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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라사 삐에르의 세련된 옷차림

런던라사 삐에르의 세련된 옷차림

박혜지 (지은이)
고두미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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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라사 삐에르의 세련된 옷차림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런던라사 삐에르의 세련된 옷차림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1306637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24-09-25

책 소개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년 판근의 좌충우돌 성장기. 처절한 고민과 깊은 한숨, 용감한 모험과 쓰라린 좌절이 유머러스하게 펼쳐지는 이 소설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한 풍경과 닿아 있다.

목차

빨간 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날들이 흘렀다
런던라사 삐에르
판근은 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만나러 갑니다
도둑
전화위복
복순이 누나
소원을 들어줘
소문, 시작도 끝도 없는
복사꽃 사랑
어느 날 판근은 복순이 누나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판근, 삐에르에게 실망하다
그해 바캉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판근 디자이너가 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런던라사 삐에르의 세련된 옷차림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방학이 끝났다
할머니, 쟤 좀 이상해요
다시, 빨간 달
새로운 시작

저자소개

박혜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2013년 제5회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충북작가회의 회원. 소설집 『오합지졸 특공대』, 『사랑, 입니까』, 동화 『아홉 계곡의 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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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판근은 어깨에 멘 가방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낮잠 한번 잘못 잔 것이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다니, 판근은 기가 막혔다. ‘비록 세상이 망하진 않았을지라도 이 김판근의 세상은 무너졌다, 고로 모든 게 끝났다’고 판근은 생각했다. 하여 판근은 울다 지쳐 죽어버리기로 했다. 하늘이 낮잠 한번 잘못 잔 사소한 죄로 죽어버린 자신을 가엾게 여겨 종달새로 다시 태어나게 해준다면 정말 다행한 일이겠다고 생각하던 판근은 울다 지쳐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새가 종달새가 아니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러자 그 새가 어떤 새였는지가 무척 궁금해졌다. 그래서 판근은 울음을 그치고 그 새가 어떤 새였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떠오를 듯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았다. 판근은 너무 갑갑했다. ‘이럴 때 할머니가 있었다면 금방 알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던 판근은 다시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은 모두 자신이 낮잠 한번 잘못 잔 탓이며, 자신의 잘못으로 가족이 동네에서 쫓겨나게 됐으니 자신은 죽어 마땅하지만, 낮잠 한번 잘못 잔 탓으로 이토록 가혹한 운명을 맞은 것은 아무래도 너무한 것 같아서 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을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여러 개로 조각난 거울과 같아서 도무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알려 하면 할수록 아이의 입에서는 ‘아니오’라는 말이 속출할 것이며, 이해하려 하면 할수록 아이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미궁 속으로 더 깊게 침잠할 것이다. 그러므로 판근의 마음을 어른의 관점으로 재단하지 말기로 하자. 다만 한 가지 조심스러운 가설을 제시해볼 수는 있다. 그것은 바로 ‘삐에르에 대한 그리움’이요, 더 나아가서는 ‘환상과 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다.
판근은 런던라사에서 삐에르가 준 커피를 마시던 그 첫 순간에 영원히 그 맛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운명적인 생각을 했다. 달달하고 향긋하고 따뜻한 그 갈색의 액체는 판근을 순식간에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를 입고도 전혀 창피해하지 않는 서양의 왕자로 만들어주었다. <왕자와 거지> 이야기에 나오는 거지도 아마 이 마법의 음료를 마시고 거지에서 왕자로 탈바꿈하게 되었을 것이었다.


한번 부서진 복순이 누나의 복숭아뼈는 다시는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이 일로 인해 복순이 누나는 웃음을 잃고 절뚝이는 여자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복순이 누나는 조선 최고의 미녀였다. 그러나 어쩐지 슬픈 미녀였다. 복순이 누나의 아버지는 복순이 누나가 절뚝이며 걸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이렇게 중얼거리며 속으로 쓰디쓴 눈물을 삼켰다.
“미련한 년, 잘 좀 피할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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