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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65743057
· 쪽수 : 340쪽
· 출판일 : 2011-03-1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장 경복궁 공주의 꿈
5월의 정원|비둘기 슬피 우는 시간|아버지의 약속|이두공주
2장 낮은 곳에 피는 꽃들
운명의 남자|드리우는 그림자|시집살이|가슴에 담아둔 사랑
3장 삶의 굴절
흔들리는 사람들|떠도는 마음|아픔마저 끌어안은 자|왕의 밀행
4장 민초의 이슬로 내리다
새로운 길|거리를 헤매다|왕의 사위라는 짐|외진 곳을 벗어나
5장 오랜 기다림의 끝
세상을 바꾸는 일|떠난 자와 돌아온 자|마음의 평정|어머니의 마음
6장 사랑스러운 나의 딸아
마침내 흐르는 눈물|소용돌이 속에서|여자라는 것
에필로그
작가의 말
참고문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어느 날, 세종은 붓을 들어 ‘魔陰’이라 썼다. 아이들은 그 글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얘들아, 이 글자를 한번 읽어보렴.”
모두들 말이 없었다. 아바마마께서 붓을 드실 때면 언제나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요즘 한참 한문과 이두에 심취하기 시작한 정의공주만이 어린 마음에 가만가만 그 글을 읽어보았다.
“마음…… 아바마마, 마음이란 글자가 아닙니까?”
“그래, 이두로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단다.”
마음이란 ‘악마의 음침한 기운’이라는 뜻이었다. 글자를 보자 어린 정의는 낯빛까지 어두워졌다.
“아바마마, 마음은 원래 따뜻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 그리 축축하고 요망한 것으로 표현했을까요?”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어두워진 정의의 얼굴을 매만져주었다.
“그래, 아비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단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이 글자가 가슴에 와 닿는구나. 세상에 마음만큼 괴상망측한 것이 어디 있을까. 아침에 굳게 먹은 생각이 반나절도 못 가 변해 버리지 않더냐. 글자로나마 마음이라는 것을 경계해 온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구나.”
이때, 정소는 장녀답게 머리를 끄덕이며 아버지의 이야기에 조용히 화답했다.
“아바마마, ‘생각’이란 말도 순우리말인 줄로 아옵니다. 그런데 이두로는 ‘生覺’이라 표기하지 않사옵니까? 이두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저는 그 말의 뜻을 헤아려보았습니다. 낳을 ‘생’에 깨달을 ‘각’을 붙여보면 인간은 낳는 순간부터 깨달음을 얻는 존재라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종은 큰딸이 글자를 풀어낸 것이 만족스러워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낳는 순간부터 깨달을 수 있는 존재야말로 천지에 인간밖에는 없을 것이야.”
― 1장 「5월의 정원」중에서
무슨 일이든 닦달하거나 채근하지 않는 세종이건만, 이들의 의견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략) 자신의 의견을 직설적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정창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전하, 얼마 전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반포했는데도 충신과 효자가 나오지 않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글자를 만든다 하시니 저희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충신과 효자는 사람의 자질이 문제이지, 글자를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옵니다. 글자를 알아 책만 읽으면 막돼먹은 자가 저절로 충신이 되고 효자가 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생각되옵니다.”
세종은 눈을 크게 떴다. 정창손이 이렇게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닦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도리라 생각하던 임금이었다. 그리하여 언제나 몸소 실천해 보여왔거늘, 임금의 뜻을 왜곡해도 이렇게 왜곡할 수 없었다. 그때, 항상 모든 일에 부정적이기만 하던 정창손의 생각을 못마땅해하는 이가 있었다. 정인지였다. 비록 임금 앞이었지만 그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정창손에게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막돼먹은 자에게도 책은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책을 읽자마자 사람이 달라진다는 뜻은 아니옵니다. 그러나 가슴속에 하나둘 인간다움이 새겨질 것이니 백성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은 전하의 뜻만은 높이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정창손 대감의 생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창손의 입가에 조소가 흐르기 시작했다. (중략)
그러자 최만리가 다시금 아뢰었다.
“전하의 말씀은 모두 옳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국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할 듯합니다. 우리 문자를 만든다면 오랫동안 저들의 문화와 사상을 숭배해 온 이 나라에 혹 불이익이 따르지 않을까 염려하는 바가 더 크다 할 것입니다. 사실 그것이 저희의 고민이었습니다.”
그랬다. 논쟁의 골자는 중국이었다. 세종의 가슴이 얼어붙었다. 중국에 대한 모화(慕華)와 사대(事大)를 이처럼 중요하게 생각할 줄은 몰랐다. 그 점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책을 읽지 않는다는 핑계로 백성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 3장「흔들리는 사람들」중에서
“중국에도 경포가 있지만, 한자로 씌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강원도 경포로 추측했답니다. 그렇다면 그것 역시 가림토 종류의 글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세자는 정의를 높이 칭찬했다.
“참으로 공주의 열정이 놀랍구나. 그렇다. 가륵단군 한 사람의 뜻을 점점이 이어온 이들은 바로 백성들이야.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우리 역사를 모두 끌어안고 살아온 사람들이야.”
수양은 그간 자신이 얼마나 헛된 일에 시간을 보냈는지 후회했다.
“저는 백성들의 입과 입을 통해 떠도는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백성들을 위해 문자를 만든다고 떠들었지만 정작 그들 곁으로는 다가가지 않았지요. 제가 철원 땅으로 떠나겠습니다. 무술로 다져진 몸이옵니다.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문이 열리고 있었다. 문이란 늘 언젠가 한 번은 통과한 적이 있는 쪽으로 나는 것이었다. 이제 모두들 그 문 앞으로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있었다.
―4장 '외진 곳을 벗어나'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