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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정치인
· ISBN : 9788965234708
· 쪽수 : 192쪽
· 출판일 : 2025-10-10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추천의 글_ 정규재
추천의 글_ 배진영
추천의 글_ 손병두
1장 보수와 진보 - 두 진영의 기원
최초의 정당 - 야당 한민당
배신감으로 시작된 ‘反독재 민주화 투쟁’의 길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거수기 정당 - 자유당
자유당과 부정선거
가장 늦게 알게 된 대통령
“한 오십 년은 유능한 인물들이 나와서 이끌어야”
2장 하와이 요양이 망명으로 바뀐 까닭
하와이로 가게 된 계기
오보가 세계적 특종이 되면…
3장 고도(孤島) 하와이
‘쥐도 새도 모르게 망명’
“한 3주일 쉬고 갈거야”
반려견에게 위로받아야 했던 건국 대통령
해피 반출 작전
귀국은 늦어지기만 하고…
4장 조립식 식탁 위의 예배당
하와이의 자유 교회
유교적 사고에서 해방되고 세운 교회
조립식 식탁은 두 분의 예배당
5장 25살 연하 푸른 눈의 화니,李박사에게 절제된 ‘사랑’을 배웠다
영원한 동반자 레이디 프란체스카
두 영혼의 불꽃이 타오르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성사될 수 없을 인연(因緣)
서양 부인을 데리고 오면 모든 동포들이 돌아설 테니 꼭 혼자만 오시라.
6장 우리가 몰랐던 老 부부의 애환
양자의 조건
“그놈도 날 좋아하겠지?”
“언제 내가 우리 땅으로 가게 돼?”
떡국을 좋아한 이 박사
“어서 가야겠다!”
공보 영화
40년 친구 보스윅
“나는 본시 가난한 사람이야”
프란체스카 여사의 눈물
또다시 좌절된 서울행
7장 슬픈 황혼
마우나라니 요양원 202호
국부와 국모의 자격을 갖춘 분
어머니…어머니…
한국 돌아갈 여비 걱정한 건국 대통령
유언과 마지막 기도문
7월 19일 0시 35분
보스 윅의 절규 - “내가 자네를 안다네…내가 자네를 알아…”
맺는 글
저자소개
책속에서
대통령을 태운 검은 세단이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김포공항으로 달려갈 때 <경향신문> 기자를 태운 지프만이 뒤를 따라갔다. 공항에는 허정 수반과 이수영(李壽榮) 외무차관이 나와 이승만을 배웅했다. 이승만은 허정에게 "나, 하와이에서 잠시 쉬고 아이크가 오기 전에 돌아오겠소"라고 말했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두고 한 말이었다. 허정은 "염려 말고 푹 쉬고 오십시오"라며 작별 인사를 했다. 당시 비행기는 하와이의 교민들이 비용을 모아서 자유중국 민항기를 전세 낸 것으로, 대통령이 도착했을 때 승무원들은 공항식당에서 식사 중이었다. 출발이 지연되는 사이, 윤양중 기자와 사진기자는 비행기에 올라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윤양중 기자 -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프란체스카 여사 - “불명예스럽게 하야하고 나와서 여기에 있습니다.”
윤양중 기자 - “또 하실 말씀 없습니까?”
프 여사 - “나는 한국을 사랑합니다. 아이 러브 코리아...”
이승만 - “조용히 가게 내버려두게. 그대로 떠나고 싶네.”
이날 오후 <경향신문>은 호외를 뿌렸다.
- ‘오보가 세계적 특정이 되면’
양아들 손을 잡아끌듯 거실의 소파로 가 앉은 이승만이 처음 물어본 질문은 “지금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어 가지?”였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잘 되어 갈 겁니다. 염려 마십시오.”
이인수 씨가 조심스레 답했다.
“그런가? 나라가 잘 되어 간다면 그것은 참 좋은 일이다.…그런데…너는 남이 잘된다, 잘된다 하는 소리 아예 믿지 말거라.…내가…내가…이렇게 절단이 난 걸…그렇게 우리나라 일이 쉬운 게 아니야….”
회한의 고백이자 충고의 한마디 - “그렇게 우리나라 일이 쉬운 게 아니야”라는 건국 대통령의 이 한마디는 그의 뒤를 이었던 12명의 대통령들도, 그리고 그 뒤를 이어갈 대통령들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명언일 것이다.
- ‘언제 내가 우리 땅으로 가게 돼?’
하야 후 하와이에 도착했던 그해 연말부터 이 박사는 이유 없이 귀국이 늦어지자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보행에 불편을 느껴 부축을 받기 시작했고, 여러 가지 노인성 질환으로 자주 트리풀러 육군병원(Tripler Army Medical Center?TAMC)을 다녀야 했다. 길어야 한 달일 것으로 믿고 간단한 옷가지만을 챙겨왔던 이 박사 부부로서는 별장에서의 체류 기간이 하염없이 길어지며 6개월로 접어들자 한계를 절감하기 시작했다. 측근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바닷가 별장과 시내의 거리가 문제였다. 차로 달려서 병풍처럼 높은 산을 넘어 40분 이상이나 달려야 시내로 갈 수 있었다.
- ‘또다시 좌절된 서울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