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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64231425
· 쪽수 : 176쪽
책 소개
목차
“100킬로 걸어 보지 않을래?”
은혜의 비
망가진 장난감 립스틱
“축하합니다, 50킬로미터입니다!”
기권 버스의 유혹
“물집이 터졌을 뿐이야!”
82킬로미터를 넘으면 포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
무나카타 할아버지와의 짜릿한 재회
결승점에서 만난, 휠체어 탄 엄마
외삼촌이 대회 직전 사라진 이유
저자 후기_ 100킬로미터 걷기가 내게 선사해 준 소중한 깨달음
역자 후기_ 나를 깨워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해, 걸으세요!
리뷰
책속에서
“미치루, 이것 봐.”
“미카와 만 100킬로미터 자선 걷기 대회?”
외삼촌이 보여 준 전단지에는 ‘감동’, ‘감격’, ‘감사’ 등의 단어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뭐야, 이거! 삼촌, 요상한 종교에 빠지기라도 한 거야?”
“이 녀석, 무례하기는! 나 지금, 평소답지 않게 아주 진지하단 말이야!”
‘자신이 진지한 인물이 아니란 것은 자각하고 있는 모양이군.’ 속으로 그렇게 비웃으면서 나는 전단지를 보았다.
외삼촌이 말한 대로, 미카와 만 100킬로미터 자선 걷기 대회란 모든 참가자들이 미카와 만을 따라 수십 시간 동안 꾸준히 걸어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회이다. 제한 시간은 정확히 30시간. 이 안에 골인 지점에 들어오지 못하면 실격이다. 대회라는 이름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100킬로미터를 완주하는 데 순위를 매겨 누가 가장 빨리 들어오고 꼴찌로 들어오는지를 판가름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100킬로미터를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일 뿐.
<100킬로미터라는 거리를 걷는 동안 주위 경치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과 마주하는 감동, 감격, 감사의 기분을 대회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끽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대회 공지사항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저 걷기만 하는데 감동이고 감격이고 감사가 어디 있담!’ 에어컨으로 인한 방의 냉기를 느끼면서 나는 전단지를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1킬로미터가 얼마나 되는지도 감이 잘 안 오는데, 100킬로미터라니……. 어휴, 상상도 안 된다. 도중에 잠은 자나? 100킬로미터를 30시간 안에 걷는다는 게 도대체 가능한 일이기는 한 거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100킬로미터 걷기는 정말 무리야! 집에서 역까지 5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거리도 땡볕 아래서는 딱 주저앉고 싶은데…….
“좋지? 신청하자. 나도 너랑 같이 걸을 거야!”
“좋긴 뭐가 좋아.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 이 몸은 힘들겠습니다!”
“힘들 거 없어. 걷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포기하면 돼. 그럼, 그 순간 바로 시합 종료니까!”
“삼촌! 이건 무슨 시합도 아니고……, 그리고 나는 처음부터 기권이라고 기권!”
엄마는 회사 일로 외출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고 했다. 사고 당시 충격이 커서 중상을 입었는데, 응급 수술을 받아 천만다행으로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유증으로 엄마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담당 의사의 말로는, 재활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심한 운동까지야 몰라도 걷는 것 정도는 가능할 정도로 회복될 수 있다는데, 웬일인지 엄마는 모든 치료를 거부했다.
치료만이 아니었다. 예전의 엄마라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모든 일에 극도로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엄마의 이상한 행동과 납득할 수 없는 변화 때문에 이런저런 검사를 받게 했지만 왜 그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의 어두운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등줄기가 오싹해짐을 느끼곤 했다. 사고가 나기 전의 엄마는 절대로 그런 표정을 짓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 앞에서 약한 모습이라고는 단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고, 나나 사토시에게 무슨 일이든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도전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말로 그치지 않았다. 실제로 엄마는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정말 열심이었고, 그런 엄마의 모습이 내겐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고 대단해 보였다. 때론 너무 눈이 부셔서 왠지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엄마는 항상 일이 바빠서 자식들의 학교 행사에는 제대로 한번 참석해 본 적 없고,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퇴근한 적도 거의 없어서 저녁밥은 으레 사토시와 둘이서 해결했지만 우리는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가 늘 우리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해 가며 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도저히 엄마처럼 될 수 없었던 내게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인정머리 없는 잔소리로 들릴 때도 많았다.
그런데 사고를 당한 후의 엄마는 그때의 냉정했던 엄마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싫었다. 제대로 한번 시도해 보지도 않고 다 소용없다며 치료를 포기해 버리다니……. 또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며 자포자기한 듯한 눈빛으로 병실에만 누워 있다니……. 그건 내가 아는 엄마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하루라도 빨리 예전의 엄마로 돌아왔으면……. 늘 자신만만한 얼굴로, 사토시와 나에게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 도전하라고 예전처럼 채찍질해 주었으면 좋겠다!
무나카타 할아버지는 이번이 네 번째 출전인데, 지금까지 한 번도 완보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작년에는 거의 끝까지 갔는데 아쉽게도 제한 시간을 넘겨 버렸지 뭐야. 그래도 결승점까지 가긴 갔어. 매년 이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두 번 다시 걷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이 시기가 되면 다시 걷고 싶어지곤 하지. 그러다 보니 올해로 벌써 네 번째가 된 거야.”
“할아버지는 왜 걸으세요?”
내가 물었다.
“글쎄, 왜일까……? 건강을 위해서?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이런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난 1년간 잘 살아왔다는 증거가 되지. 그래서 이 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되고 행복을 느끼게 되는 거란다!”
“아……!”
‘완보하지 못해도요?’라고 묻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나의 생각을 읽은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완보하는 게 목적이 아니야. 걷는다는 것 그 자체, 건강한 몸으로 걸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지. 물론 할 수만 있다면 완보를 해 보고 싶긴 해!”
“네…….”
그러고 보니 대회 안내장에도 그런 말이 씌어 있었다. 완보가 목적이 아니라 걸으면서 감사의 기분을 느끼길 바란다고.
대회에 참가하기 전 그 문장을 읽었을 땐 무슨 말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6시간 넘게 걷고 있는 지금도 확실하게 모르긴 마찬가지이지만…….
“미치루는 왜 참가했니?”
“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