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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나날들

잊을 수 없는 나날들

보응우옌잡 (지은이), 안경환 (옮긴이)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2012-06-25
  |  
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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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나날들

책 정보

· 제목 : 잊을 수 없는 나날들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66804771
· 쪽수 : 506쪽

목차

서문 3
제1부 5
제2부 219

해설 497
지은이에 대해 501
옮긴이에 대해 506

저자소개

보응웬지압 (지은이)    정보 더보기
중부 베트남의 꽝빈 성 레투이 현 록투이 면 안싸 마을에서 1911년 8월 25일 출생했다.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식민통치를 반대한 반식민주의 학자의 아들로 1926년 학생 시절 베트남 청년혁명당에 가입했고 1930년에 학생파업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프랑스 경찰에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수개월 후에 석방되었다. 1938년 결혼해서 공산당에서 활동했으나 1939년 공산당이 불법으로 선고되어 부인과 처제가 체포되었다. 처제는 단두대로 보내져 처형되고 부인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가 15년 형으로 감형되었으나 3년 뒤에 감옥에서 죽었다. 보응우옌잡 장군은 베트남의 민족 지도자 호찌민과 함께 베트남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호찌민을 도와 1945년 9월 2일에 프랑스 식민 통치로부터의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했으며 1946년 12월 19일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총사령관 겸 총군사위원회 비서로 9년간에 걸친 독립 전쟁을 지휘해 승리로 이끌었다. 잡 장군은 어떤 군사학교도 다니지 않았고, 군대의 어떤 직함도 가져 본 적이 없었으나 1948년 5월 28일 37세의 나이로 베트남 최초의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948년 8월에는 새로 설립된 최고국방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9년간에 걸친 프랑스와의 장기전에서 탁월한 전술을 개발하고 장병들을 훈련해 역사적인 디엔비엔푸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베트남의 디엔비엔푸 전투 승리로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에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고, 베트남은 완전한 독립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 뒤 제 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도 미국을 물리치고 베트남 전쟁을 승리를 이끌어 1975년 4월 30일 남북으로 분단된 베트남을 통일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4년부터 1976년까지 정치부 위원, 중앙군사위원회 비서, 베트남 인민군 총사령관, 국방부 장관을 계속 맡았고, 1955년부터 1991년까지 국방위원회 부주석을 지냈다. 잡 장군은 50년간의 정치 및 군사 활동 가운데 30년간을 베트남 인민군 총사령관으로 재직한 불세출의 영웅으로, 군신으로까지 여겨지는 베트남 민족 영웅이다.1961년 자신의 전쟁 경험을 토대로 하여 게릴라전에 관한 ≪인민의 전쟁, 인민의 군대≫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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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옮긴이)    정보 더보기
1955년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에서 태어났다. 수안보초등학교, 수안보중학교,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했으며, 베트남의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교 대학원에서 어문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해병대 보병장교로 흑룡부대를 거쳐 진해 해군교육단에서 신병훈련소 중대장으로 복무했으며, 전역 후에는 현대 그룹에 공채로 입사해 (주)현대중공업과 (주)현대종합상사에서 근무했고, 영산대학교를 거쳐 현재 조선대학교 외국어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생활 베트남어 회화≫, 역서로는 호찌민의 ≪옥중일기(獄中日記)≫, 응우옌주의 ≪쭈옌 끼에우≫, 당투이쩜의 ≪지난밤 나는 평화를 꿈꾸었네≫, 보응우옌잡 장군의 회고록 ≪잊을 수 없는 나날들≫, 베트남어 번역서로는 권정생의 ≪몽실 언니≫, ≪한국 전래 동화≫가 있고, ≪김동인 단편선≫을 팜꽝빈과 공역했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친선문화진흥공로 휘장, 평화우호 휘장을, 호찌민시로부터 휘호, 응에안성으로부터 호찌민 휘호를 받았고, 베트남 문학회로부터 외국인 최초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4년 하노이 수복 60주년 기념으로 하노이시로부터 “수도 하노이 명예시민”으로 추대되었다. 2017년 11월 20일에는 모교인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식에서 ‘자랑스러운 동문 6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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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섣달에는 호 큰아버지가 쓴 <자아비판>이란 제목의 기사가 여러 신문에 게재되었다.
“나를 믿고 신뢰했기 때문에 동포들은 국가의 운명을 나의 어깨에 맡겼습니다. 배의 키를 잡은 나의 임무는 조국이라는 배로 어떻게 하든 풍랑을 넘어 행복이란 부두에로 인민들을 안전하게 도착하게 하는 것입니다….”
“독립을 되찾은 지 5개월이 되었지만, 우리는 아직 어떠한 나라로부터도 승인을 받지 못했습니다.”
“모든 전사들이 맹렬히 싸웠지만, 아직 우리의 항전은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행정부 관리들이 그들의 업무를 잘하고 청렴했지만, 부정부패가 아직 완전히 청산되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정부가 부단히 노력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행정이 이곳저곳에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 못합니다.”
“누군가 이런 부족한 점들에 대해 시간이 부족해서, 신생국이기 때문에, 또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 점에 대해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에 언급된 부족한 점들은 우리 자신의 잘못인 반면에, 우리가 이룬 성공은 인민들의 단결된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일반 노동자들은 오늘의 국가를 바로 자신의 나라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 점은 매우 신기한 일이다. 베트남 역사상 봉건 조정과 소수 지배 계층이 항상 대다수인 노동자 계급을 지배하고 착취해 왔다. 그들은 항상 소수의 이익을 늘려 가며 다수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다. 오늘날 베트남은 다수의, 노동자 계급의 국가가 되었다. 국가는 인민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아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미래엔 꼭 쟁취하게 될 완전한 행복을 그들에게 안겨 주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항상 노력하고 있다.
우리 동포들은 인민의, 조국의, 혁명의, 새 정권의, 새 체제의 가장 숭고한 화신인 호 큰아버지와 함께하고 있다.


1946년 정월 초엿새, 모든 시와 마을 곳곳은 깃발과 등과 꽃으로 뒤덮였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인민들이 기꺼이 투표소로 향했다.
그들의 투표권은 하루아침 하룻저녁에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투표의 자유는 기나긴 투쟁과 수많은 피와 눈물의 대가로 얻어진 것이었다. 바로 이 투표 때문에 어제까지도 피를 흘려야 했던 것이다. 선거운동을 하는 도중 42명의 간부들이 남부 지역에서 살해당했다.
이날은 국가의 새 주인이 실제로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는 날이었다. 푹옌 읍에서는 거의 100세에 가까운 노인이 손자에게 투표소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는 선거 관리 위원에게 각 후보자들의 약력과 업적에 대해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투표용지를 조심스럽게 손에 쥐고서는 최종 결정을 하기 전까지 오래도록 고민했다. 젊은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투표용지에서 발견했다. 노인들은 기나긴 식민 통치 기간 동안 노예 생활로 겪었던 굴욕감에서 벗어나는 자유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있었다.
본인 스스로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는 충만한 기쁨을 누리고자, 심지어 눈이 먼 장애인들조차도 투표소에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오늘 아침의 회담에서 프랑스 대표단에게 말했다. “베트남의 모든 전사들은 조국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수많은 난관을 겪었기에 오로지 명예와 형평 속에서 평화적인 방법만 수용할 것이오. 수천 년 동안 한 민족의 이름 아래 투쟁과 노동으로 단련되었기에 나는 당신들에게, 남부가 베트남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한 언제고 때가 되면 모든 베트남 사람들이 남부를 조국의 품안으로 되찾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할 것이라는 걸 확언할 수 있소. 만약 우리의 목소리에 응답이 없거나 협정이 존중되지 않는다면, 나중에 발생하게 될 그 어떠한 것에도 우리는 책임질 수 없소이다…. 우리의 말이 옳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게 될 것이오.” 우리는 프랑스인들에게 우리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식민주의자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우리는 반동주의자들의 격렬한 반대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할 수 있었다. 이 회담을 통해 깨달은 것은 조국의 자유와 독립이 정의의 투쟁을 요구하고 있고, 외교적 활동은 반드시 인민의 무장 역량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우리 민족은 강해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강해져야 한다. 외교적인 업무는 그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어느 날에 행한 큰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면, “힘은 징과 같고, 외교적 활동들은 징 소리와 같다. 징이 크면 소리도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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