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두 섬

두 섬

(저항의 양극, 한국과 오키나와)

이명원 (지은이)
  |  
삶창(삶이보이는창)
2017-08-25
  |  
23,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20,700원 -10% 0원 1,150원 19,55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인터파크 로딩중
11st 로딩중
G마켓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두 섬

책 정보

· 제목 : 두 섬 (저항의 양극, 한국과 오키나와)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아시아사 > 동아시아/극동아시아사
· ISBN : 9788966550869
· 쪽수 : 376쪽

책 소개

문학비평가 이명원의 <두 섬>. 한국 사람들에게 오키나와는 프로야구 선수단의 전지훈련지나, 산호초 바다가 아름다운 여행지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한국과 더불어 오키나와는 일본제국주의가 팽창하기 위한 하나의 '극'이었다고 말한다.

목차

머리말 —4

제1부 한국에서 본 오키나와
오키나와의 조선인 —17
해방 70년에 돌아보는 제주와 오키나와 —37
류큐왕국 시대 오키나와의 지배와 종속 관계 —50
이하 후유(伊波普猷)의 일본 인식 —71
오키나와의 신화와 민간신앙의 이중구조 —81
오키나와 전후문학과 제주 4·3문학의 연대 —107

제2부 기억투쟁과 동아시아 평화
일본 내셔널리즘의 기원 —133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과 한일 학계 —160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지식인의 지적 쇠퇴 —168
연대의 아포리아 : ‘일본 문제’와 식민주의 —193
오키나와와 동아시아 평화 체제 —212
안보 이데올로기와 동아시아 희생의 시스템 —232

제3부 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
마주 보는 거울처럼 한반도와 닮았네 —251
일본과 미국은 왜 기지에 집착하는가 —256
차별받는 오키나와인의 두 얼굴 —261
‘구로시오해류’ 타고 온 한반도계 문화 —266
고중세에 존재했던 공존의 생활사 —271
차별받지 않으려 오키나와어를 버린다? —276
중·일 간 우호 기대하는 평화의 섬 —281
태평양전쟁 때 침몰한 ‘쓰시마마루의 비극’ —286
오바마의 센카쿠제도 관련 발언 본심은 —291
오키나와 민족의 교사 ‘이하 후유’ —296
‘일본이 오키나와에 속한다’ —301
오키나와 미군기지와 ‘희생의 시스템’ —306
군사적 긴장 높아가는 요나구니지마 —311
오키나와어는 방언이 아니라 민족어다 —316
‘하토야마의 구상’에 대한 희망 —321
잊혀져가는 오키나와의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326
‘고통의 섬’ 오키나와인의 낙천적 천성 —331
군사기지 건설 반대 ‘섬 전체 투쟁’ 불붙나 —336
오키나와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341
자이니치와 우치난츄의 눈물 —346
우리가 몰랐던 오키나와 문학의 보편성 —351
지사 선거 향방 좌우할 ‘올 오키나와’ —356
‘주체화’로 결집한 신기지 건설 반대 —361
하와이서 뿌리내린 ‘오키나와 아이덴티티’ —366
동아시아 민주주의 미래 가늠할 척도 —371

책속에서

오키나와전쟁에서 조선 출신 사망자가 1만여 명에 이른다면 전쟁 후 미군기지에 수용된 조선인 전쟁포로가 4600여 명이었으니5, 아무리 적게 잡아도 당시 오키나와에 체류했던 조선인은 1만 5000~2만여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일본, 중국, 대만, 한반도에서 강제연행되어 입도한 일본군 ‘위안부’ 역시 포함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키나와전쟁 당시 전쟁 체험을 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는 어느 정도였을까? 오키나와전쟁의 막바지에 패전을 확신한 32군 사령부가 관련 서류 일체를 소각했으므로, 이것은 다만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서 밝혀야 할 것이다.
신주백의 연구에 따르면, 오키나와 본도에만 대략 130여 곳의 위안소가 있었고, 그중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있었다고 확인된 위안소는 41개였다. 그렇다면 오키나와 본도에는 대략 몇 명의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있었을까? 일본군이 관리하거나 경영한 군 위안소 1개 시설 당 대체적으로 7~10명의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있었음을 상기해보면,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는 최소 41×7=287명, 최대 41×10=410명 정도가 오키나와 본도에 강제연행되어 체류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일본군이 강제연행한 일본군 ‘위안부’ 중 조선인이 51%, 중국인이 36%, 일본인이 12%라고 추정하는 다른 통계에 근거하면8,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의 숫자는 다음과 같이 더욱 늘어난다.
―「오키나와의 조선인」


러일전쟁(1904~1905)에서 일본의 승리는 지배계급 내부에서 기획된 일본적 내셔널리즘을 민중에게도 확산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국민교육과 징병제의 실시에 따라 내셔널리즘을 내면화한 일본 민중은 러일전쟁기에 ‘제국 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 새로운 국가주의를 내면화하게 된다. 동시에 서구 열강에 대한 배외주의는 물론 아시아 주변국에 대한 멸시의 시각 역시 고조되는데, 일본의 승리는 서구 열강의 주권 위협으로부터 해방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명백한 지도적 지위에 이르게 되었음을 확인하게 되는 전환기의 사건으로 인식되었다.
―「일본 내셔널리즘의 기원」


사회주의랄지 공산주의랄지 규정이 애매한 일본의 좌익 급진주의는 1970년대를 기점으로 대중과 괴리되면서 완전히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오에나 와다, 우에노와 같은 지식인들은 이른바 ‘시민적 리버럴’의 상징성을 통해,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투쟁하고 있다. 하지만 기묘한 것은 이들이 대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촉구하고 전전의 천황제 파시즘을 비판하면서도, 일본군 ‘위안부’와 같이 일본의 제국주의 · 식민주의가 초래한 반인권적 국가 폭력에 대한 책임 문제 앞에서는, 국가의 ‘현실주의’를 주장하거나(와다) ‘탈식민주의’를 내세우면서(우에노), 결과적으로 일본의 배상 책임을 회피하는 데 사실상 동조하고 있다는 역설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지식인의 지적 쇠퇴」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