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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66551088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19-03-20
책 소개
목차
최고의 거짓말 - 7
오합지졸 특공대 - 31
성스러운 피 : 해커 - 69
나라에서 - 91
공격적 용서 - 109
처형 - 133
거대한 무덤 - 159
동백 - 183
덕수 씨 화났다 - 207
해설 | 거짓말의 매혹과 이야기의 미래 - 최진석(문학평론가) - 231
저자소개
책속에서
“저는 한쪽 다리를 잃었지만 나머지 한쪽 다리와 튼튼한 두 팔이 있습니다.”
오랜 침묵을 깨고 채소 행상 박 씨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우리라고 해서 못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맞아요, 맞아. 다들 신체의 일부만을 잃었을 뿐이에요. 모든 것을 잃은 건 아니죠.”
박 씨의 말에 백수 청년 송이 목이 부러질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섰다.
“맞소. 여긴 우리 말고 아무도 오지 않았소. 그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게요. 지금 이 순간 가장 멀쩡한 건 우리들이란 말이오.”
_「오합지졸 특공대」
나의 조부는 그렇게 나라를 팔아먹고 식민 제국에서 위세를 떨치던 자의 양아들로 자라났다. 식민 제국 관리의 양아들이 되었을 당시 그는 결코 어리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저간의 사정을 짐작으로나마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사실들을 모르는 체했다. 마치 부모를 여읠 때 모든 기억을 도륙당한 듯, 그는 자신의 친부모에 관한 한 바로 어제의 일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렇듯 철저히 식민 제국 관리의 양아들로 환골탈태한 그는 아무런 죄의식도 거리낌도 없이 제국의 앞잡이로 잘 살아갔다. 그는 성실했고 충성스러웠으며 잔인했다. 그러므로 그는 한 시대를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악어의 눈물, 그는 먹잇감을 삼킬 때만 눈물을 흘렸다. 먹이가 좀 더 부드럽게 그의 목구멍을 지나가도록, 그는 고문으로 피떡이 된 먹잇감 앞에서 거짓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짠맛 뒤에 느껴지는 단맛은 실로 다디달았다.
_「성스러운 피 : 해커」
“집으로 돌아가면 무얼 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요.”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내가 그리고자 했던 미륵의 얼굴이었다. 어쩌면 나 또한 갖고 있으나 스스로 잊어버린 얼굴인지도 몰랐다. 나는 홀로 감동하여 결심한 듯 뇌까렸다.
“무얼 하겠다는 생각은 없고,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나는 청년이 했던 것처럼 미소 지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사막의 한복판을 가리켰다. 청년이 돌아서서 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다시는 저곳에 가지 않을 겁니다.”
청년과 나는 마주보고 웃었다. 내가 가리킨 그곳에는 거대한 무덤이 펼쳐져 있었다. 하마터면 그곳에 영원히 묻힐 뻔했다.
_「거대한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