
월초와 식아의 성악설은 견강부회한 것이다
한유와 정자의 본성론을 논평하다
양설식아의 일을 변증해 부기하다

≪맹자≫를 읽고 남은 이야기 한 조목을 부기하다
≪중용≫이 ≪맹자≫를 답습한 증거


옮긴이에 대해

저자소개

최술 (지은이)    정보 더보기
자는 무승(武承), 호는 동벽(東壁)이다. 건륭(建隆) 5년(1740) 7월 29일 하북성(河北省) 대명부(大名府) 위현(魏縣)에서 태어나, 1816년 2월 6일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 고증학에 전념해 34종 88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의 저술 중 핵심은 《고신록(考信錄)》인데, 이것은 중국의 선진사(先秦史) 전반을 철저히 고증한 역작으로 총 12종 36권이다. 이들은 전록(前錄)에 《고신록제요(考信錄提要)》 2권, 《보상고고신록(補上古考信錄)》 2권, 정록(正錄)에 《당우고신록(唐虞考信錄)》 4권, 《삼대고신록(三代考信錄)》 12권, 《수사고신록(洙泗考信錄)》 4권, 후록(後錄)에 《풍호고신별록(?鎬考信別錄)》 3권, 《수사고신여록(洙泗考信餘錄)》 3권, 《맹자사실록(孟子事實錄)》 2권, 《고고속설(考古續說)》 2권, 《고신부록(考信附錄)》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대표적인 저작은 공자와 제자들의 행적을 고증한 《수사고신록》·《수사고신여록》과, 맹자의 행적을 고증한 《맹자사실록》이다.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소문난 최술은 14세에 대명부 동자시(童子試)에서 장원을 했고, 20세 때에는 순천부(順天府) 향시에서 부방(副榜)을 해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두 차례 과거에서 낙방하자, 최술은 30세 무렵부터 철저한 고증학을 무기로 위서(僞書)의 견강부회를 바로잡고 이단(異端)의 망언들을 도려낼 ‘고신록’ 제서(諸書)를 집필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고증에 필요한 자료를 모으고, 열정적으로 저술에 전념해 많은 저작들을 저술해 나갔다. 52세 때에 최술은 자신의 저술을 세상에 전해 줄 애제자 진이화(陳履和, 1761∼1825)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최술의 어릴 적 스승이었던 주영(朱煐)의 제자였던 진이화는 최술의 저작을 열람하고 감동해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가산을 모두 쏟아부어 최술의 저서를 판각하는 데 평생을 바치게 된다. 56세에 최술은 복건성(福建省) 나원현(羅源縣)의 지현(知縣)에 제수되어 처음으로 관직에 나아갔고, 4년 후에는 상항현(上杭縣)으로 옮겨 백성들에게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그러나 정사에 바쁜 와중에도 그는 결코 저술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드디어 75세 때인 1815년 최술은 자신의 전집 34종 88권을 완성해 총목록을 정리했다. 그리고 모든 책들을 진이화에게 전해 줄 것을 부탁하고, 이듬해인 1816년 세상을 마쳤다. 최술의 사후에 그의 저서는 부탁한 대로 제자인 진이화에 의해 판각되어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최술의 저술은 그의 사후 100년 가까이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일본의 나카 미치요(那珂通世)가 1902년 《사학잡지(史學雜誌)》에 〈고신록 해제(考信錄解題)〉를 발표하면서 이 책의 학술적 가치가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1932년 중국의 《사학연보(史學年報)》에 이 글이 번역, 소개되면서 중국 학계에서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최술의 《고신록》은 당시에 유행하던 이른바 ‘신사학(新史學)’의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저술로 량치차오(梁啓超)·후스(胡適)·첸쉬안퉁(錢玄同)·구제강(顧?剛) 등의 극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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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원 (옮긴이)    정보 더보기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담정총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이후로 현재까지 경성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조선 후기 문인인 담정 김려와 주변 작가들을 연구하고 있으며, 2003년 이후에는 최술의 고증학에 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최술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는 〈최술의 수사고신록 연구〉(2004년, 중국학), 〈최술의 수사고신록과 수사고신여록에 나타난 주자학의 수용 양상〉(2006년, 한문교육연구), 〈다산의 경학 저술에 수용된 최술의 고증학〉(2007년, 한문교육연구), 〈수사고신록의 사기 비판〉(2009년, 한문교육연구) 등이 있다. 주요 역서로는 《우해이어보》(2004년, 도서출판 다운샘), 《국역 수파집》(공역, 2007년, 신지서원), 《수사고신록》(공역, 2009년, 한길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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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여러 나라의 임금들이 오직 전쟁에 힘써서 토지를 넓히고 세금을 거두어 창고를 채웠다. 신하들도 오직 임금과 영합해 부귀를 얻었고, 민간인들도 오직 강한 사람을 섬기고 약한 사람을 능멸했으며, 여러 사람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포악하게 해서 자신에게 이익이 있게 했다. 이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모두 이익을 좋아하는 마음이 사람들을 이런 데까지 몰고 간 것이다. 이 때문에 전국시대에는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풍속이 퇴폐했으며, 전쟁에서 죽는 사람이 걸핏하면 몇 십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맹자의 “의(義)를 먼저 하고 이(利)를 나중에 한다”는 이 말은 정말로 이 시대를 구원하는 상책이었고, 천고에 빛나는 귀감이었다.


제 선왕은 재화(財貨)를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했지만, 맹자는 그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다만 “백성과 함께하면” 바로 왕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제 선왕이 세속의 음악을 좋아했지만, 맹자는 “지금의 음악은 옛날의 음악과 같다”라고 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전국시대에는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었고 맹자는 그 고통을 목격했기 때문에, 급히 그들을 수화(水火) 속에서 구하려고 했다. 이때에는 큰 나라의 군주 중에서 제 선왕만이 그래도 선정(善政)을 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 선왕이 좋아하는 것들은 하루아침에 당장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런 말을 해서 혹시라도 인정(仁政)을 펼칠 수 있기를 바랐던 것뿐이다. 이것은 맹자가 세상을 구제하려는 고충에서 나온 것이지, 정론(正論)은 아니다. ≪맹자≫를 읽는 사람들은 마땅히 이런 뜻을 헤아려야지, 문구에 집착해서 본뜻을 해쳐서는 안 되고, 이것으로 맹자를 경박하게 논박해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지금 이것을 모두 수록하지 않고 설명을 여기에 함께 기록해 둔다.


공자와 맹자의 관계는, 문왕·무왕과 주공의 관계와 같다. 문왕과 무왕이 비록 성인이지만, 주공이 계승하지 않았다면 태평성대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공자가 비록 성인이지만 맹자가 이어받지 않았다면 성스러운 도의 상세함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왕과 무왕이 있으려면 주공이 없을 수 없고, 공자가 있으려면 맹자가 없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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