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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68174506
· 쪽수 : 196쪽
· 출판일 : 2017-01-01
책 소개
목차
서문 __ 5
제1장 대구의 골목을 여행하다
1. 인문학+대구: 인문학, 대구와 만나다 -익숙한 곳에서 발견하는 나와 우리의 이야기
2. 골목과 타자: 대구 근대골목
3. 약전골목에서 행복을 찾다
제2장 대구의 공간에서 추억을 만나다
1. 이상화, 일제강점기 독립의 열망을 시로 풀어내다
2. 대구역전을 거닐며 그대를 만났네 -한국 소설에 나타난 대구역 풍경
4. 동성아트홀과 오오극장 -같고도 다른 세상을 만나다
5. 동성로와 교보문고 -군중 속에서 길 잃은 산책자가 되다
제3장 대구의 산과 음식을 이야기하다
1. 앞산을 산책하면서 생태인문학을 배우다
2. 팔공산을 거닐다
3. 무더운 여름과 매서운 겨울 그리고 화끈한 대구음식
4. 대구탕(大邱湯)과 대구탕(大口湯)에 얽힌 노가리
제4장 대구의 희망을 이야기하다
1.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나
2.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서 가객을 추억하다
3. ‘대구(大邱)’를 ‘대구(大丘)’라고 부르지 못한 이유
4. 달빛동맹, 화합과 상생을 위한 대구와 광주의 만남
5. 대구의 아이, 전태일
저자소개
책속에서
-익숙한 곳에서 발견하는 나와 우리의 이야기
배지연
응답하라, 나의 대구!
얼마 전 종영된 ‘응답하라 1988’은 세대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십대들이나 오십 줄에 들어선 중년들이나 할 것 없이 드라마 OST를 즐겨 들으며, 텔레비전과 무관할 것 같은 교수들도 술자리에서 드라마를 안주 삼아 자신의 젊은 날들을 숱하게 들춰봤다. ‘응팔’의 성공비결은 시간과 공간의 절묘한 만남, 말하자면 기억 속의 젊은 날과 익숙했던 장소의 기막힌 조우였다. 자신이 나고 자라난 친숙한 골목길, 누구나 가지고 있는 열여덟 혹은 스무살의 시간. ‘응팔’을 보는 내내 잊고 지내던 나만의 시간과 장소가 오버랩되었다. 지금도 가끔 꿈에 나오는 어린 시절 그 골목은 이제는 내 기억과는 달리 아주 좁아졌다. 골목의 길이와 너비는 그대로겠지만, 내가 실감하는 그곳은 아주 협소한 공간으로 다가온다. 캠퍼스도 마찬가지다. 이십여 년 전과는 달라진 외양으로 서 있는 그곳은 이제는 젊은이들의 것이 되어버렸다. 내 기억과는 달라졌지만, 그곳은 여전히 내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품은 장소이다. 그리고 그곳은 내가 나고 자란 곳, 바로 대구다.
익숙한 삶터에 시작하는 다양한 학문과의 접속 혹은 연대
대구에서 나고 학교를 마치고, 사십을 훌쩍 넘긴 지금도 여기 이곳 대구에서 살고 있다. 너무나 익숙한 것 - 마치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옷을 입고 생활하는 것처럼, 내가 살아온 이곳 대구는 내게 너무나 익숙하고 친숙한 곳이어서 객관적이고 심층적인 지적 탐구의 대상이 된 적이 없었다. 한국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정작 대구를 기반으로 한 문학이나 문화적 지형 등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공부하지는 못했다. 일반 학문이 그렇듯 분과 학문의 경계 안에서, 말하자면 한국문학의 일반적인 특성 혹은 문학이라는 보편성을 바탕으로 하는 학문적 연구 성과를 쌓아가는 데 집중했다고 할까. 물론 지금도 그런 연구자의 길을 힘겹게 따라가고 있지만, 대학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소위 학술적인 연구들이 간과하는 문제에 대해 늘 갈증을 느낀다. 연구자들을 위한 연구가 아니라 보통사람들을 위한 연구, 학문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도 접근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싶다는 욕망. 그것은 단순한 연구 방법의 문제라기보다는 보통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룰 때 가능할 것이다.
2014년에 만들어진 대구경북인문학협동조합은 나에게 보통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학문의 길을 조심스럽게 열어주었다. 문학, 철학, 역사, 예술, 그밖에도 사회, 경제, 생물학, 의학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문학적 주제를 다루며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것. 여기 모인 연구자들의 공통적인 바람이다. 아직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지만, 이곳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지금 - 여기의 문제에 대한 갈급함을 여럿이 함께 목 축여가는 중이다. 내가 살고 있는 대구를 좀 더 살펴볼 기회와 마음을 먹게 된 것도 그러한 시도 가운데 하나이다. 대구에서 공부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우리가 공부한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 대해 함께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
뒷골목에서 만난 대구의 숨결 혹은 나의 민낯
인문학과 대구가 만난 사건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조합에서 진행한 ‘대구 뒷골목 기행’이었다. 대구를 기반으로 하는 문학, 예술 관련 강의를 듣고 관련 장소를 직접 찾아가는 이 답사는 내가 살고 있는 대구가 참 많은 것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조선 시대 서거정의 문학을 통해 대구의 옛 모습을 따라갈 수 있었다. 본관이 달성 서(徐)였던 그를 따라 벚꽃이 만개한 달성공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서상돈과 이상화 등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이들의 흔적을 발견한다. 일제의 수탈 앞에서 당당하게 경제적 독립을 꿈꾸고, 우리 민족에 닥친 시련과 극복 의지를 시를 통해 승화했다. 이상화 시비(詩碑) 앞에서 흩어지는 꽃잎과 함께 날렸던 비올라 선율은 그들에게 바쳐진 선물이었다. 강좌를 개설하신 선생님의 제자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한 이 즉흥적인 무대는 공원을 찾은 많은 시민들과 함께 ‘지금-여기’에서 1930년대 이상화를 만나게 했다. 이곳 대구를 살다 간 시인 이상화. 그는 자신에게 닥친 시대의 비극을 잊어버리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일제강점이라는 시대 현실을 예술이라는 공통감으로 승화한 이상화의 시는 몽환적 낭만의 방식에서 민족 비애와 저항의 방식으로 시 세계를 펼쳐갔다. ‘간도와 요동벌로 주린 목숨 움켜쥐고 쫓겨가’는 당대 사람들을 보며, ‘어둔 밤 말없는 돌을 안고서 취한 피울음’을 울어간 시인의 절실함을 만난다.
미처 꺼내보지 않았던 선물을 뜻하지 않게 풀어보았을 때의 놀라움이랄까? 대구 뒷골목 기행에서 만난 건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서거정과 이상화의 달성공원을 둘러보고, 근처에 있는 오래된 국밥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함께한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때. 그리고 김광석 거리를 거닐다가 발길이 머무는 곳에서 나지막이 불러보는 그의 노래, 함께 부르는 여러 목소리에서 가슴 언저리가 따스해질 때. 그 순간 내가 마주치는 것은, 못다 한 숙제를 처리하듯 논문과 씨름한다고 연구실에 박혀있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과 함께 달려 올라온 것은 지친 삶의 무게에 휘청대는 나의 자화상이었다. 비단 김광석의 노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새로운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대상에게서 잊고 있던 소중한 무엇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처럼. 전혀 새로울 것 없는 곳에서 잊고 지내던 나의 민낯을 발견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삶과 문학, 혹은 노래를 통해 잊고 지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 그리고 그러한 작업을 누군가와 함께하며 사람의 온기를 나누는 일. 그것이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