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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유교철학/주역 > 맹자
· ISBN : 9788964066607
· 쪽수 : 241쪽
책 소개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맹자사실록 자서
맹자사실록 권(상)
추나라에 태어나다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했다는 설에 대한 변증
맹자의 어머니가 베를 자르고 돼지를 샀다는 설에 대한 변증
맹자의 어머니가 며느리 내쫓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변증
맹자는 자사에게서 수업을 받은 일이 없다
양나라에 가다
송나라 사람들이 맹자가 제후를 만났던 것을 의심했던 오류
맹자의 시대를 구원하려는 뜻
이란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맹자가 양나라에 이른 것은 양 혜왕이 뒤에 사용한 연호의 말년이다
≪죽서기년≫의 ‘금왕’은 바로 양왕이다
맹자가 양나라에 있을 때는 아직 벼슬을 하지 않았다
제나라를 돌아다니다(상)
맹자가 제나라에 간 것은 양나라에 간 이후였다
맹자가 주나라 왕실을 높이지 않은 이유
맹자의 왕도 정치
맹자가 세상을 구제하려던 고충
사람을 쓰는 데 대한 맹자의 생각과 제나라 대부
필 땅의 전쟁에서 맹자의 사람을 쓰는 생각을 논증함
제 선왕은 맹자에게 기꺼이 감복했다
객경과 관직에 있는 자의 차이(1)
‘평륙’ 장은 제나라 군신의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객경과 관직에 있는 자의 차이(2)
왕환은 맹자를 존경했다
제나라를 돌아다니다(하)
≪전국책≫에 기록된, 제나라가 연나라를 정벌한 일은 맹자의 진의를 잃어버리고 있다
연나라를 정벌한 것은 제 선왕이 한 일이다
맹자가 제나라를 떠난 이유
맹자의 속마음
맹자는 제나라의 채읍을 받지 않았다
제 선왕이 남보다 나은 세 가지
맹자사실록 권(하)
송나라에서 추나라로 돌아와서, 다시 등나라에 갔다가 노나라로 가다
추나라의 유사는 그래도 어질다
등 문공의 질문은 즉위한 뒤에 있었다
먼저 보살핀 다음에 가르쳐라
백성들에게 취함에 제한이 있다
향수에서 백성에게 취하는 제도
도비에서 백성에게 취하는 제도
향수에서는 철법을 썼고, 도비에서는 조법을 썼다
가르치는 것은 인륜이다
전체 장의 요점
정지가 바로 조법이다
군자와 야인
향수의 정책
도비의 정책
결론
<양 혜왕> 편은 시간의 선후로 순서를 정했다
‘노 평공’ 장은 모든 편의 내용을 총결한다
잡기
맹자가 유세하고 다녔던 순서
맹자는 양주와 묵적의 설을 변론한 것이 많다
맹자의 공로
부록
선을 좋아하는 것과 정치를 하는 것
악정자가 왕환을 따라간 것
요·순·우가 왕위를 주고받은 것
부모를 원망하는 것과 상기를 단축하는 것
≪맹자≫는 문인들이 추술해서 만들어졌다.
맹자 문인들의 공로
맹자 제자들에 대해 부기하다
≪맹자≫ 7편의 원류에 대한 고찰을 부기하다
한유가 칭술한 맹자의 삼칙을 부기하다
맹자가 성선을 논한 뜻을 부기하다
본성을 논한 여섯 가지 설
사람의 본성은 이의와 기질을 겸해서 이루어져 있다
월초와 식아의 성악설은 견강부회한 것이다
한유와 정자의 본성론을 논평하다
양설식아의 일을 변증해 부기하다
≪맹자≫를 읽고 남은 이야기 한 조목을 부기하다
≪중용≫이 ≪맹자≫를 답습한 증거
옮긴이에 대해
책속에서
여러 나라의 임금들이 오직 전쟁에 힘써서 토지를 넓히고 세금을 거두어 창고를 채웠다. 신하들도 오직 임금과 영합해 부귀를 얻었고, 민간인들도 오직 강한 사람을 섬기고 약한 사람을 능멸했으며, 여러 사람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포악하게 해서 자신에게 이익이 있게 했다. 이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모두 이익을 좋아하는 마음이 사람들을 이런 데까지 몰고 간 것이다. 이 때문에 전국시대에는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풍속이 퇴폐했으며, 전쟁에서 죽는 사람이 걸핏하면 몇 십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맹자의 “의(義)를 먼저 하고 이(利)를 나중에 한다”는 이 말은 정말로 이 시대를 구원하는 상책이었고, 천고에 빛나는 귀감이었다.
제 선왕은 재화(財貨)를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했지만, 맹자는 그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다만 “백성과 함께하면” 바로 왕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제 선왕이 세속의 음악을 좋아했지만, 맹자는 “지금의 음악은 옛날의 음악과 같다”라고 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전국시대에는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었고 맹자는 그 고통을 목격했기 때문에, 급히 그들을 수화(水火) 속에서 구하려고 했다. 이때에는 큰 나라의 군주 중에서 제 선왕만이 그래도 선정(善政)을 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 선왕이 좋아하는 것들은 하루아침에 당장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런 말을 해서 혹시라도 인정(仁政)을 펼칠 수 있기를 바랐던 것뿐이다. 이것은 맹자가 세상을 구제하려는 고충에서 나온 것이지, 정론(正論)은 아니다. ≪맹자≫를 읽는 사람들은 마땅히 이런 뜻을 헤아려야지, 문구에 집착해서 본뜻을 해쳐서는 안 되고, 이것으로 맹자를 경박하게 논박해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지금 이것을 모두 수록하지 않고 설명을 여기에 함께 기록해 둔다.
공자와 맹자의 관계는, 문왕·무왕과 주공의 관계와 같다. 문왕과 무왕이 비록 성인이지만, 주공이 계승하지 않았다면 태평성대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공자가 비록 성인이지만 맹자가 이어받지 않았다면 성스러운 도의 상세함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왕과 무왕이 있으려면 주공이 없을 수 없고, 공자가 있으려면 맹자가 없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