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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66551262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20-09-29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 4
1부 안녕, 개떡선생
노래 불러주는 선생님 • 14
자유학기제, 객기를 부려볼까나 • 20
아픔을 들으려는 마음 • 31
배드민턴 •36
부부 싸움도 수업 교재가 된다 •46
영화 〈생일〉을 만나는 시간들 • 51
2부 내 슬픈 교단의 33페이지
내 슬픈 교단의 33페이지 • 66
저기 멀리 떠나가는 시간들 • 72
여행자처럼 떠나야 할 시간 • 81
가르칠 수 있는 용기보다 중요한 것 • 90
장소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 98
학교 화장실은 여전히 엽기적이다 • 107
나는 지금이 좋아 • 118
『미운 오리 새끼』의 재해석 • 132
3부 개떡선생의 자화상
할머니의 항아리 • 140
할머니와 권정생의 『한티재 하늘』 • 153
박옥순은 박명순이 되었다 • 157
언제부터 이야기를 좋아했을까 • 162
엄마의 걱정 보따리는 유통기한이 지났다 • 169
아이스께끼 • 177
글을 낳는 집 • 186
〈토이 스토리 4〉로 만나는 아들과 딸 • 191
금강에 흐르는 80년대의 최연진 • 198
4부 거울과 유리창처럼
여름방학은 힘이 세다 • 208
채플린과 권정생 • 216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 227
나도 돈을 훔친 적이 있다 • 232
되로 배워서 말로 풀어먹는 사람 • 242
개떡선생 • 250
어떤 숲에서 다시 만나랴 • 257
피로사회, 피로학교 • 263
명예퇴직을 했다 • 269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수요일 6, 7교시 동아리 시간만으로는 부족해서 우리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흙과 친해져야 했다.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면서 상추, 쑥갓, 쪽파, 브로콜리, 무, 배추 모종을 심었다.
작업복 차림에 거름과 흙과 호미를 교재 삼아 한 학기 내내 배춧잎의 넉넉한 품새에 파묻혀 ‘농부가 되고 싶은 이야기 사랑방’ 아이들과 정신없이 지냈다. 아이들에게 이끌려서 가르침보다 배움이 더욱 푸짐했던 계절이었다.
늦게 심은 배추가 더 자랄까 싶어서 첫눈이 살짝 내렸어도 고집을 부려 수확을 미루었다. 배추가 얼지 않게 신문지, 마대를 덮어주며 유난을 떨었다. 날마다 새록새록 자라는 배추와 브로콜리, 쪽파들이 아깝기도 했고, 몽땅 뽑기가 서운하기도 해서 더욱 시간을 끌었던 것이다. 나름 텃밭 농사로 잔뼈가 굵은 남편과 상의해서 내린 비장의 결단이었는데….
―「자유학기제, 객기를 부려볼까나」 중에서
11월 초 새벽, 희망이는 떠났다. 매어 있는 모습이 불쌍하다는 의견이 많아서 야간에 사슬을 풀어주었는데 우유급식 트럭에 치인 것이다. 희망이가 핏빛을 낭자하게 흩뿌리고 사라진 자리엔 빈 화분이 놓였다. 빈 화분이 희망이의 무덤처럼 여겨진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처참하게 생명을 마친 희망이를 애도하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튀어 나왔다. 저마다 이별의 의식이 필요했던 것 같다. 운동장 구석구석에 희망이 무덤이라고 십자가를 세우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의 모습은 진지했다, 국어 수업 시간에 글쓰기, 시의 소재가 되어 잊고 있던 기억을 살려내기도 했다. 미술작품에 등장한 희망이는 삶과 죽음의 무거움으로 돌아왔다.
―「저기 멀리 떠나가는 시간들」 중에서
도서관 옆에 복숭아 과수원이 있었던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그 복숭아나무 한두 그루에 피어 있는 꽃들이 송알송알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보아왔던 복숭아꽃이었는데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다가 다시 찾은 풍경이었다. 종촌 복숭아 과수원집에서 성장했다가 그곳이 행정수도로 편입되면서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복숭아꽃이 정겨웠다. 봄밤의 정겨움에 취하여 나만의 성(城)을 소유한 듯 설레었다. 봄꽃들의 노래는 명랑했다. 초승달이 제법 조명을 만들었고 봄꽃들은 별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K도서관의 작은 뜰, 복숭아꽃 주변에 낮에는 느끼지 못했던 신비한 영령들이 달라붙었다. 봄밤이 아름다운 이유가 짧아서이고 또 봄에 피는 꽃들이 별처럼 빛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장소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중에서
항아리가 보내온 100여 년의 세월이,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들이 궁금해진다. 그동안 할머니가 을 옮길 때마다 이 항아리는 당연히 함께 움직였을 것이다. 할머니는 고연에서 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청천으로, 미원으로 이사하면서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할머니는 아들, 즉 나의 아버지가 조치원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나름 자리를 잡아 결혼도 하고 집을 마련하자 아들을 따라 고향을 떠났다. 조치원의 작은 초등학교 담벼락을 벽으로 도랑 옆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후, 여덟 명의 손주를 키우며 이십여 년 살았다. 그때마다 항아리도 조금씩 흠이 생겼지만 발효와 저장의 구실을 담당하는 데는 유효했다
―「할머니의 항아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