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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66804771
· 쪽수 : 506쪽
목차
서문 3
제1부 5
제2부 219
해설 497
지은이에 대해 501
옮긴이에 대해 506
책속에서
섣달에는 호 큰아버지가 쓴 <자아비판>이란 제목의 기사가 여러 신문에 게재되었다.
“나를 믿고 신뢰했기 때문에 동포들은 국가의 운명을 나의 어깨에 맡겼습니다. 배의 키를 잡은 나의 임무는 조국이라는 배로 어떻게 하든 풍랑을 넘어 행복이란 부두에로 인민들을 안전하게 도착하게 하는 것입니다….”
“독립을 되찾은 지 5개월이 되었지만, 우리는 아직 어떠한 나라로부터도 승인을 받지 못했습니다.”
“모든 전사들이 맹렬히 싸웠지만, 아직 우리의 항전은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행정부 관리들이 그들의 업무를 잘하고 청렴했지만, 부정부패가 아직 완전히 청산되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정부가 부단히 노력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행정이 이곳저곳에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 못합니다.”
“누군가 이런 부족한 점들에 대해 시간이 부족해서, 신생국이기 때문에, 또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 점에 대해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에 언급된 부족한 점들은 우리 자신의 잘못인 반면에, 우리가 이룬 성공은 인민들의 단결된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일반 노동자들은 오늘의 국가를 바로 자신의 나라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 점은 매우 신기한 일이다. 베트남 역사상 봉건 조정과 소수 지배 계층이 항상 대다수인 노동자 계급을 지배하고 착취해 왔다. 그들은 항상 소수의 이익을 늘려 가며 다수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다. 오늘날 베트남은 다수의, 노동자 계급의 국가가 되었다. 국가는 인민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아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미래엔 꼭 쟁취하게 될 완전한 행복을 그들에게 안겨 주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항상 노력하고 있다.
우리 동포들은 인민의, 조국의, 혁명의, 새 정권의, 새 체제의 가장 숭고한 화신인 호 큰아버지와 함께하고 있다.
1946년 정월 초엿새, 모든 시와 마을 곳곳은 깃발과 등과 꽃으로 뒤덮였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인민들이 기꺼이 투표소로 향했다.
그들의 투표권은 하루아침 하룻저녁에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투표의 자유는 기나긴 투쟁과 수많은 피와 눈물의 대가로 얻어진 것이었다. 바로 이 투표 때문에 어제까지도 피를 흘려야 했던 것이다. 선거운동을 하는 도중 42명의 간부들이 남부 지역에서 살해당했다.
이날은 국가의 새 주인이 실제로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는 날이었다. 푹옌 읍에서는 거의 100세에 가까운 노인이 손자에게 투표소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는 선거 관리 위원에게 각 후보자들의 약력과 업적에 대해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투표용지를 조심스럽게 손에 쥐고서는 최종 결정을 하기 전까지 오래도록 고민했다. 젊은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투표용지에서 발견했다. 노인들은 기나긴 식민 통치 기간 동안 노예 생활로 겪었던 굴욕감에서 벗어나는 자유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있었다.
본인 스스로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는 충만한 기쁨을 누리고자, 심지어 눈이 먼 장애인들조차도 투표소에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오늘 아침의 회담에서 프랑스 대표단에게 말했다. “베트남의 모든 전사들은 조국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수많은 난관을 겪었기에 오로지 명예와 형평 속에서 평화적인 방법만 수용할 것이오. 수천 년 동안 한 민족의 이름 아래 투쟁과 노동으로 단련되었기에 나는 당신들에게, 남부가 베트남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한 언제고 때가 되면 모든 베트남 사람들이 남부를 조국의 품안으로 되찾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할 것이라는 걸 확언할 수 있소. 만약 우리의 목소리에 응답이 없거나 협정이 존중되지 않는다면, 나중에 발생하게 될 그 어떠한 것에도 우리는 책임질 수 없소이다…. 우리의 말이 옳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게 될 것이오.” 우리는 프랑스인들에게 우리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식민주의자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우리는 반동주의자들의 격렬한 반대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할 수 있었다. 이 회담을 통해 깨달은 것은 조국의 자유와 독립이 정의의 투쟁을 요구하고 있고, 외교적 활동은 반드시 인민의 무장 역량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우리 민족은 강해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강해져야 한다. 외교적인 업무는 그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어느 날에 행한 큰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면, “힘은 징과 같고, 외교적 활동들은 징 소리와 같다. 징이 크면 소리도 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