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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64950807
· 쪽수 : 303쪽
· 출판일 : 2015-04-08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그날의 숲
숲
봉금
승순
무희
성조
봉금
어머니의 딸
무희
승순
호란
무희
호란
승순과 정혜
승순, 호란
흐르는 숲
성숙
빛과 어둠의 뫼비우스
폭풍
에필로그
작가의 말
책 속으로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날의 숲
아무도 없다.
나무들만 무성하다.
숲에서 유난히 우뚝 솟은 무주나무 세 그루.
거대한 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짙은 그늘을 만들었다.
겨우 세 그루다.
세 그루만으로도 충분히 숲이다.
그래서 숲 속에서 또 다른 숲을 이루어 놓았다.
고개가 아플 정도로 젖혀야 끝이 보이는 키.
햇살을 가려버린 빽빽한 잎.
무얼 먹고 저렇게 자랐을까.
얼마나 살아 있었던 것일까.
사람도 땅에 뿌리를 내리면 저렇게 자랄 수 있을까.
아니 저처럼 오래 살아낼 수 있을까.
나무를 바라보고 서 있는 한 남자.
나무도 바람에 몸을 맡겨 내는 소리로 그를 맞이한다. 하지만 알아들은 것 같진 않다.
꽤 오래 나무를 우러르던 남자의 고개가 조금 숙여진다.
앉고 싶다.
남자는 앉을 자리를 찾는다.
그런데.
사람이 있다.
나무 아래 사람이 있다.
아무도 없었는데?
남자의 눈이 사람을 발견하는 순간 바람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바람 소리와 함께 눈에 들어온 노파.
벤치가 있었던가?
짙은 그늘 속 벤치에 앉아 있는 노파.
모시적삼과 치마.
남자는 한눈에 노파가 입은 옷이 모시옷임을 알아본다.
남자의 할머니가 여름이면 입던 옷이다.
할머니와 함께 살던 때가 번개처럼 스쳤다 사라진다. 아니다. 번개처럼 떠오른 건 맞지만 번개처럼 사라진 건 아니다. 남자가 눈을 감아버린 것뿐이다. 할머니가 떠오른 순간 사라지길 바라며 눈을 감았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할머닌 어둠 속의 빛처럼 더 선명해졌다.
떠오른 기억을 없애는 데 실패한 남자는 감았던 눈을 다시 뜬다.
무언가를 체념하는 심정으로.
사람이 있다.
그런데 왜 아까는 보지 못했을까.
그늘이 너무 짙었던 탓일까.
하지만 저 흰 모시적삼을 못 볼 수가 있을까.
노파의 한복은 그늘 아래에서 더욱 희다.
한복 속에 감추어진 작은 체구. 분명 살이라고는 없으리라.
허리에 걸려있는 듯한 골반,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갈비뼈, 젖가슴이 가리지 못한 가슴뼈, 말라버린 오죽나무나 다름없는 팔다리.
남자는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입혀주며 보았던 할머니의 앙상한 몸을 떠올린다.
할머니!
정말 좋은 데 가셨을까. 좋은 데가 있는 걸까. 있다면 어떤 곳일까.
어떤 곳일까.
궁금해진다.
가고 싶다. 그곳에.
그리고,
그곳은 지금 막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다.
남자의 상상과 소망이 방금 그 세계를 만들었다.
남자의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