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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의 자아와해

계몽의 자아와해

(1990년대 이래 중국사상문화계의 중대 논쟁 연구)

뤄강, 쉬지린 (지은이), 김하림, 이주노, 피경훈, 김명희, 박혜은, 이여빈, 이희경 (옮긴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4-02-20
  |  
33,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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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의 자아와해

책 정보

· 제목 : 계몽의 자아와해 (1990년대 이래 중국사상문화계의 중대 논쟁 연구)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사회과학계열 > 정치외교학 > 국제정치학
· ISBN : 9788968490873
· 쪽수 : 610쪽

책 소개

다양한 관점에서 중국사회와 세계의 변화를 바라보고 다음 단계를 전망하며 사상적 대안을 찾고자 했던 90년대 중국 지식계의 중요 논쟁들을 담고 있다.

목차

역자 서문 / 5
총론 / 11
벗어나기 힘든 곤경 - 급진과 보수의 논쟁에 관하여 / 77
지식인의 정체성과 분화 - ‘인문정신’에 관한 논쟁 / 123
다중 초점적 해석 - 포스트모던과 탈식민주의 논쟁 / 157
‘루쉰(魯迅) 풍파’ - 루쉰에 관한 논쟁 / 193
전지구화 속의 민족국가 정체성 - 1990년대 이래 민족주의에 관한 논쟁 / 239
국가와 사회에 대한 재상상 - 시민사회에 관한 논쟁 / 285
전환기 중국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 자유주의와 신좌파 논쟁에 대하여 / 329
당대 중국의 지식장과 공공논쟁의 형태적 특징 / 425
당대 중국의 사상 동향과 담론 분석
- ‘자유주의’와 ‘신좌파’의 기호 투쟁을 예로 / 473
‘현대화’의 기대인가, 아니면 ‘현대성’의 우려인가
- ‘베버 번역’으로부터 90년대 이래의 ‘서학 상상’을 살펴보다 / 539

후기 / 597
찾아보기 / 599

저자소개

뤄강 (지은이)    정보 더보기
문학박사, 화둥사범대학 중문과 박사지도교수이며, 충칭대학(重慶大學) 인문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와 상하이대학 당대중국문화연구센터 연구원을 겸임하고 있다. 홍콩침례대학(津會大學), 미국 뉴욕대학, 타이완 둥하이대학(東海大學)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20세기 중국문학, 당대비판이론, 사상사 및 문화이다. 저서와 논문집인 ≪기억의 소리≫, ≪가면의 배후≫, ≪위기시의 문화적 상상≫, ≪도시를 상상하는 방법≫, ≪인민지상≫, 공저인 ≪계몽의 자아와해≫, ≪도시의 기억≫, 편찬서인 ≪90년대 사상문선≫, ≪시각문화 독본≫, ≪리와 강변에서 문학을 논하다≫, ≪20세기 중국문학사론≫ 등과 백 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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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린 (지은이)    정보 더보기
화둥사범대학 특별초빙교수, 역사학과 박사지도교수, 중국교육부 인문사회과학중점연구기지 중국현대사상문화연구소 부소장이며, 상하이시 사회과학계연합회 상무위원과 중국역사학회 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홍콩중문대학, 싱가폴국립대학, 하버드대학,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등에서 방문학자 및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20세기 중국사상사, 지식인 및 상하이 도시문화를 주요 연구 분야로 삼고 있다. 근저로는 ≪중국지식인 십론≫, ≪계몽의 자아와해≫(공저), ≪대시대 속의 지식인≫, ≪근대 중국지식인의 공공교류≫(공저), ≪계몽은 어떻게 기사회생하는가≫, ≪당대 중국의 계몽과 반계몽≫ 등이 있다. 2004년 ≪남방인물주간≫이 뽑은 중국 공공지식인 50인에 선정되었고, 저서 ≪중국지식인 십론≫은 2005년 제1회 중국국가도서관 문진(文津)도서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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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림 (지은이)    정보 더보기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魯迅 문학사상의 형성과 전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조선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루쉰의 문학과 사상』(공저, 1990), 『중국 문화대혁명시기 학문과 예술』(공저, 2007)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중국인도 다시 읽는 중국사람 이야기』(1998), 『한자왕국』(공역, 2002), 『중국의 차문화』(공역, 2004), 『차가운 밤』(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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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중어중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전남대학교 중어중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중국현대문학을 전공하면서 민간전설과 신화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저서로 ≪중국의 민간전설 양축이야기≫, ≪루쉰의 광인일기, 식인과 광기≫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중화유신의 빛 양계초≫ ≪중국 고건축 기행≫ ≪색채와 중국인의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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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경훈 (지은이)    정보 더보기
고려대학교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중국 베이징대학(北京大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목포대학교 중국언어와 문화학과 조교수로 있다. ‘문화대혁명과 사회주의적 주체성의 문제’ ‘중국의 제국 담론’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해방으로서의 과학」 ,「주체와 유토피아」, 「문화대혁명의 종결을 어떻게 재사유할 것인가」, 「계몽의 우회」, 「1920년대 마오쩌둥의 계급 개념에 관하여」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혁명과 이행』(공저), 옮긴 책으로 『상하이학파 문화연구』, 『계몽의 자아와해』(이상 공역), 『비판철학의 비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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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옮긴이)    정보 더보기
'고독한 사람의 세계: 루쉰의 소설과 그의 정신세계'>로 박사학위 취득 2014년 현재 전남대학교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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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은 (옮긴이)    정보 더보기
조선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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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빈 (옮긴이)    정보 더보기
'루쉰의 여성관 연구―잡문을 중심으로'로 석사학위 취득 2014 현재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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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경 (옮긴이)    정보 더보기
'문혁 이후 중국지식인의 정신상태 시론'으로 박사학위 취득 2014 현재 전남대학교, 순천대학교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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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서문]

20세기 마지막 10년은 격동의 시기였다. 오랫동안 세계질서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던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졌고 전 세계는 자본의 법칙에 따라 재편되는 듯하였다. 한국, 대만, 싱가폴, 홍콩의 경제적 부상은 아시아 중심의 발전 모델 제시라는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켰지만, 일본의 거품경제 붕괴와 90년대 말 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금융위기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희망 대신 실망이 남아 있었다.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사상적 기반을 상실한 진보적 지식인들은 물론, 전통 사상의 현대적 재건을 꾀하던 신유가 학자들 역시 급변하는 시대의 조류 속에 길을 잃은 채 세기말을 번뇌와 방황 가운데 보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자본주의를 역사의 승리자로 단정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경제적 성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병폐, 즉 빈부격차의 심화, 중산층의 붕괴, 건전한 시민정신의 약화 등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경제체제의 본격화와 함께 등장하기 시작한 위 문제들은 90년대 중국 지식인들로 하여금 이전과 전혀 다른 고민에 빠지게 하였고, 그들 내부에서는 동일한 문제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이 충돌하게 되었다.
중국의 90년대는 사상문화계가 새롭게 분화하는 시기였다. 90년대 사상계의 분위기는 80년대와 확연한 대비를 이룬다. 개혁개방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80년대 지식계의 특징은 ‘신계몽’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당시 중국 지식인은 문화를 중시하고 개혁을 지향하는 ‘태도의 동일성’을 지니고 공통의 계몽진영을 형성하였다. 물론 서양과 중국문화에 대한 이들의 이해에는 한계가 있어 약간의 논쟁이 벌어지긴 했으나 지식 구조상 이들의 입장은 대체적으로 비슷했고 사상적 경향도 동일하였다. 그러나 90년대로 넘어오자 계몽진영은 심각한 분화양상을 보였다. 89년 천안문 사태로 인한 지식계의 정치적 발언권 상실, 92년 이후 본격화된 시장경제체제로의 돌입과 그로 인한 자본의 영향력 확대는 지식인들을 전혀 낯선 환경으로 몰아넣었다. 이로부터 중국의 현대성과 개혁이라는 중요한 문제들을 둘러싸고 지식인들은 일련의 논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들 사이에는 사상, 지식, 인맥상의 불일치가 생겨났고, 당대 중국사상계의 서로 다른 단층과 가치 경향이 형성되었다.
≪계몽의 자아와해≫는 다양한 관점에서 중국사회와 세계의 변화를 바라보고 다음 단계를 전망하며 사상적 대안을 찾고자 했던 90년대 중국 지식계의 중요 논쟁들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급진과 보수 논쟁, 인문정신 논쟁,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식민문화 논쟁, 루쉰 비판, 민족주의 논쟁, 시민사회 논쟁, 자유주의와 신좌파 논쟁, 현대성 문제 등 당시 지식계를 뒤흔들었던 논쟁들의 발단 배경, 참여인물, 전개과정 및 그 의의를 상세히 정리하고 있다. 사상적 편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각 논쟁들을 바라보려 노력하고 있으며, 풍부한 1차 자료들에 근거하고 있어 당시 중국사상계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 유용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준다. 결과야 어찌됐든 위의 논쟁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논쟁 자체가 기존의 지식체계를 해체하고 새롭게 재건하려는 중국 지식인들의 도전이자 투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중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지식인들이 국내외 학술전통과 사상이론을 샅샅이 살펴보고 토론한 고민의 기록이다. 그 고민의 기록이 독자들로 하여금 ‘중국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중국 지식인들의 학문적 노력에도 감탄을 자아내게 하리라 믿는다.
이 책이 번역되어 출판되기까지 그간의 사정을 밝히는 게 필요할 듯하다. 이 책의 번역자들은 중국 지식계의 사상사적 동향에 학술적 관심을 가지고서 2011년 가을부터 함께 모여 스터디를 진행하였다. 우리는 스터디를 통해 중국 지식인문제와 관련된 각종 서적과 논문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는데, 1년 반의 시간이 흐른 뒤에 읽기 시작한 책이 ≪계몽의 자아와해≫이었다. 우리는 이 책이 그동안 스터디해온 내용을 총정리하기에 안성맞춤이라 생각하였으며, 이 책을 번역하여 중국 지식인의 사상사적 혹은 지성사적 흐름과 동향을 국내 학계에 전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의 번역은 중국 지식계에 대한 우리의 학술적 관심이 가져온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애로는 학술적 용어를 적절히 우리말로 옮기는 문제였다. 1990년대 이래 중국 지식계에 서구의 학술적 이론이 급속히 소개ㆍ도입되는 과정에서 특정한 용어를 논자에 따라 각기 달리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어의 특정 용어가 우리말로 특정하기에는 너무나 광범한 함의를 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서구 학술이론의 전문 용어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원전을 확인하여 현재 우리 학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로 바꾸었으며, 함의의 스펙트럼이 넓은 중국어의 경우에는 문맥을 살펴 각기 다른 용어로 옮기기도 하였다.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중국지식인들이 2000년대의 컨텍스트 아래에서 과거의 역사를, 특히 198,90년대를 어떻게 재해석하는지, 그리고 과거의 인물과 사건을 어떻게 재해석하는지 살펴보기 바란다. 아울러 중국의 지식인들이 서구의 학술이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지적 호기심과 순발력, 특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능력과 함께 그들의 한계 또한 살펴보기 바란다.
90년대 중국 사상계를 살펴봄은 현재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G2의 자리에 올라 미국을 견제할만한 강대국의 위상을 떨치고 있는 중국의 내면에 숨겨진 복잡한 문제들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대국이라는 환상에 젖어 중국을 과대 포장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우리보다 수준이 낮은 나라라는 근거 없는 우월감에 빠져 과소평가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본서에 소개된 논쟁들 가운데 현대성 문제, 시민사회 논쟁 등 많은 부분이 한국 사회를 포함한 후기 자본주의 문화의 병폐들을 지적하고 있어 그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용함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세기말 중국 지식인의 고민에 대한 이해가 21세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새롭고 깊이 있게 접근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라 기대하는 바이다.
이 책은 2007년 지린출판집단유한책임공사(吉林出版集團有限責任公司)에서 출판한 초판본을 번역의 저본으로 사용하였다. 이 책을 출판하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원저의 의미가 불확실하거나 모순된다고 여겨 질의를 제기할 때마다 성실히 답변해주었던 중국측 저자들은 물론, 서구 사상과 이론에 대해 자문을 구할 때마다 조언을 마다하지 않았던 학내외의 전공자들, 그리고 책의 꼴을 갖추어주느라 수고하신 전남대학교출판부 모두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 분들의 도움과 정성에도 불구하고 번역상의 오류가 적지 않을 터, 이는 오로지 역자들의 불민함으로 인한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질정을 바란다.

2014년 2월
역자 일동


[총론]

지은이 : 쉬지린(許紀霖)
옮긴이 : 이주노(李珠魯)

이 책에서 우리가 연구하고자 하는 것은 1990년대 중국의 사상과 문화이다. 90년대는 막 지나가버린 시대이자 여전히 살아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것은 막 역사가 되었지만 최근에 형성된 사상전통과 문화맥락으로서, 21세기 중국 사상과 문화의 발전에 강렬한 영향과 제약을 미치고 있다.
1980년대 이래 중국의 지식계 내부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상이한 문화권력 장(Champ, field)이 형성되었다. 즉 국가이데올로기의 창출을 중심으로 삼는 권력 내부의 이론계, 현대 아카데미체제의 지식분업을 기초로 하는 전문학술계, 그리고 민간의 학제간 공공영역을 활동공간으로 삼는 공공(公共)사상계가 그것이다. 이들은 상호침투하지만 분화되어 있으며 각자의 장의 규칙을 지니고 있는 세 가지의 문화공간 네트워크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이들은 각각 지식인의 정치사, 학술사와 사상사의 연구대상에 속한다. 사상사 연구로서 우리가 여기에서 주로 언급하는 것은 90년대 공공사상계의 중대한 논쟁이며, 이로써 90년대 중국의 공공지식인과 공공지식계의 전반적 상황을 연구한다. 오늘날 중국사상문화의 연구는 현재 국내외 지식계의 뜨거운 쟁점이다. 이 시기의 사상문화에 대한 연구는 사조 연구나 인물 연구 등 여러 각도에서 파고들 수 있으나, 그 속의 복잡다단한 사상관계와 분기점을 명료하게 정리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90년대의 사상문화계에서 발생한 일련의 중대 논쟁의 연구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90년대는 중국사상문화계가 새로이 분화하는 시대이다. 80년대의 신계몽(新啓蒙)운동 중에서 중국의 공공지식인은 문화 입장과 개혁 지향에 있어서 ‘태도의 동일성’으로써 공통의 계몽진영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이 계몽진영은 90년대에 이르러 그 내부에서 심각한 분화를 일으켰다. 중국의 현대성과 개혁이라는 중대한 핵심문제를 둘러싸고, 지식인들은 의견의 일치를 모색하는 데에서 출발하여 일련의 논전을 전개함으로써 사상, 지식과 인맥에서의 심각한 분기(分岐)를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오늘날 중국사상계의 상이한 단층과 가치취향을 형성하였다. 중국의 사상문화계에서 보자면, 90년대와 80년대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바로 ‘동일’에서 ‘분화’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서구문화와 중국문화에 대한 80년대 중국지식인의 이해는 퍽 제한적이었으며, 각 학파는 관점에 따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지만 지식구조는 대체로 일치하며 사상 경향 역시 상대적으로 동일한 편이었다. 그러나 90년대에 접어들어 지식계에는 중대한 분화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분화는 우선적으로 90년대 중국에 발생한 일련의 심각한 변화에서 비롯된 것인데, 오늘날 중국이 어렵고도 고통스러운 역사전변과 사회전환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울러 학술사상의 발전을 위한 돌파구 마련에 충분한 역사적 가능성과 튼실한 경험적 기초를 제공해주었다. 다른 한편, 중국사상계는 사회의 급변을 마주하여 이론적으로 새로이 해석하고 설명하고자 애씀으로써 전례 없이 적극적으로 현실과 대화하려는 활력이 넘쳤다. 그렇지만 지식배경, 문제의식, 이론의 가설 내지 시야와 방법 등의 차이로 말미암아, 연구자들은 동일한 현상에 대해 사뭇 다르거나 심지어 첨예하게 대립되는 결론에 이르는 일이 잦았다. 이로 인해 상이한 담론 사이에 혹독한 공격이 퍼부어져 국내외 학술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사상문화논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들 논쟁을 통하여 중국 지식계의 사상분화는 90년대 말에 이르러 기본적으로 완성되었다. 십년의 짧은 기간에 공공영역은 다시금 봉건화하고 분할되었으며, 이로써 통일된 하나의 공공사상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 연구의 목적은 90년대의 주요 논쟁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통하여 오늘날 중국의 사상문화의 이 활기 넘쳤던 모습을 기록하여 보존하고, 이를 중국사상이 변모하는 20세기 전체의 긴 시간 속에서 고찰하고 역사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연구하는 대상은 90년대의 사상이지만, 이것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차원에 두고서 비교하고자 한다. 시간의 차원에서 본다면, 90년대의 사상과 80년대의 관계는 단절임과 동시에 연속이다. 그렇다면 80년대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 90년대의 이론논쟁은 80년대의 사상전통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러한 관계 속에서 80년대의 사상명제는 단지 비판의 대상일 뿐일까? 아니면 보다 깊은 수준에서 90년대 이론토론을 제약하는 내적 논리(inner logic)일까? 혹은 80년대의 사상이든 90년대의 사상이든 사실은 표면적인 분기의 이면에 모종의 문제의식과 이론 자원을 공유하고 있지 않았을까? 기나긴 역사적 안목에서 본다면, 90년대의 일련의 사상이론논쟁은 20세기 중국사상계의 중요한 구성성분이다. 이는 단순한 시간적 의미에서 90년대 사상논쟁을 20세기 중국현대사상사 속에 받아들인다는 것만이 아니다. 더욱 중요하게는 만약 이 일련의 논쟁에 포함된 관련 영역과 문제의식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사상이 형성된 역사를 돌이켜보아야만 하며, 특히 이들과 만청 이래 중국의 현대 이행에서 비롯된 약간의 중대한 사상모티프 사이의 관계를 분명하게 정리ㆍ해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한편으로는 중대한 사상모티프를 참조하여 구체적인 논쟁 중에 어떤 면이 사상사의 실마리와 관련되는지 고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논쟁에서 출발하여 상이한 맥락하의 이론적 담론이 기존의 사상명제를 얼마나 풍부하고 충실케 하였으며, 나아가 질문을 던졌는지 설명해야 한다.
공간 차원에서 살펴본다면, 90년대의 사상논쟁이 다루었던 주요 논제, 지식구조(Knowledge Structure)와 이론배경은 대부분 국외, 특히 서구의 이론 및 사상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서구의 맥락에서의 관련 논제의 토론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또한 동시에 이 논제가 중국의 맥락에 들어온 이후의 변화, 발전 및 오독될 가능성을 고려해야만 한다. 따라서 맥락간(inter Context)의 ‘이론 여행(Traveling Theory)’ 문제는 이 과제 연구의 시작부터 끝까지 줄곧 지속될 것이다.
우리의 연구는 방법론상에서 90년대의 주요 사상과 이론 논쟁의 전개과정이 외적인 시간순서와 함께 내적인 논리적 단서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 연구는 가능한 한 이 두 가지 측면을 함께 고려하여, 역사서술에 있어서는 시간순서에 따라 각각의 주요 사상토론을 소개함과 동시에, 이론분석에 있어서는 각각의 논쟁 사이의 내재적 관계를 명료하게 드러내고, 나아가 이러한 관계를 통하여 논쟁의 사상적 단서와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90년대의 사상논쟁에 대한 연구는 일반적인 사상사 연구에 속하며, 역사연구의 온갖 방법을 동원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90년대는 이제 막 지나간 ‘역사’인데다, 본서의 과제에 참여한 연구자가 구체적인 토론에 직접 참여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의 연구는 일반 역사연구가 지니지 못한 이점을 갖추고 있는 바, 경험적 자료를 충분히 이용하여 자아의 느낌과 체험을 연구과정속에 끌어들여 역사에 들어선 ‘현장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연구방법에 있어서 우리는 경험연구와 규범연구를 결합하고, 사상사 연구와 문화비평을 결합하고자 힘썼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가 주로 다루는 것이 아무래도 사상과 이론자료이기에, 가장 중요한 방법은 텍스트분석과 담론분석이다. 하지만 사상사 연구는 일반적 의미의 ‘텍스트분석’이 아니라, ‘텍스트 읽어나오기’와 ‘텍스트 읽어들어가기’라는, 서로 연관된 두 과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른바 ‘텍스트 읽어나오기’란 이론텍스트에 대한 해석이 텍스트 내부에 갇혀서는 안 되며, 그것을 보다 광활한 사회역사문화의 컨텍스트 속에 놓고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른바 ‘사회역사문화의 컨텍스트’는 이미 정해져 있는 해석틀이 아니라, 텍스트 속에서 검증해 보아야 하는 담론실천이다. 이렇게 하려면 ‘사회역사문화’의 요인을 이론텍스트 속으로 ‘읽어들어가’, 이들 요인이 텍스트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텍스트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이들이 어떤 기능을 발휘했는지 자세히 관찰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순환왕복의 독해과정 속에서 그 생산성은 충분히 발현되며, 이렇게 하여 훨씬 복잡한 사상사 지도를 그려낼 수 있다.

1. 1980년대 신계몽운동의 유래
1980년대 중국 사상계는 동시에 진행된 중국현대화 변혁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중국의 개혁은 전체적으로 볼 때, 위에서 아래로, 체제 내부의 권력중심에서 체제 주변과 외부 공간으로 차츰 넓혀가는 과정이었다. 변혁이 심화되고 문제의 복잡성이 드러남에 따라, 사상계 역시 끊임없이 분화되고 새로이 통합되었다. 80년대에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80년대 중후기의 신계몽운동이었다. 위로는 70년대 말에 시작된 사상해방운동을 이어받고 아래로는 90년대까지 이르렀던 이 운동은 오늘날 중국의 또 하나의 ‘5ㆍ4’였다. 90년대 이후 사상계의 모든 분화와 조합은 거의 모두 여기에서 기본적인 맥락을 찾아낼 수 있다. 신계몽운동은 대단히 복잡한 사상운동으로서, 서구의 현대화를 흠모하는 동질적 바람을 지니고 있음과 동시에, 이를 비판하고 성찰하는 잠재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문화태도의 동일성과 사상내용의 이질성은 신계몽운동의 혼돈스러운 표상과 복잡한 내적 분기를 낳았으며, 90년대 중국 사상계 분화의 근원이 되었다.
중국의 개혁개방에 있어서 사회/정치적 변혁의 원천이 1978년 말에 열린 제11기 제3차 중앙위원전체회의라고 한다면, 신계몽운동의 전신으로서의 사상해방운동은 약간 이른 시기의 진리기준문제를 둘러싼 대토론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중국의 개혁은 애초에 체제 내부에서 일으킨 것이며 권력 중심에서 진행된 것이었기에, 따라서 자구적 성격을 명확히 띠고 있었다. 개혁의 발동자는 마오쩌둥(毛澤東) 시대 당시에는 결코 이단자가 아니었으며, 유토피아사회주의의 실천자였다. 다만 ‘문혁’ 후기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체험을 통해 이 노선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한층 명백하게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유토피아사회주의의 이상에서 벗어나 ‘4개 현대화’를 중심으로 하는 세속화한 사회주의 현대화 노선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라는 명제의 제기는 실질적으로 유토피아사회주의 전통과 작별하고 세속화한 사회주의로 전향하도록 이론적인 합법성을 부여해주었다. 사상해방운동은 우선적으로 전통적인 사회주의 교조에서 해방되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운동은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 일어난 루터식 종교개혁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물론 사상해방운동의 애초의 이론적 가설은 명백한 과학주의, 즉 일찍이 마오쩌둥시대의 정치/도덕입장의 우선성에 의해 억압된 유물론적 과학주의의 특징을 띠고 있었으며, 그것은 곧 생산력은 사회진보를 가늠하는 유일한 기준이며, 과학기술은 제일의 생산력이라는 등등이었다. 의심할 나위 없이, 인간의 정신생활이 아니라 물질생활을, 지식의 우선성을 새로이 정치/도덕의 우선성 위에 놓는 유생산력론(唯生産力論)과 경제결정론의 과학주의는 당시 경직된 교조주의의 속박을 타파하는 데에 있어서 대단히 혁명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주류 이데올로기 내에서 세속 지향적인 실용주의로 굳어지고 말았다. 갖가지 복잡한 제약 요인을 고려하여, 중국의 세속화한 사회주의 지도자는 경제개혁을 주도하는 개혁전략을 채택하였다. 이리하여 권력체제 내부의 사상해방으로서는 끝내 오래 가지 못한 채, 곧바로 개혁 제창자들 사이에 첨예한 대립이 발생하였다. 루터식의 종교개혁은 늘 량치차오(梁啓超)가 말한 바의 ‘복고를 해방으로 여기는’ 방식으로 실현되기 십상이며, 주류이데올로기의 ‘복고’는 당시로서는 기껏해야 마르크스, 레닌 혹은 옌안(延安)시기의 마오쩌둥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권력 주변에 있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분명코 훨씬 멀리 나아갔다. 그들은 이미 일어난 경제개혁을 논증해줄 유물론적 과학주의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정치변혁을 지지해줄 비판적 인도주의를 필요로 하였다. 그들의 ‘복고’는 오랫동안 정통이데올로기에 의해 홀시받았던, 그리고 서구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원전으로 간주되었던 초기 마르크스―소외를 중시하고 인도주의정신에 충만했던 마르크스로 나아갔다. 그들이 보기에, 사회주의에 ‘문혁’과 같은 역사적 비극이 나타난 까닭은 바로 인도주의를 홀시하고, 사회주의사회라 할지라도 소외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홀시하였기 때문이었다. 80년대 초 개혁이 심화됨에 따라 유물론적 과학주의가 차츰 보수화하자, 인도주의적 마르크스주의가 사상해방의 깃발을 이어받았다. 1983년 3월 마르크스 서거 백주년을 기념하는 대회에서, 왕위안화(王元化) 등이 기초하고 저우양(周揚)의 명의로 발표된 <마르크스주의의 몇 가지 이론문제에 관한 탐구(關於馬克思主義的幾個理論問題的探討)>는 인도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대표하는 글이라 할 수 있는데, 이 글이 권위 있는 ≪인민일보≫에 발표됨으로써 그 영향력은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개혁개방이 가속화하였던 80년대 중기에 이르러, 인도주의적 마르크스주의는 주객관적인 조건의 제한으로 말미암아 사상해방운동을 보다 폭넓고 깊이 있는 층차로 끌어올리지 못했다. 그것은 첫째로 저우양 등이 비록 더 이상 권력의 중심에 있지는 않지만 상당수가 여전히 체제의 핵심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체제내의 인사이기에 여러 사람들이 주목하는 대상임과 동시에 비난의 표적인지라, 체제가 그들에게 허용한 논의의 여지나 운신의 폭이 갈수록 좁아졌기 때문이었다. 사상해방운동이 자신의 성과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체제의 주변과 체제 밖에서 새로운 사상공간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둘째로는 ‘복고를 해방으로 여기는’ 사상해방운동이 이미 원전에 바짝 다가선 바에야 그 내적 논리에 따라 옛 전범으로부터 해방되지 않는 한 계속 앞으로 발전해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현대화의 개혁실천에서 제기된 수많은 문제들은 이미 마르크스의 초기 사상으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구의 마르크스주의는 훗날 자유주의와 합류하여 사회민주주의로 변모하였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인도주의적 마르크스주의 역시 계몽사상과 합류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계몽운동이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마르크스주의가 일어났으며, 마르크스주의는 계몽운동 속에서 태어나 계몽운동을 비판ㆍ초월하였다. 반면 중국의 인도주의적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아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역사적 사명을 마주하고 있으며, 따라서 새로운 계몽의 방식으로써 서구자본주의의 현대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렇게 하여 사상해방운동의 논리와 역사 발전의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신계몽운동은 금방이라도 시작될 것처럼 보였다.
1984년은 오웰(G. Orwell)의 디스토피아(Dystopia) 소설인 ≪1984년≫에서 끔찍하게 그려졌지만, 중국에서는 오히려 문화 신계몽으로 나아간 해이다. 이 해의 사상계에는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던 몇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즉 ‘미래를 향해(走向未來) 총서’의 정식 출판, 중국문화서원(中國文化書院)의 창립, 그리고 신세대의 젊은 학자들이 ≪독서(讀書)≫ 잡지의 주류 필진이 되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듬해에는 베이징의 아카데미 지식인들이 ≪문화: 중국과 세계(文化: 中國與世界)≫의 편집위원회를 발족하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1984년과 1985년을 신계몽운동의 발단이라고 믿는 이유이다.
신계몽운동은 사상해방운동의 역사를 뒤이었지만, 그 중심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사상해방운동이 주로 정치변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신계몽운동의 초점은 이른바 ‘문화의 현대화’로 옮겨가 있었다. 일상용품 차원의 현대화를 추구하는 세속화 사회주의에서 제도 차원의 현대화를 추구하는 인도주의적 마르크스주의로, 다시 문화 차원의 현대화를 추구하는 신계몽운동으로의 이행은 당시 개혁이 (범)문화구조면에서 차츰 심화되는 필연적 귀결로 받아들여졌다. ‘문화의 현대화’라는 이 바람은 훗날 일부 비평가에게 ‘형가가 공자를 찌르다(荊軻刺孔子)’식의 사상적 오류 혹은 ‘문화결정론’의 혐의가 있다고 여겨졌다. 확실히 당시의 신계몽운동이 ‘5ㆍ4’와 마찬가지로 린위성(林毓生)이 말한 바의 ‘사상문화를 빌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인 ‘문화환원론(Cultural Reductionism)’적 경향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개혁개방 20년이라는 제법 긴 역사적 맥락 안에 놓고서 고찰하기만 한다면, 이것이 중국지식인의 중요한 역사적 전변임을 깨달을 수 있다. 즉 그들은 문화 담론의 방식을 통하여 정치/이데올로기체제와 지식의 전문체제에서 점차 분리되거나 초탈하여 민간에서 새로운 사상공간을 개척함으로써 문화의 자주성과 정신의 공공성을 다시금 획득하였다.
이러한 자주성과 공공성은 20세기 상반기에 이미 존재한 적이 있었지만, 1949년 이후의 전체주의(totalism)체제에서 거의 대부분 상실되고 말았다. 사상해방운동은 상실된 정신을 다시금 쟁취하고자 하였지만, 이 운동이 아직은 체제 내부의 운동인데다 인도주의적 마르크스주의 역시 국가이데올로기의 주변에서 작동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상공간과 사회공간을 구축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한계는 분명 저우양 등의 체제내 신분과 지적 배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신세대 계몽학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신분면에서 더 이상 문화관료 혹은 이데올로그(ideologue)가 아니었으며, 기본적으로 권력체제 바깥에 놓여 있는, 훨씬 독립적인 품격을 갖춘 인문사회과학 연구자이었다. 그들의 나이, 경력 역시 그들에게 ‘마르크스를 벗어나’려는 강렬한 충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서구의 고전과 현대지식을 배경으로 야심만만하게 중국의 현대화 방안을 새로이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당시 정치이데올로기의 규제가 체제내의 정치적 담론공간을 날로 죄어왔다. 유일한 돌파구는 체제 밖에서 체제개혁에 관한 민감한 이슈를 우회하여 문화 담론의 방식으로 새로운 사상공간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시도는 애초에는 다소 비자각적인 전술적 조정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일어난 결과는 전략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문화로서의 신계몽운동은 정치이데올로기 담론을 벗어나려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과의 지식체제를 뛰어넘어 민간의 운용방식을 통해, 규제를 받는 공공매체의 틈새와 주변에서 학제간의, 그리고 공공의 사상계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사상계는 전통적인 이론계 및 학술계와 다른 점이 있었다. 즉 이론계의 쟁탈 대상은 이데올로기의 패권(사상해방운동은 기본적으로 이론계의 범위를 뛰어넘지 못하였다)이었으며, 학술계의 쟁탈 대상은 국가지식체제의 규제를 받는 학과범위 내의 전문지식영역이었다. 반면 신계몽운동이 구축하고자 하였던 사상계는 하버마스(J. Habermas)가 말한 바의 ‘공공영역(public sphere)’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민간의 자유논단 혹은 공공매체를 통하여 사회생활과 문화생활의 공공문제를 토론한다. 이러한 민간화(국가이데올로기에 상대적으로)와 공공화(전문화된 학과에 상대적으로) 특징은 이것이 진정 공공지식인에 속한 영역임을 잘 보여준다. 아울러 이러한 사상계 내에서만 지식인은 국가이데올로기의 대변자도, 협애한 지식분업에 제한된 전문학자도 아닌 진정한 의미의 지식인이 될 수 있다. 이렇듯 상대적으로 독립된 품격을 갖춘 공공사상계는 비록 아직까지 수립될 보장은 획득하지 못하였지만, 신계몽운동의 직접적 산물로서 10여 년간의 비바람속에서 굴곡을 겪었음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았으며, 그 후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이러한 점만으로도 신계몽운동은 역사에 기록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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