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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언론/미디어 > 언론학/미디어론
· ISBN : 9788968173721
· 쪽수 : 394쪽
· 출판일 : 2016-05-30
책 소개
목차
· 2판 서문
· 1991년 서문
· 저자 서문
제1장 미네르바의 부엉이
제2장 커뮤니케이션의 편향
제3장 시간을 위한 호소
제4장 공간 문제
제5장 산업주의와 문화적 가치
제6장 18세기 영국의 출판 산업
제7장 미국에서 기술과 여론
제8장 비판적 고찰
부록1 북미의 커뮤니케이션과 전자기적 자원에 대한 소고
부록2 성인 교육과 대학
·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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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머리말]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기 이전에 이니스는 학문적 연구와 저술에 있어서 인상적이고 일관된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0년에 걸쳐 어떤 심도 있는 연구 주제에 주로 집중하고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이니스는 눈앞에 있는 그 주제의 여러 양상을 다루는 논문들을 폭발적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그 논문들은 대게 (전문가가 논문 심사를 하는) 학술지에 실렸다. 10년의 기간이 끝나갈 무렵 이니스는 “대작”을 완성했는데,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연구와 저술을 그간 연구해오던 주제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 형식으로 한데 묶었다. (365페이지에 달하는) 「캐나다 태평양 철로의 역사The History of the Canadian Pacific Railway」는 1920년대 초에 출간되었으며 그의 박사 논문 연구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463페이지에 달하는) 「캐나다 모피 무역The Fur Trade in Canada」은 1930년에 나왔으며, 이 책은 모피라는 주요 산물에 대해서 이니스가 1920년대에 수행한 광범위한 연구를 완성한 것이다. 1930년대에 이니스는 대구에 열중하였고, 1940년에 (522페이지에 달하는) 「대구 어업The Codfisheries」을 출판하였다.
이니스는 1940년대에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전념하여 1940년대 말에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대작”을 완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 버려진 연구의 잔해는 「커뮤니케이션의 역사A History of Communications」라는 제목하에 미완성이지만 광범위한 원고의 형태로 이니스 기록보관소에서 여전히 발견된다. 이니스는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대작을 완성하는 대신에 1948년 옥스퍼드 대학의 초청을 받은 명망 있는 베이트 강연Beit Lectures에서 쓸 자료를 찾기 위해서 자신의 원고를 뒤지기로 결정했다. 이들 강연은 1950년에 「제국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이니스가 커뮤니케이션 연구를 수행했던 주요 기간을 특징지우는 “대작” 목표에 가장 가까운 연구이다.
이니스가 커뮤니케이션 연구 초기 단계에서 구술전통의 중요성을 발견한 것은 그의 방법론에 환류 효과feedback effect를 낳았다. 이니스의 초기 자료 중 하나에서 언급되듯이, “구술전통의 원칙은…… 일단 잘 말한 것은 변하지 않고 원작자가 썼던 바로 그 말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니스의 연구에 관한 한 이 원칙은 두 가지 직접적인 결과를 낳았다. 첫 번째는, 위에서 간략하게 기술했듯이, 원작자가 사용한 많은 단어들을 유지하는 동시에 자료의 텍스트를 조작하는 방법론을 이니스가 개발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1940년대에 이니스의 연구는 학술적인 출판보다는 역사학자로서 그의 연구에 경의를 표하는 자리에서 연설과 같은 구술 형태로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전략은 좀더 전문적인 학자들의 예상되는 공격을 차단할 수 있는 부가적인 이점이 있었다. 이니스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한 분량의 연설문이 모이면 그것을 책의 형태로 출판하곤 했다.
이 책 「커뮤니케이션의 편향」(1951)은 이런 형태로 나온 첫 번째 책이다. 이 책은 1945년에서 1950년 사이에 강연했던 연설문들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니스의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으로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 실린 ?미네르바의 부엉이Minerva’s Owl?, ?커뮤니케이션의 편향The Bias of Communication?, 그리고 ?시간을 위한 호소A Plea for Time?와 같은 에세이에는 이니스가 세상을 어떻게 보았는가가 숙성되면서도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니스의 마지막 연구는 「변화하는 시간 개념」인데, 1952년 그가 죽음에 임박했을 때 출판에 들어갔다. 마지막 몇 년 동안 이니스는 미국이 우리 모두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면서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연구 결과물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니스는 죽음이 가까워올수록 점점 더 독설적이고 비판적인 강연으로 그 위급함을 알렸다. 그는 학자들이 아닌 권력자들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좀더 정치적인 에세이들을 출판하기를 꺼려했다.(미국에 대한 이니스의 비판이 1940년대 말과 1950대년 초반 반공산주의 마녀사냥이 한창이던 시기에 형성되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이니스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 그 에세이들의 출판을 미루었다. 따라서 「변화하는 시간 개념」은 이니스의 커뮤니케이션 연구로부터 파생된 정치적 분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제국과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의 편향」, 그리고 「변화하는 시간 개념」 이 세 권의 책은 “말년의” 원문에 인용 부호와 함께 쓰인 “the ‘late’ Innis”라는 표현은 “말년의 이니스” 혹은 “고故 이니스” 둘 다로 해석 가능하지만, 이니스가 커뮤니케이션 연구를 늦게 시작했다는 점이 여러 번 강조된다는 점에서 전자로 해석한다.(역주)
이니스가 남긴 정전이다.
제1장 미네르바의 부엉이
헤겔은 그리스 문명이 쇠락하고 멸망했던 시대에 성취되었던 주요 고전작품의 문화적 결정화結晶化를 언급하면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짙어가는 황혼 무렵에 비상飛上을 시작한다”라고 적었다. 그리스 문명의 풍요로움, 독특함, 그리고 그것이 서구 역사에 끼친 영향으로 볼 때 이 부엉이의 비상은 그리스 문명의 황혼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서구 문명을 위해서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커뮤니케이션이 서구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커뮤니케이션 양식과 관련해서 목도되는 뚜렷한 변화들이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고 주장해왔다. 요약하자면, 나는 이 강연문에서 커뮤니케이션 매체와 관련하여 다음의 몇 시기로 시대를 나누어 보았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일어났고 점토, 철필, 설형문자cuneiform script가 사용되었던 문명의 시작 단계; 파피루스, 붓, 신성문자hieroglyphics와 사제문자hieratic를 사용했던 시대에서 그리스-로마 시대로 이어지고, 갈대로 만든 펜과 알파벳을 사용했던 시대를 거쳐 로마 제국이 서유럽에서 퇴각했던 시기; 양피지와 (갈대) 펜을 사용했던 시대에서 10세기 혹은 암흑의 시대가 그 다음에 오는데, 종이가 사용되었던 시기와 겹치는 이 암흑의 시대는 인쇄술의 발명으로 더욱 중요해졌다; 중국에서 종이와 붓이, 유럽에서 종이와 펜이 사용되었던 인쇄 기술 발명 이전 혹은 르네상스 시대; 수공업 방식으로 종이와 인쇄기가 사용되었던 19세기 초엽, 또는 종교개혁에서 프랑스 혁명에 이르는 시기; 기계로 종이를 생산하고 인쇄기를 돌렸던 19세기 초반에서 나무로 종이를 생산했던 19세기 후반의 시기; 영화의 성장으로 셀룰로이드가 사용되었고 마침내 라디오가 세상에 나온 20세기 중반까지. 나는 각 시기마다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갖는 함의들을 추적하여 지식의 성격을 규명하고, 지식의 독점 혹은 과점이 균형을 깨뜨리는 지점까지 형성된다는 점을 주장하려 한다.
구술전통은 신선함과 탄력성을 의미하며, 인류학자들은 원시 문화에서 관습이 결속하는 특징을 갖는다고 지적한다. 복잡한 문자체계는 특정 계급의 소유가 되어 귀족 계급을 지탱하는 경향을 갖는다. 단순하고 유연한 문자체계는 토착어vernacular에 적응할 여지가 있지만, 적응이 느리게 일어날 경우 지식을 독점하고 계층화를 용이하게 한다. 쓰기와는 대조적으로 읽기는 문자의 힘을 수동적으로 인식한다. 커뮤니케이션 부분에서 일어나는 혁신은 필수적으로 독점되거나 과점된 지식의 재편성을 불러온다. 쓰기의 전문화된 기술과 수반되어 발생하는 지식의 독점은 토착어와의 접촉을 약화시키고 결국에는 힘에 의해 붕괴된다. 흄Hume의 말을 빌리자면, “권력이 언제나 통치받는 자들의 편에 있기 때문에 통치하는 자들은 여론을 제외하고 자신들을 옹호할 그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정부의 설립 토대는 여론에 있으며, 이 원리는 가장 자유롭고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정권뿐만 아니라 가장 전제적인 정권과 군사정권으로까지 확장된다.” 지식의 독점과 조직화된 힘의 관계는 문명이 드러내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역사에서 분명해진다. 학문에 대한 관심은 안정된 사회를 가정하며, 이런 사회에서 조직화된 힘은 일관된 보호책이 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학문에 대한 집중은 문자에 기반한 전통을 함의한다. 또한 이런 집중은 문화 면에서 독점적 요소들을 도입하고, 그 결과 경직되어 구술전통과 토착어에 연결되지 못한다. “진정 위대한 제도는 그것을 설립한 사람의 무덤인 것 같다.” “대부분의 제도는 그것을 설립한 사람의 사상이 고통 없이 사라지도록 세워진 육체처럼 보인다.” “한 학파의 설립자는 자신이 세운 학파를 제외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변화는 조직화된 힘과 토착어 사이의 관계 약화, 그리고 지식 독점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난 주변부 지역에서 발생한 기술적인 변화에 직면하여 일어나는 [조직화된 힘의] 붕괴에 수반되어 발생한다. 기원후 267년에 아테네를 함락시킨 고트족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책이 그리스인을 여성화시키고 전투적이지 못하게 만드니 이들이 계속 책을 읽도록 내버려둡시다.”
조직화된 권력에서 나오는 보호가 약해지면 학자들이 더 많이 애를 쓰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문화의 전성기는 그런 권력이 몰락하기 바로 직전에 온다고 볼 수 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짙어가는 황혼 무렵의 고대 그리스에서뿐만 아니라 알렉산드리아, 로마, 콘스탄티노플, 이탈리아의 공화정 도시들,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고 독일에서도 비상을 시작했다. 비잔티움 제국에 대해서는 “완전히 멸망하기 바로 직전에 고대 그리스는 찬란한 광채를 마지막으로 발하기 위해서 지적 에너지를 재집결했다”라고 기술되곤 한다. “14, 15세기에 멸망한 비잔티움 제국, 특히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지적이고 예술적인 면에서 강렬한 문화의 중심지였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아갔던 여러 지역에서 문화에 대한 새로운 열정과 강력한 문화적 전성기가 조직화된 권력이 성공한 결과로 꽃을 피웠다. 이는 쇠락하던 문명에서 헤라클레스와 같은 노력으로 버티던 학자들이 여러 면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조직화된 권력의 성공 여부는 대중의 생각에 바탕을 둔 구술전통과 토착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기술과 학문으로 결합하는가에 달려 있다. 조직화된 권력의 성공과 뒤이어 일어나는 조직화된 여론은 문화 수입에 대해 수용적이다.
부르크하르트Burckhardt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후대의 예술이 자유로움 속에서 창조될 수 있도록 전대의 여러 위대한 예술작품이 사멸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만일 15세기에 방대한 양의 그리스 조각품과 회화가 잘 보존된 채로 발견되었다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티치아노Titian, 코레조Correggio는 로마의 유산에 견줄 만한 것들을 계속 만들어냈을 수는 있었겠지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일 18세기 중엽 이후 문헌학적 연구와 고고학적 연구가 열정적으로 부흥했던 때에 잃어버렸던 그리스 서정 시인들이 갑자기 발굴되었다면, 만개하던 독일 시는 틀림없이 고사되고 말았을 것이다. 몇 십 년이 지난 후에 재발굴된 다량의 고대 시가 독일 시에 동화될 수도 있었겠지만, 꽃을 피우는 결정적인 시기가 절정의 상태로 다시 오지 못했으리라는 점에서 그것은 회복할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문화는] 15세기에 미술이, 18세기에 시가 억압되지 않고 자극을 받아 성장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살아 있었다.”
데이비드 흄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어느 국가에서건 예술과 학문이 완벽한 단계에 도달하면 그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어쩌면 필수적으로 쇠퇴하게 되며 이전에 번성했던 곳에서 다시 부흥을 하는 경우는 전무하든지 대단히 드물다…… 한 국가가 이웃하는 여러 국가에서 너무 완벽한 상태의 예술을 수입하는 것은 별로 이익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예술은 경쟁심을 없애고 넓은 도량을 가진 젊은이들이 품은 열정을 꺾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